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작전명 ‘이재용 구하기’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경쟁국은 강력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위기와 도전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할 총수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지면 그동안 쌓아온 세계 1위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
지난 4월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5개의 자본가단체가 청와대에 제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건의서’의 일부이다. 이재용이 없어 삼성이 망할 수 있다는, 건의라기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주장이다. 이들보다 먼저 조계종, 성균관 등 종교계도 이재용의 사면을 건의한 바 있다. 그러자 언론도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재용이 맹장 수술을 받고 구치소로 복귀한 일과 몸무게가 빠진 소식 등 일거수일투족을 앞다퉈 보도하면서 사면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재용 구하기’에 나선 언론의 노력은 눈물겨운 수준이다. 광고계의 큰 손인 삼성의 광고를 따내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이재용을 뛰어난 경영자, 나라를 구할 위인으로 포장하는 역겨운 짓도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는 반도체 전쟁, 이재용 사면 머뭇거릴 이유 없다”(매일경제), “이재용 부회장에게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 (중앙일보) 등의 사설을 쏟아내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재용을 곧 있을 한미정상회담에서 백신특사로 중용해야 한다며 사면이 필요하다는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등장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왕을 칭송하는 ‘용비어천가’를 빗대어 ‘이재용비어천가’라 이름 붙여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 또한 여론의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사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재용이 없으면 삼성이 망한다?
이재용을 구하기 위해 저들은 진부한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들었다. 자본가가 없으면 회사가 망한다는 주장이다. 이재용 사면을 주장하는 자본가단체, 언론이 주장하는 핵심은 위기에 빠진 삼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재용이 경영 일선에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용은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경영권 승계를 위한 뇌물청탁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 받고 재수감됐다. 지금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한 합병과 관련한 범죄 등으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다.
이미 확정된 재판 결과만 보더라도 이재용은 개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이를 위해 정권과 결탁해 뇌물을 갖다 바친 범죄자일 뿐이다. 이런 범죄자가 없어서 “10년 동안 133조 원 투자같은 결정은 한국 기업 경영 구조상 전문경영인이 내리기 어렵다. 2년 전 결정보다 더 과감해야 할지, 투자 방향을 틀어야 할지 등의 의사결정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삼성의 고민”(동아일보)이라는 주장은 상식적인 사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헛소리다.
자본가가 없어도 회사는 안 망한다
무엇보다도 이재용이 구속된 이후의 삼성전자 실적만 봐도 저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에 매출 65조 3천 885억 원, 영업이익 9조 3천 829억 원을 올렸다고 실적을 발표했다. 이는 작년 동기(매출 약 52조 4천억 원, 영업이익 6조 2천 300억 원) 대비 매출은 18.19%, 영업이익은 45.53% 각각 증가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1분기 기준 매출은 사상 최대 규모로, 영업이익도 시장 전망치(약 8조 9000억 원)보다 5000억 원 이상 많았다. 이재용이 없어 투자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저들의 주장과는 달리,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시설투자로 9조 7000억 원을 집행했다.
노동자들이 하루만 파업을 하더라도 생산이 멈춘다. 당연히 매출과 회사가 가져갈 이익은 줄어든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자본가와 정부, 언론이 목에 핏줄을 세우며 회사가 망한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가 없어서 회사가 망한다는 주장은 실적을 보더라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회사에 폐를 끼치는 자본가가 없어야 실적이 더 나아진다는 증권가의 우스갯소리 같은 말이 사실에 더 가깝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없애려면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당선된 문재인정부는 일단 사면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사면 논란에 선을 그었다. 촛불민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통용되는 진리이다. 역대 정부에서 이뤄진 자본가들의 사면 사례를 보더라도 경제활성화와 대규모투자, 기업안정을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자본가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역시 자본가의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잠잠해지고 그럴듯한 명분이 만들어지면 언제든 이재용 사면 카드를 꺼내들 것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사회적 상식과 믿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이고, 자본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회체제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만을 위해 창조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소수의 자본가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켜 다수 위에 군림하게 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으면 된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