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유령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 깃발을 세운 명성공업 노동자들!

▲ 2020년 12월 7일 유령노조를 무너뜨리고 금속노조 명성공업지회를 건설한 조합원들이 창립총회 후 현장순회에 나섰다. 출처:금속노조 경주지부 홈페이지

자본가는 물론이고 자신을 ‘실리주의자’라 칭하는 노사협조주의자들은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말이 진리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차고 넘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에 가입한 명성공업지회의 사례 또한 회사가 살아도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북 경주의 끝자락에 위치한 문산공단에 있는 명성공업(주)은 1981년 설립되어 굴삭기 부품을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전체 노동자가 140여 명이고 생산직 노동자의 수는 80여 명에 불과하지만, 한해 340억 원에 가까운 매출에 영업이익은 70~80억 원에 달하는 알짜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회사의 성장과는 반비례하며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다.

유령이 지배하는 공장

최근에는 상여금 600% 시급 전환, 각종 수당 및 복지후생 폐지로 노동자 한 명당 천여만 원에 가까운 임금이 삭감됐다. 가뜩이나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불만은 커져갔지만 관리자들은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현장을 쥐어짜는데 혈안이었다. 명성공업에는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사측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데 손을 거들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2020년 12월 7일 금속노조 명성공업지회를 설립하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입원서를 받았는데 현장 노동자 대다수가 가입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노동조합 설립 후 확인한 결과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5명에 불과했고, 상급단체에서 제명된 사실상 유령노조였다. 회사는 대표성도 없는 유령노조를 앞세워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강탈하고 현장을 탄압해 온 것이다. 위원장이라는 자는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은 삭감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임금은 올리고, 자신이 62세로 정년이 다가오자 회사에 ‘자신만’ 정년을 65세로 늘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게다가 직급이 차장이라 노동조합 가입 자격이 없는 회장의 조카가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실세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회사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서 노동자들만 판돈을 잃은 꼴이다.

다시는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 2020년 12월 16일 새벽, 명성공업 사측은 용역 20여 명 동원해 정문을 막고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들의 출입을 막아섰다. 출처: 금속노조 경주지부 홈페이지

민주노조를 설립하고 명성공업지회는 사측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2020년 임단협 체결’을 위한 기초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사측은 12월 16일 새벽 5시 반에 문자로 ‘코로나19 확산으로 명성공업 임직원 외 출입금지’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고, 용역 20여 명을 동원해 정문을 봉쇄했다. 임·단협을 준비하기 위해 출입하던 지부 간부들의 출입을 막아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겠다는 의도였다. 명성공업지회 조합원들이 출근해 항의하자 용역들의 폭행이 벌어졌다.
사측의 합의서 위반과 용역 폭력 소식을 들은 지역의 노동자들이 즉각 명성공업 공장으로 집결해 명성공업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용역들을 몰아냈다. 분노에 찬 조합원들은 일부는 정문을 사수하고, 일부는 본관에 항의하기 위해 올라갔지만 사측은 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거부했다. 여기서 밀린다면 다시 예전과 같은 비참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에 조합원들은 잠긴 문을 밀고 들어갔지만, 핵심 임원들은 자리를 비우거나 입을 닫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만히 있기만 할 뿐이었다.
명성공업지회는 기초합의서를 위반하고 뒤통수를 친 사측에 부당노동행위자 처벌, 폭행 피해자 보상, 재발방지 대책 수립, 대표이사 사과를 요구하며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측은 회장과 부사장이 심신미약으로 입원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노동조합 때문에 폐업할 것이라는 소문을 흘리면서 조합원들을 흔들어댔다. 

▲ 명성공업 정문을 막고 금속노조 간부들의 출입을 막은 용역들에게 명성공업지회 조합원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고있다. 출처: 금속노조 경주지부 홈페이지

 

민주노조를 통해 배운 승리의 경험

사측은 임금이 깎여도, 욕을 얻어먹어도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일만 하던 노예로만 생각했던 명성공업 노동자들이었기에, 적당히 겁주면 알아서 길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지만 이것은 큰 오판이었다. 민주노조를 세우면서 단결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고, 지역의 노동자들이 물심양면으로 연대하면서 단결한 노동자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겪은 노동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작업거부가 길어지면서 초조해진 것은 사측이었다. 폐업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명성공업지회 노동자들은 공장을 사수하기 위해 매일 철야농성과 출근 선전전을 하고,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원청사인 현대중공업 집회, 지역 선전전, 대표이사 집 앞 선전전을 진행했다. 지역에서는 매일 투쟁에 결합하는 것은 물론이고 투쟁물품과 식사를 제공하고 투쟁기금을 모으면서 힘을 보탰다. 결국 사측은 작업거부 16일째인 12월 31일 노동조합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명성공업지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든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말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단결한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임금 원상회복, 단협 체결, 현장 민주화 등 앞으로의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이 투쟁의 승리로 얻은 자신감으로 투쟁한다면 다가올 투쟁에서도 승리를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