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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기계 해고자 서진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 3월 19일(금) 출근시간, 율전재 옥상에 서진노동자 4명이 올랐다. 서진노동자들의 요구인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테이블 구성과 하청노동자 복지후퇴와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율전재 옥상에 걸었다.

대답 없는 현대건설기계와 현대중공업 

  작년 7월 24일 여름휴가를 앞두고 기습적으로 발표된 폐업공고 이후 서진노동자들이 휴가도 반납하고 현대중공업 정문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2020년 7월 30일)한지 오늘로 253일이 지났다. 서진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경비대에 의해 현장에서 완전히 밀려나기 전까지 꾸준히 현장투쟁을 전개했다. 밀려난 후에도 수시로 현대건설기계는 물론 현대중공업 담장 안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의 체불임금, 임금삭감, 무급휴업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했다. 
하지만, 원청인 현대건설기계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시정지시 명령(2020년 12월 23일)이 나왔는데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에 서진노동자들은 도대체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답을 할 수 있는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기 위해 혹한이 몰아치는 1월 25일부터 4개 거점(서울 계동 현대사옥, 분당 현대건설기계 본사, 부산 현대글로벌서비스 본사, 울산 현대중공업) 노숙농성을 2주간 진행했다. 4개 거점에서는 매일 면담요청공문을 전달하기 위한 투쟁이 전개됐다. 그러나 원청인 현대건설기계(분당)만 공문을 받을 뿐 나머지 거점에서는 공문조차 받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자본을 향해 투쟁의 깃발을 올리다

  서진노동자들이 처음에 요구한 것은 업체로의 고용승계였지 직접고용도 아니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시작했던 노조활동이 불법파견 직접고용 요구로 확대되었던 이유는 막무가내 집단해고와 경비대의 폭력, 시간끌기로 일관한 현대중공업 자본의 태도 때문이었다. 서진노동자들은 이제 하청업체 해고자가 아니라 현대건설기계 해고자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투쟁수위도 높이고 있다. 
4개 거점 노숙농성 이후 일상적인 출퇴투와 연대투쟁만 전개하던 서진노동자들은 3월 19일 금요일 이른 아침 현대중공업 정규직 기숙사인 율전재 옥상에 올랐다. 율전재는 현대중공업 출입문 중 하나인 서부문 바로 앞에 있고 정문에 있는 본관에서도 잘 보이는 곳이다. 넓은 현장 안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건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옥상에 오른 4명의 서진노동자들은 바로 그날 저녁에 내려와야만 했다. 옥상난간에 현수막을 게시했는데도 한동안 잠잠하던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떼거리로 몰려와서는 옥상출입문을 큰 망치로 부수고 준비해간 농성물품을 대부분 빼앗아갔다. 4명의 서진노동자들은 급하게 건물 옥상에 있는 기계실 옥상으로 다시 올라야만 했다. 경찰서장은 설득은커녕 빨리 내려오라고 협박하고 119구조대원들은 기계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제계단에 묶어둔 쇠사슬을 끊어주며 길을 텄다. 경비대, 경찰, 119구조대가 삼위일체가 되어 고공농성에 돌입한 서진노동자들을 겁박했다. 

▲ 현대중공업 경비대는 설치한 현수막을 모두 뜯어냈다. 옥상에 오른 4명의 서진노동자들은 옥상 위의 기계실 옥상으로 다시 오를 수밖에 없어다. 

이 날은 봄날치고 유난이 춥고 강풍도 거셌다. 급하게 피하느라 준비해간 옷가지며 물, 식량 등을 챙기지도 못했다. 게다가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다.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고공농성을 결의했던 동지들도 밑에서 이들을 맞이하는 동지들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층 출입문을 막고 있던 경비대의 박수와 비웃음에 치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비웃음을 배로 갚아주다

  율전재 고공농성을 결의했던 동지들은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다. 미안함과 아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진노동자들은 곧바로 두 번째 투쟁을 이어가며 현대중공업 자본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사라지게 했다. 
현대중공업 정문 맞은편에는 2017년 구조조정과 사업분할을 한참 진행하면서 투기자본에 매각된 현대호텔이 있다. 비록 현대중공업 자본의 소유는 아니나 정문 본관건물에서 너무나 잘 보이는 현대호텔이 두 번째 고공농성 장소였다. 3월 22일 월요일 아침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전영수사무장과 서진의 이병락대의원이 이 호텔 50m 꼭대기에 올랐다. 다른 출입문인 일산문에서 아침 출투를 진행하던 서진노동자들은 두 동지가 호텔 옥상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출투를 중단하고 정문으로 달려갔다. 

▲ 3월 22일(월)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전영수사무장과 서진의 이병락대의원이 현대중공업 정문앞 현대호텔 옥상에 다시 올랐다.

너무나 높았다. 이날도 강풍이 불었으나 날씨는 너무 청명했다. 그 파란 하늘 아래 두 동지는 현대중공업 자본의 거대한 성채인 본관을 마주보며 우뚝 서 있었다. 서진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 앞 농성장에 집결하자 얼마 안 있어 현대중공업 경비대들이 호텔로 모여들었다. 현대중공업 자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호텔에 경비대가 나타나자 서진노동자들도 길 건너편 호텔로 달려갔다. 호텔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경비대를 마주보며 잠깐 동안의 대치가 있었다. 경비대의 똥 씹은 표정은 볼만했다. 바로 3일 전 그 의기양양하던 비웃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경비대가 얼마 안 있어 철수했기 때문에 별일은 없었으나 만약 이번에도 율전재와 같은 짓을 시도한다면 이번만큼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진노동자들의 표정에 역력했다.

깃발이 되다

서진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크게 두 가지 핵심요구를 내걸었다. 당사자를 포함한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테이블 구성, 하청노동자 복지후퇴와 차별 철회가 그것이다. 노동부는 이미 불법파견 시정지시 명령을 내리고 과태료 4억 6천만 원도 부과했다. 서진노동자들이 원청인 현대건설기계와 그 위의 원청(현대중공업), 또 그 위의 원청(현대중공업지주)에 직접 찾아가도 현대중공업 자본은 묵묵부답이다. 작년 여름에 해고되어 지금껏 대화 좀 하자고 했는데 아직까지 단 한마디도 직접 듣지 못했다.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은 아침·저녁 밥값으로 갑자기 1,000원에서 5,500원을 내야 했고, 앞으로는 휴가비, 피복비, 명절떡값 등도 없어질 처지에 놓였다. 임금은 물론 4대보험 조차 수시로 체불·체납되는 하청노동자들에게 복지후퇴는 또 다른 임금삭감이다.  
이처럼 서진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는 물론 하청노동자들의 복지후퇴 철회를 요구하며 현대호텔 옥상에 올랐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아도 보고 들을 수밖에 없는 현대호텔 고공농성은 이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깃발이 되었다.

서진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서진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8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수줍어하던 노동자들이 경비대의 폭력을 뚫고 현장을 누볐고,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노숙을 감행했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현대중공업 소유의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첫 번째 고공농성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고공농성을 감행하며 끈질긴 투쟁의지를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줬다. 지금껏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이 모든 과정을 꿋꿋이 해내고 있는 서진노동자들은 비록 작은 대오지만 노동자가 얼마나 끈질기고 대단한 존재인지 보여주고 있다. 
삼성중공업에서 대우조선에서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지만 서진노동자들이 세운 투쟁의 깃발이 마중물이 될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