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행진투쟁을 진행했다. 세종시 노동부에서 출발하여 서울 청와대까지 불법파견 사업장과 투쟁사업장을 순회하고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서울 중심가를 행진했다. 긴 겨울을 지나 눈이 녹듯 얼어붙은 정세를 뚫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물결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췄지만 자본의 노동자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방역을 핑계로 집회를 제한하고 투쟁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고민을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이 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정규직 투쟁은 한 사업장만의 힘으로 돌파하기 어렵다는 판단 역시 동일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금속 비정규직 대표자회의에서 2주간의 공동투쟁을 결정했다. “뭐라도 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라는 절박한 심경으로 2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현대제철, 한국지엠, 기아차, 아사히, 현대중공업, 현대위아, 현대차 판매, 포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1주차
1주차에는 노동부에서 시작해서 현대제철 당진공장, 현대위아 평택공장, 기아차 화성공장과 소하리 공장 그리고 한국지엠 부평공장을 거치며 대표적인 불법파견 투쟁사업장을 순회했다.
각 사업장을 순회하며 각자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투쟁이 가진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했다. 불법파견 투쟁이 ‘정규직 되기 위한 투쟁’으로 제한되면서 현대기아차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된 노동자들이 이후 의미를 잃고 노조활동에서 멀어지게 되는 문제가 생겨났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요구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면 불법파견 투쟁이 한계가 있으니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조직을 유지,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품사 중심의 입장도 등장했다. 이 경우 조직을 안정시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원청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원청이 허용하는 가이드라인 안에서 노조를 인정받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노동조합활동과 투쟁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법파견 투쟁의 한계처럼 노동조건 개선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한계점을 가진다.
결국 불법파견이냐 노동조건 개선이냐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런 요구를 통해 어떻게 단결을 확대하고 투쟁을 만들어가며 연대를 확장시킬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이다. 불법파견 투쟁을 소송에 가두지 않는 것,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제기하는 것, 정규직이 된 뒤에도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갈 지가 현재 남아있는 불법파견 사업장들의 또다른 고민과 과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2주차
2주차에는 서울로 들어와 현대기아차 본사, 현대차 국내사업본부, 포스코 본사를 거쳐 강남의 도로를 행진했다. 서울에선 10인 이상 집회가 금지되어 행진과 집회를 가로막는 경찰들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 10km 이상을 꿋꿋이 행진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렸다. 시민들의 반응은 이전과 달랐다. 예전엔 ‘왜 대통령 욕하냐’, ‘길 막힌다’며 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불법파견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 시민도 있고,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민들, 박수치며 지나가는 시민도 있었다. 82% 넘게 지지 받으며, 정의와 공정을 얘기하던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의 벗이 아닌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것이 폭로되면서 현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커진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고 느껴졌다.
서울도심 행진과 함께 대법원 앞 노숙투쟁도 진행했다. 대법원에 계류된 불법파견 소송이 금속 사업장만 6개, 1,012명에 달한다. 포스코의 경우 5년째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판결을 지연하는 사이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길거리로 내쫓겼다. 대법원은 판결을 지연시키며 실제로 자본의 편을 들고 있다. 법원의 시간끌기에 생계마저 어려워진 해고노동자들에게 자본은 위로금 받고 소송을 포기하라고 회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KTX 승무원 불법파견 판결을 기각한 사법농단이 드러나 세상의 공분을 샀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와 법원, 자본이 한 몸이 되어 불법을 자행한 자본가들은 감싸고, 쫓겨난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를 규탄하기 위해 대법원 로비에서 비정규직 5명이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 피켓팅을 진행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순식간에 힘으로 제압되었다. 보안요원 20여명이 모여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노동자들의 판결은 5년이나 끌면서, 5명의 노동자는 5분 만에 끌어내는 신속함을 보였다. 대법원에 항의하기 위해 소탕단 단원들은 대법원 앞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노숙을 진행했다.
