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선업 수주호황과 노동자 옥죄는 구조조정

▲ 한중일 수주실적 추이, 단위: 만CGT,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기지개켜는 조선시황

작년 말부터 활발해지고 있는 신조선 발주가 연초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1월 전 세계 발주량의 절반이 넘는 물량을 수주(대형선박은 100% 한국 조선소가 가져갔다)하면서 조선업이 호황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클락슨리서치는 조선업의 호황국면이 향후 10년까지도 갈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조선업은 선복량 과잉과 세계경기 악화로 한동안 침체를 이어왔다. 더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전 세계 해상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선박발주는 최악(발주량 2019년 대비 33.9%감소)으로 치달았다. IMO의 환경규제 강화에 따라 노후선박의 교체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고, 기다리던 프로젝트들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지속적인 유가하락으로 폐선을 기다리던 노후선박들은 운항을 재개하였다. 그나마 한국조선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수요가 늘고 있는 LNG운반선과 한계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기술력 때문이었다. 
조선업의 후방산업인 해운업은 수년간 대대적인 구조조정국면을 거쳤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도 백신접종이 시작되면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IMO환경규제도 더욱 강화되어 노후선박을 계속 운항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 유가가 상승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그동안 저유황유를 사용하여 노후선박을 운항할 수 있었다) 유가가 상승하면 연료비가 치솟아 신조선박으로 대체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상물동량의 회복, 유가상승, 환경규제 강화, 노후선박 교체시기가 겹치면서 조선업이 다시 호황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목표치를 올리는 조선빅3

작년 한국조선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말 대규모 수주가 이어지며 어느 정도 체면은 유지했지만 수주목표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한국조선해양은 작년 초 수주 목표를 148억 6,300만 달러로 잡았다가 110억 달러로 낮췄다. 한국조선해양의 91% 수주실적은 연초와 비교하면 67.3%에 불과하다. 삼성중공업은 65%, 대우조선해양은 74.5%의 수주실적을 달성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선 빅3는 올해 수주목표를 대폭 상향했다. 한국조선해양은 148억 6,300만 달러, 삼성중공업은 78억 달러, 대우조선해양은 77억 달러를 목표로 했다. 현재까지는 이 목표치가 허황되지는 않은 듯 연일 대형 수주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17일 기준 한국조선해양은 올해에만 약 19억 달러(약 12.7%), 삼성중공업은 13억 달러(17%), 대우조선해양은 6억 달러(7.8%)를 수주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수주실적이다.

떠들썩한 축포 뒤에 도사린 일감부족

 


수주실적 세계1위, 연이은 대형수주라는 장밋빛 전망과 축포는 조선업의 호황이 이미 도래한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는 자본가들만을 위한 축포일 뿐이다. 한국조선업은 작년 세계1위의 수주 실적을 달성했지만 수주량 자체(2019년 980만CGT -> 2020년 819만CGT)는 줄어들었다. 즉, 일감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저가수주가 작년에도 이어졌다. 신조선가는 작년 초 130포인트에서 126포인트로 떨어졌고 올해 1월이 돼서야 1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저가 수주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최근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 초 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6척의 컨테이너선은 대우조선해양이 작년 말에 계약해지한 선박이었다. 한국조선해양이 낮은 가격으로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6척을 가져온 것이다. 
일감부족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경영설명회를 하면서 조선 빅3는 일감부족문제를 언급하며 도크폐쇄와 인력감축, 인건비축소 등 고정비절감과 원가절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거제지역 조선업 노동자는 약 9천명(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사외기자재업체 포함)이 줄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은 아직까지 큰 인원변동은 없으나 작년 중순 경 올해 약 6천명(원·하청 포함 인원이며 최대한 부풀린 것으로 보인다)의 유휴인력이 발생한다고 했다. 1일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주요 업종 일자리 전망」에서도 조선 업종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5.6%(6천 명)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 「2021년 상반기 주요 업종 일자리 전망」, 한국고용정보원


경기가 회복되면 나아질 것인가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대량 수주물량엔 2023년 이후 인도 물량 비중이 높아 2022년 인도물량이 크게 부족하다”며 “올해 1분기 2022년 인도물량을 수주하지 못한다면 2022년 건조량이 800만CGT 이하로 최저점을 기록했던 2018년 건조량 수준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2월 2일자 이데일리, “일감 확보 절실한 조선사, 올해 수주 목표치 상향” 

조선 빅3의 수주잔량은 크게 줄지 않았지만 절대량이 부족하고 선박인도시기의 불균형으로 올해 일감이 크게 부족하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올해 선박수주가 증가하고 1년 정도만 견딘다면 다시 조선업이 부흥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선업 특성상 수주와 건조, 인도까지 1년 6개월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익숙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한국조선업은 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환경규제에 발맞춰 LNG추진선 등 이른바 친환경 선박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신조(선박발주)시장에서 일부일 뿐이다. 일반 탱커나 컨테이너선 등은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압도하고 있고 해양플랜트는 언제 되살아날지 기약이 없다.
그동안 한국조선업이 구조조정에 몰두하고 생산능력을 감축해왔던 것은 일시적 물량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최첨단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건조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목표는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과거와 같은 엄청난 고용인력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영위하지 않고 최대한 규모를 줄이면서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뜻이다. 
대우조선해양과 한국조선해양이 결합되어 세계최대의 조선사가 된다해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수합병은 사칙연산처럼 1+1=2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독자경영을 보장한다해도 그것은 말뿐이지 구조개편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수합병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중복사업부분의 조정으로 전체적인 생산능력을 줄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 현대중공업 하청후생복지비 기성산입 계획


대우조선해양은 연초부터 희망퇴직, 연차소진, 시간외 근무 축소를 추진하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혈안이다. 작년 약 4,500명가량의 하청노동자를 쫓아낸 후 바로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공장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야금야금 진행되었던 부서통폐합과 외주화(하청화)도 진행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동결, 선택근로제 도입, 하청노동자들의 후생복지를 후퇴시키며 원가절감을 시도하고 있다. 정규직노동자의 경우는 설전 임단협이 부결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2월부터 원청에서 직접 지원하던 조/석식 식비를 업체 기성금에 포함시켰다. 앞으로 귀향비, 휴가비, 피복비 등 대부분의 후생복지비가 기성금에 포함된다. 그렇지 않아도 기성금이 부족해 4대보험은커녕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업체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포함된 후생복지비는 그대로 사라질 판이다.
조선산업은 그렇지 않아도 이윤율이 높지 않은데 해가 갈수록 더욱 떨어지고 있다(자동차산업은 10%가 넘지만 조선산업은 5%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윤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과잉설비를 제거하고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즉,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월급을 줄이는 것이 조선산업 자본가들의 지상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수주가 늘어난다해도 평화로운 노사관계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 사측의 공격에 맞서야 최소한의 방어라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하청노동자의 단결과 조직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노사교섭 관행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