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4년의 최저임금

최저임금 1만원은 문재인의 선거공약이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8년에 최저임금은 16.4% 인상됐다. 그 다음해인 2019년에는 10.9% 인상됐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이행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시키는 기만적인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거의 지워버렸다.
그런데도 상여금이나 변변찮은 수당조차 받지 못했던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인상효과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반발했다. 그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해 고용과 노동시간을 대폭 줄이려 했다. 그들은 주휴수당(주휴수당은 노동자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할 경우에 주어진다)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일하는 시간이 주당 15시간이 되지 않도록 쪼개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했다. 이 때문에 가장 밑바닥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고용이 더욱 불안정해졌고, 소득은 더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욱 확대되고 소득이 감소한 것이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른 직접적 결과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경기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임금인상 요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용자들의 몰락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표면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반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위기 자체에 있다.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근거로 자본가들이 공격에 나섰다. 그래서 2020년에 최저임금 인상율은 2.9%에 그쳤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2021년의 최저임금 인상율은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1988년 이래 최저인 1.5%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인상 공방이 벌어지게 된다. 3월 31일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에 2022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달 20일에 최임위에서 처음으로 22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대립하는 두 세력, 대립하는 두 논리
최저임금은 단지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소상공인, 자영업자에 한정되어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은 전체 노동자와 전체 자본가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최저임금 인상율은 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인상율의 지표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 최저임금은 (아래에서 좀 더 살펴보겠지만) 독점대기업의 자본가들의 이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긴 해도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벌어지는 최임위에서의 논리적 공방에서는 당연하게도 최저임금 적용대상인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와 이들을 주로 고용하는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처지가 대립한다.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이 대립이 훨씬 격렬해진다. 노동자대표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를, 그리고 자본가대표들은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이 참여한 최저임금연대는 “코로나19로 ~ 가장 피해를 본 계층은 임시일용직, 비정규직 등” 저임금 노동자들이라며 “저임금, 저소득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최저임금의 현실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임위의 노동계 대표들도 같은 근거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노동계의 대표들은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경총과 최임위의 자본가 대표들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여전히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불능력이 고갈되어 최저임금조차 지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19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자본가들은 소상공인들과 중소영세사업자들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그 인상을 최소화하자고 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이냐? 영세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생존이냐?
양대 계급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세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사업주들과 다른 한편으로 ‘불안정 고용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저임금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됐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편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근거로 노동계는 코로나19로 고용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소득이 감소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생활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용자들(자본가들)은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사업부진과 조업중단 등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근거로 최저임금이 동결되거나 최소한으로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당연하게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영세한 ‘소상공인들, 자영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극도의 저임금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저임금 노동자들이 더 희생해야 하는가? 대자본가들이든 중소자본가들이든 자영업자든 사용자들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아니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저임금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인상함으로써 안 그래도 지불능력이 바닥으로 추락한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몰아야 하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말하는 이는 없지만(노동계를 대표한다는 위원들조차도 영세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의 대폭인상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소위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중의 일부는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서 노동계의 주장을 수용하자는 절충안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방안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어느 정도 실행됐다. 그러나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문재인 정부는 ‘재정부족’을 이유로 지원금을 대폭 줄였다. 현실적으로 이 재정을 마련하는 것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이윤을 대거 축적하고 있는 독점대기업 자본가들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대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가 상승하는 때라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대거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지금처럼 자본주의 경제가 극도로 불안정한 국면에서는 최저임금의 대폭인상이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몰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경총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조차 지불할 수 없는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더 늘 수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 사업주들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이 더욱 불안해지고 소득이 더욱 감소할 수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몰락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그들은 독점적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밀려서 몰락할 뿐 아니라, 수많은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 자신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몰락해 간다. 최저임금 인상은 단지 그들의 몰락을 가속화할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한편에서 몰락과 가난이 엄습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엄청난 부가 집중된다.
왜 독점적 대자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가?
어떤 사회가 생산한 부의 총량 중에서 어느 한쪽이 더 많이 가져가면 나머지 쪽에서 결핍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 사회에서 생산한 부의 총량이 감소했는데도 경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독점대기업 자본가들의 부가 한층 늘어났다면 나머지 다수가 차지해야 할 부의 양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는 하나의 법칙이다. 코로나19로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독점대기업 자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독점대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SK텔레콤 22%, 삼성전자 30%, LG전자 31%, 현대자동차 40%, CJ 52%, 카카오 121%를 기록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독점대기업 자본가들은 하청에 하청을 잇는 피라미드 구조를 통해 부를 빨아들인다. 독점적 대기업들은 피라미드의 사슬구조 속에 있는 하청업체들의 하청단가를 후려쳐서 하청사장들의 지불능력을 고갈시킨다. 그러나 하청사장들은 원청의 횡포에 대항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고, 복지를 축소한다. 4대보험을 납부하지 않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떼먹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독점대기업 자본가들은 하청의 사슬을 통해 하청노동자들을 극악하게 착취해 그들의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런 독점적 대자본가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도, 아니 오히려 위기를 이용해서 대자본가들은 더욱 많은 부를 축적했다.
독점대기업 자본가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득이 감소해 노동자들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것을 걱정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늘상 노동자들의 숫자를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려 해왔다. 그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돼, 하청단가를 높여줘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곧 그들이 지불해야 할 돈이 늘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쌓아놓은 이윤이 축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독점대기업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계속해서 극악한 저임금 수준으로 묶어 놓음으로써, 그리하여 하청단가 인상의 압력이 증대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부가 아래로 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독점대기업이 쌓아올린 부를 헐어내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방향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몰락, 그러나 계속되는 노동자로서의 삶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100개 중 95개는 망해왔고 또 망할 운명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이 그들을 끊임없이 몰락시키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그들은 앞으로도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그들의 몰락을 가속화했을 뿐이다. 그리고 최저임금의 인상은 그런 그들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그 인상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그들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 정부와 자본가들의 숱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그들을 구제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몰락한 이들은 생존을 위해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노동자로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숙명이다. 때문에 최저임금 대폭인상은 숱하게 몰락해가고 있는 영세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미래를 위한 주장이다. 몰락하는 이들에게는 대단히 잔인하고 고통스럽겠지만 그 고통을 지양하는 미래 지향적인 방식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아래서는 이런 생존투쟁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생존투쟁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길 말고는 없다. 그나마 자본주의 하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독점자본의 이윤을 아래로 향하게 만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대하게 조직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임위의 테이블 위의 공방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투쟁으로 전화할 수 있을 때, 그 돌파구가 실제로 열릴 것이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