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의장이 재산 50% 이상(5조원 가량)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풀겠다고 공언했다. 배달의 민족 창업자 김봉진도 5,500억 원 기부를 약속했다. 일부 언론들은 MS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의 자선과 기부를 예를들며, IT재벌들의 기부 소식에 박수를 치고 있다. 삼성현대LG 등 재벌들이 돈벌이에만 몰두하고 기부를 해도 찔금찔금거리는 것에 비교하며 한국 자본주의가 선진화되고 있다고 칭송한다.
카카오 – 노동자 문제는?
김범수 의장은 기부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신 있게 얘기한다. 그런데 기부 이전에 카카오를 운영하는 김범수는 플랫폼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리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서 기존 자본가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령 카카오는 대리운전시장에 진출하면서 프로그램 이용료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시장에 카카오대리운전이 안착하자 이용료를 요구하여 대리운전기사들의 항의를 불렀다. 카카오는 ‘불합리한 구조개선’과 ‘노사상생’을 약속했지만, 갑질 횡포를 반복해 온 기존 업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리운전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인 간접고용, 특수고용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을 이중착취하고 있을 뿐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하면 되는 문제인데, 카카오는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 김범수 자신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외면하고서, ‘기부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5조 원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런 거금을 기부하겠다니 대단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천문학적 액수를 기부했다는 눈앞의 사실을 대단하다고 칭송하기만 할 일일까? 오히려 한 사람이 어떻게 5조 원이라는 거금을 모을 수 있었는지 그것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5조 원이면 연봉 5,000만 원 받는 노동자가 10만 년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다.
카카오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개인들의 개인정보를 모으고, 광고수입을 독점하며 떼돈을 벌었다. 인터넷 상거래 플랫폼으로 상인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대리운전을 비롯해 특수고용,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을 확산시켜 이중착취를 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은 김범수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으며, 카카오에서 직간접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기부에 쓰인 돈은 어디서 나오나?
김범수와 같은 신흥 부자들의 기부를 놓고 자선 자본주의라고 얘기한다. 자선 자본주의론자들은 재산증식과 상속을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하고, 편법과 불법을 일삼는 파렴치한 기존 자본가들과 다른 ‘인간의 얼굴을 한’, ‘선의’를 가진 자본가가 있다고 한다. 자선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대표적 인물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 역시 ‘기부’와 ‘자선’을 얘기하며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한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축적한 재산의 상당부분은 불법적인 독점과 특허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IT 초창기에 사용되던 프로그램들은 그 어떤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으며, 그것은 모두가 무료로 사용하는 공공의 기술자산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는 바로 이 공공의 자산이었던 대학의 소프트웨어에서 출발하였으나, 거기에 더해진 자신들의 기술과 이전의 기술을 자신들 이름으로 특허출원을 함으로써 공공의 기술을 사유화해버렸다. 그리고 MS의 윈도우 시스템의 독점적 지위를 악용하여 넷스케이프 등 경쟁 브라우저를 불법적으로 밀어내 법정에 서기도 했다. 또한 대대적인 탈세를 저지르며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2014년 8월, 마이크로소프트는 929억 달러를 조세회피천국에 숨기면서, 미국 정부에 그들이 내야 하는 290억 달러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탈세한 돈은 게이츠 재단의 일년 자선사업 지출액보다 큰 돈이다.
그들이 기부에 사용하는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인류가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여 부를 증식한다. 이렇게 축적한 재산을 선심쓰듯 기부한다.
그들은 왜 기부하는가?
자본가들의 자선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독점과 노동탄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산업역군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 ‘기부’다. 자선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철강재벌 카네기는 여러 철강회사를 합병하며 철강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했다. 독점을 십분 활용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카네기는 노동탄압으로 악명높았다. 1892년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회사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했고, 이 때문에 홈스테드 제철소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다. 그러자 회사는 폭력배 300여명을 투입했고,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해 10여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당했다. 노조를 해산시킨 뒤 카네기 철강은 급성장하기도 했다. 카네기는 뒤로는 잔인하게 노동탄압을 일삼는 악덕 사장이면서 앞으로는 기부왕의 모습을 자처했다.
그들이 자선을 펼친 이유는 ‘착한 자본가’였기 때문인가? ‘선의’를 가진 자본가였다면 재산 축적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고 노동권을 존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임금을 지급하는 만큼 자신들의 이윤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한 목적 그대로, 자선과 기부 역시 회사의 이미지를 높여 이윤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가난한 노동자들이 너무 못살게 되면 파업과 시위를 하며 저항하게 되고, 그러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시스템이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카네기는 “부자와 빈자를 조화로운 관계 속에 묶어두기” 위해 자선사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자본가들에게 자선은 평판을 좋게 만들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는 하나의 마케팅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짜’란 없다. 자본가들에게 ‘자선’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한 투자에 불과하다.
자선 자본주의?
자선과 자본주의는 성립하지 않는 모순된 말이다. 야만적인 경쟁과 약탈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가 ‘선한’ 의도를 가질 리는 없다. 다만 ‘선한’ 의도로 포장할 수 있을 뿐이다. 자선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화장술에 불과하다.
삼성처럼 ‘기부’를 적게 하는 것보다 카카오처럼 많이 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 문제는 기부의 금액이 아니다. 자본가들의 기부가 가진 의미와 역할이 문제다. 자본가들은 재산을 축적한 과정은 숨기며, 벌어들인 재산을 기부하는 것을 조명받으려 한다. 반대로 재산축적 과정을 조명하고, 그들의 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밝혀내야 한다. 그들의 ‘자선’에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을 감추는 자선 자본주의의 화장을 지워야 한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