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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휴업수당으로 장난질하는 현대중공업 원·하청

또다시 발생한 사망사고 

  2월 5일 현대중공업 대조립1부에서 정규직노동자가 사망했다. 안전통로를 지나던 노동자를 2.5톤 철판이 덮치면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대조립1ㆍ2ㆍ3공장에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고, 3월 4일에야 모든 작업중지명령이 해제됐다. 
웬만하면 빠른 시일 안에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려고 하는 노동부도 이번엔 꽤 원칙적으로 대응했다. 작업중지명령은 안전조치 미흡으로 한차례 연장되고,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안전교육과 청취의견 미제출로 또 연장됐다. 2월 22일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산업재해가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이라고 한 한영석사장의 망언도 작업중지명령이 길어지는데 한몫했다. 

일 좀 하자고 아우성치는 하청노동자

▲ 현대중공업 원·하청노동자들이 중식시간 각 식당을 돌며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점검하고 또 점검하면서 부족한 안전조치를 강화해야만 한다. 그런데 조선소에서는 매번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때뿐이고 위험작업은 반복된다. 
심지어 하청노동자들은 작업중지가 빨리 끝나길 바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작업중지가 길어지면서 하청노동자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규직의 경우 단협에 따라 휴업수당을 지급받지만, 하청노동자들은 휴업수당이라는 걸 제대로 받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거의 한 달간 일을 못했으니 당장 먹고 사는 게 어려워졌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은 하루빨리 작업중지명령이 해제되기를 바랐다. 노동조합 때문에 작업중지명령이 길어진다는 오해로 인해 노동조합을 원망하거나 항의성 전화를 하는 하청노동자들도 많았다. 

휴업수당은 나왔으나 또다시 배제되는 물량팀 하청노동자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업체에 교육수당이라는 명목으로 휴업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물론, 하청노동자들에게 지급할 책임은 업체장들에게 떠넘겼다. 업체장들은 원청이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지급한 휴업수당으로는 법적 기준(평균임금의 70%, 또는 통상임금의 100%)으로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 기성금 부족은 현대중공업에서는 오래된 일이고, 업체장들은 이를 하청노동자들의 4대보험과 임금 등을 줄이면서 충당해왔다. 
부족한 휴업수당을 받은 업체장들은 ‘묘안’을 냈다. 본공(상용노동자)들은 8시간의 70%인 5.6시간(이는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법이지만 조선소에서는 만연해 있다)으로 계산해 휴업수당을 지급하고 물량팀들은 한 푼도 안 주기로 한 것이다. 일부라도 지급한다고 했으면 반발이 적었을지 모르지만 정말 한 푼도 주지 않는다고 하자 급여일 전날인 9일 물량팀들은 일손을 놓고 공장을 나왔다. 
작년 6월에도 연이어 4명의 원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으면서 보름 이상 일을 못 한 건조부 물량팀들이 휴업수당을 요구하며 집단 반발한 적이 있었다. 비슷한 일이 이번에는 내업인 대조립부에서 발행한 것이다.

 

▲ 3월 11일자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소식지


원청은 불법조장, 하청은 휴업수당 착복

   휴업수당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납득할 수 없는 기준으로 휴업수당을 업체에 지급했다. 업체들은 부족하더라도 원청으로부터 받은 돈을 그대로 지급하지 않고 불법적인 기준(5.6시간)과 물량팀 배제로 휴업수당을 착복했다. 
물량팀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손을 놓으며 저항하고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물량팀들이 조직되지 않았고 물량부족으로 경쟁이 심하다는 약점을 이용해 벌써부터 다른 부서의 물량팀을 부르거나 턱도 없는 일부 금액만 주면서 회유하고 있다.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한 일부가 이 회유에 넘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원청이나 하청업체나 노동자들의 분열을 대놓고 이용한다.


단결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하청노동자들의 후생복지를 대폭 후퇴시키고 있다. 2월부터 아침ㆍ저녁 식대로 5,500원(정규직은 기존처럼 1,000원)을 내고 먹어야 한다. 원청은 식대를 기성금에 포함시켜 업체장들에게 지급했지만, 밥값은 그대로 업체장 주머니로 들어갔다. 원청은 업체장들에게 지급하는 기성금을 계속 줄여왔기 때문에 업체장들이 그것을 착복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했다. 이외에도 명절귀향비, 여름휴가비, 우천시명휴, 피복비, 혹서기연장(혹서기에는 기온에 따라 점심시간을 연장해주고 이를 유급으로 보전해줬다) 등을 기성금에 포함시켰다. 밥값처럼 이 지원금도 기성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업체장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 뻔하다. 결국, 하청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삭감됐다. 
여기에 이번처럼 중대재해로 인한 휴업수당까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생계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인내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압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물량팀노동자들의 작업거부와 같은 자발적 저항이 이곳저곳에서 터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조직되지 못한 산발적인 저항은 오래가기도, 요구를 쟁취하기도 힘들다. 작년엔 외업인 건조부였지만 올해는 내업인 대조립부였다. 함께 싸우지 않으면 당장은 나의 일이 아니어도 곧 똑같은 일을 당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다른 대안은 없다. 계속해서 하락하는 노동조건과 임금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이 필요하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