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회사가 사라졌다〉는 ‘싸우는 여자들 기록 팀 또록’이 펴냈다. ‘기록하고 또 기록하자’, ‘또박또박 기록하자’라는 의미인 ‘또록’은 투쟁을 기록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뭉쳐진 팀이라고 한다. ‘또록’은 주로 싸우는 여성들을 기록한다. 이 책 역시 여성이 주가 되는 사업장에서 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했다. 문 닫은 회사 앞에서 다시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해고? 해고!
해고가 만연한 세상이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는 경우는 허다하다.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지만, 해고한다는 표현이 아닌 경우도 많다. ‘인소싱, 아웃소싱, 업체폐업, 계약만료’ 등은 표현만 다를 뿐, 해고의 다른 이름이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너무나 쉽게 잘라낸다. 그러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한 삶은 보통의 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보통의 삶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해고가 되어 뿔뿔이 흩어진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어디선가 또다른 노동으로 자신들의 삶을 연명하다가 또다시 해고되면 또다른 곳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 붙인다. 해고와 고용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성진씨에스, 신영프레시젼, 레이테크코리아’에서 해고되어 싸우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천대받는 여성의 노동
자본주의 세상에서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이윤을 위해 생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여성에 비해 근력이 좋은 남성노동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가부장적 가족체계는 가장인 남성이 일차적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반면 여성의 노동은 곁달린 것으로 취급되었다. 살림에 보태기 위해 일을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똑같은 시간동안 일을 해도 여성이 하는 노동은 평가절하 되는 경우도 많다. 해고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잘리면 쉬거나 봉사활동을 하라고 한다. 내 노동의 가치를 뜨겁게 생각해 주지 않는다”라는 인터뷰 내용처럼 남성의 해고보다 여성의 해고를 더 가벼운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게다가 여성노동자는 직장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집안일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분업의 편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의 경우도 왜 이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집이랑 가까워서 집안 일 하면서 다니기 편하니까”라는 이유들이 대부분이다. 시급이 낮아도, 상여금이 없어도, 학자금 지원이 없어도 집에서 가까운 기존 직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악용해서 더 악랄하게 여성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성진, 신영, 레이테크코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들 노동은 천 원짜리야.” 레이테크코리아 사장이 여성노동자들에게 한 말이다. 자본가들에게 노동자들은 착취의 대상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면서도 그들은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하찮은 것으로 비하한다. 특히 여성이거나 어리거나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심하다. 레이테크코리아 사장의 발언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내 인생의 ‘노동조합’
‘요구할 수 없는 사람들’로 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며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회사에 맞서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 힘에 눌린 회사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듯 한다. 그러나 금세 단결을 경험한 노동자들을 분산시키고 구심점이 되는 노동조합을 깨면서 정리하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이, 관리자의 지시에 고분고분 순응해왔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부당한 현실에 눈감지 않고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외치는 그 모습이 자본가에게는 얼마나 참기 어려운 일이었을까? 온갖 회유와 협박이 통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꺼내드는 카드가 바로 ‘업체 폐업으로 인한 해고’다. 자본가는 이 방법을 이미 오래 전부터 써 먹어 왔다. 하나로 뭉친 노동자를 깨뜨리는 데 ‘불안정한 고용’은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경우 2019년 12월 31일 하청업체 여러 곳을 폐업했다.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이 눈엣가시였던 한국지엠 자본은 600여명의 노동자를 업체 폐업이라는 구실로 공장 밖으로 내몬 것이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문자로 해고통보를 날렸다.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 원청은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을 빼고 업체에게 공을 떠넘겼다. 너무나 손쉬운 방식이다. 신라대도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도 청소용역업체 계약만료, 업체폐업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말이 폐업이지 사실상 노동조합으로 뭉쳐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 것에 대한 탄압이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전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업체 폐업으로 인한 해고에 맞서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싸우고 있다.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든든한 내 편이 된다. 노조활동을 통해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하게 되고 연대의 힘을 제대로 알아간다. 싸움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느끼게 되고,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투쟁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일상적인 폐업 속에서
이 책 3부에는 요양보호사, 건설 사무직, 출판 편집자, 의료계 종사자, 제조업 생산직(아사히 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이면을 확인하면서 사회를 새로 보게 되고, 새로운 삶의 방향성까지 고민하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생각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싸우냐, 그 싸움이 정당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싸움을 통해 반대로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생산의 주체는 누구인지, 공공의 이익을 지키려는 자는 누구인지, 이 사회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국가와 사회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 사회의 잘못에 맞서서 싸우다 보면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모든 노동자가 ‘우리’되어 뭉치는 것이 답!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은 말한다. “나를 고용하라. 내가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라”. 이 책은 ‘성진씨에스, 신영프레시젼, 레이테크코리아’에서 해고되어 싸우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이것은 다만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내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이걸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더 할 수 있는지’, ‘나보다 먼저 그 일을 겪은 노동자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다보면 노동자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고민과 생각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결국 여성노동자에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노동자에게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승리하기를! 모든 해고노동자들이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기를! 그래서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꿈이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