연대의 힘
소탕단은 불법파견 사업장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불법파견만으로 요구와 내용을 한정하지 않고 비정규직 전반의 문제를 알리자고 했다. 연대의 중요성 역시 공유하며 출발했다.
그래서 독재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는 미얀마 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의미로 미얀마 무관부 앞 항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단식투쟁 중인 아시아나KO 동지들도 함께하고,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문화제를 열고 함께 노숙하기도 했다. 현대차판매 용운대리점 노동자들이 노조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곳을 찾아갔다. 광화문 앞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아사히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지만 경찰이 가로막아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 1명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업체폐업에 맞서 조합원 2명이 고공농성중이었던 현대중공업 서진 동지들과 함께 계동에 있는 현대 본사 앞 선전전도 진행했다.
1주차 일정을 끝낸 시점에 긴급하게 대우조선 파워공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요청이 있었다. 힘든 집중투쟁 일정임에도 소탕단 동지들은 서울에서 거제까지 단숨에 달려가기도 했다. 작은 힘이지만 함께 모여 투쟁하며 힘을 주고 힘을 받는 가슴 벅찬 날들이었다.
마치며
소탕단 일정에 참가한 동지들은 “우리 사업장만 힘든 게 아니었고, 더 어렵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보면서 힘을 받았다”, “다른 사업장 상황을 보고 들으면서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혼자 하면 잘 안되는데, 여러 사업장이 모여 함께 하니 더 큰 힘이 되었다,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코로나 방역 통제에 맞서 좀 더 과감한 투쟁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작은 힘들이 모여 더 큰 힘이 된다는 소박한 진리를 다시 확인한 투쟁이었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춤을 추고 함께 싸웠던 기억들이 소탕단에 참여했던 동지들 한 명 한 명에게 불씨처럼 남아 투쟁의 의지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또 투쟁은 이어진다.
진환
소탕단 일정에 참여한 사업장의 상황과 고민
▶현대제철 : 금속 비정규직 중 가장 많은 조합원이 있다. 그래서 규모도 있고 하청업체와 단협도 맺어 나름대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업장이 큰 것에 걸맞게 조합원들의 단결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규모가 크고 힘이 있는 만큼 나누고 연대하는 노력 역시 더 필요하다. 제철소는 산재문제가 심각하고, 여전히 산재사망사고도 벌어지지만 사측은 제대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일부 부서에만 국한했고, 불파 문제가 이슈화되기 시작하자, 사측에서는 1차 하청 신입사원은 뽑지 않고 2,3차 하청을 확대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 현대위아, 모비스와 같이 자회사 형태로 업체를 통합한다는 얘기도 나오는 중이라고 한다. 사측의 꼼수에 대응하기 위해 1차에 멈추지 않고 2, 3차 하청노동자를 조직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현대위아 평택공장 : 부품사 중 유일하게 불법파견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다른 사업장은 이미 불파 문제를 덮기 위해 업체를 통합하고 원청의 작업지시 흔적을 지우면서 자회사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사측은 현대위아 평택 비정규직지회에 대한 탄압의 수위를 높였다. 기존 업체를 울산으로 내려 보내고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면 위로금을 지급하고 평택공장의 신설 업체로 취업시켜 주겠다며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다. 전직 금속노조 간부들이 조합원들을 조직하여 자회사로 넘어가면서 어용노조를 만들었고, 이를 거부한 조합원들을 울산공장으로 강제전보했다. 회사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투쟁하지 못하도록 해고도 시키지 않고 있다. 순회투쟁을 간 그 날 현대위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결의대회 후 결혼식을 공장 앞에서 열기도 했다. 투쟁을 지지해주는 신부에게 다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기아차 화성공장 : 기아차 비정규직지회는 2007년 도장부 점거투쟁 이후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 1사1노조가 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분회로 조직편제된 이후 비정규직분회는 독자적 투쟁이 어렵게 되었다.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은 이유가 비정규직과 함께하겠다는 것보다 독자적 투쟁을 가로막겠다는 의도가 컸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적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2017년 비정규직분회는 지부에서 쫓아났다. 독자노조에서 1사1노조로, 다시 독자노로 바뀌는 과정에서 큰 아픔을 경험한 동지들이다. 정규직화 요구를 무시하던 사측은 법원판결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승소하자 2014년부터 특별 신규채용으로 조합원들을 분열시켰다. 다수의 조합원들이 특별채용에 응시했지만 아직 남아서 투쟁을 이어가는 조합원들도 있다. 사측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굳건히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도 있지만, 소송 결과만을 기다리며 활동하지 않으려는 조합원들도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지엠 : 창원의 경우 2005년 노조가 만들어진 후 전체 800명 중 600명이 노조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사측의 업체폐업과 해고, 탄압으로 대부분이 탈퇴했다. 일부가 선별 복직되기는 했지만, 복직한 조합원들은 노조로부터 멀어졌다. 그 후 조합원 2명으로 유지되다 2013년 불법파견 대법원 형사판결이 나온 후 5명이 가입하여 불법파견 소송과 함께 현장투쟁을 진행했다. 꾸준한 현장활동으로 5명이 다음해에는 14명이 되고, 그 다음해에는 50명으로 늘어났다. 50명이 되자 사측은 업체폐업으로 다시 노조를 깨려고 했지만 버텨냈다. 2016년에는 100명이 새로 가입해 150명의 지회가 되었다. 결국, 사측이 핵심 3개 업체를 폐업하려 했지만 한 달이 넘는 파업투쟁을 하며 고용을 지켜냈다. 업체폐업으로 노조를 깨지 못하자 2017년에는 정규직노조를 회유하여 비정규직 조합원이 있는 공정을 인소싱하면서 조합원 60여명이 해고되었다. 2019년에는 1교대 전환을 핑계로 600여명의 비정규직 대부분을 해고하기도 했다. 계속 탄압을 받고 있지만 노동조합의 깃발을 들고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부평공장 역시 2007년 노조 건설 이후 업체폐업, 해고, 노조탄압을 받고 있지만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지엠은 대법원에서 2013년, 2016년 두 번의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법파견을 부정하며 노조탄압에 몰두하고 있다.
▶아사히 : 2015년 노조를 만들자 업체를 폐업하고 조합원 전원을 해고했다. 투쟁 과정에서 사측의 희망퇴직 회유에 100여명이 투쟁을 포기했으나 22명은 끝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원은 줄었지만 연대를 더 확대했다. 투쟁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헌신적으로 연대했고, 그만큼 많은 관심과 연대를 끌어내기도 했다. 끊임없는 연대로 작은 노조지만 대규모 사업장 이상의 실천력과 투쟁력을 보여주는 아사히지회는 22명이 2,200명의 힘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사히도 노동부에서 불법파견으로 직접고용 시정명령이 떨어지고 사장은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 : 서진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내 건설기계를 만들던 노동자들이다. 10년 넘게 열악한 노동조건이 바뀌지 않고 늘 최저임금과 업체폐업에 시달리다 2019년에 30여명이 노조에 집단가입했다. 하청업체와 임단협을 시작하자 원청이 나서서 탄압을 시작했고 업체를 폐업시켰다. 위장폐업에 맞서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시작한 투쟁은 불법파견 투쟁으로 전환됐다. 현재 노동부는 불법파견으로 직접고용 명령을 내렸으나 현대중공업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서진 노동자들은 두 차례의 고공농성을 하는 등 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불법파견 투쟁 사업장 대부분은 열악한 노동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시작했다. 하청업체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원청이 나서서 노조를 탄압한다. 실제 사용자가 하청이 아니라 원청이기 때문이다. 이런 명백한 현실을 확인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인 진짜사장과 싸움을 시작한다. 그리고 원청과 싸울 무기 중 하나인 불법파견 문제를 집어 든다. 자본이 비정규직 제도를 도입하며 만들어놓은 그 빈틈인 불법파견을 파고들며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제도가 가진 모순과 문제점을 제기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오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투쟁 속에서 몸소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