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사망사고
2월 5일 대조립1부 공장안에서 안전통로를 지나던 정규직 노동자가 고정되지 않은 철판이 미끄러지면서 머리가 협착되어 사망했다. 5월 8일 탱크 안 20m 높이에서 7살짜리 아이의 아버지가 추락해 사망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들어 원하청노동자 2명이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20명의 원하청노동자가 사망했다. 모두 추락, 협착, 끼임, 화상, 아르곤가스 질식 등의 이른바 후진국형 중대재해였다. 올해 사망자를 포함하면 정규직 8명, 하청노동자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정도의 사망자가 나오는 조선소는 한국에는 없다. 심지어 중소조선소에서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죽어나가진 않는다.
반복되는 각오와 안전대책
작년 4명의 원하청노동자가 사망한 후인 6월 8일 권오갑회장은 그룹사 사장단(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을 방문해 “공장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안전경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올해 2월 5일 사망사고 후 전사 안전대토론회에서 현대중공업 한영석사장과 이상균사장이 참석해 “또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회사 문을 닫는다는 각오로 현장 안전을 사수하는데 모든 임직원이 함께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5월 8일 하청노동자가 20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매번 반복되는 경영진의 다짐과 안전대책은 안전사고 예방효과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또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회사 문을 닫는다는 각오”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작년 현대중공업그룹은 안전에 3천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수많은 CCTV가 현장 곳곳에 설치됐다는 점에서 바뀌기는 했다. 안전보다는 현장통제가 강화됐으니까.
왜 바뀌지 않을까
다른 조선소에 비해 현대중공업에서는 왜 사망사고가 많이 일어날까? 더 열악한 중소조선소 보다 더 많이 다치고 죽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실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현대중공업의 생산시스템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동안 저가수주를 하면서 수익률이 악화되자 그 손실을 그대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정규직은 3년째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 할 만큼 노사관계는 극과 극을 치닫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비교하면 회사규모는 가장 크지만 정규직노동자의 연봉이 가장 낮다.
가장 큰 피해는 하청노동자들이 보고 있다. 다단계하청구조가 더 심해졌다. 정규등록업체가 있고 해당부서와 직접 단기계약(3~6개월)을 하는 프로젝트업체가 있다. 물론 물량팀은 모든 형태의 하청업체에 존재한다. 프로젝트업체는 작년부터 물량팀을 양성화한다는 명목으로 물량팀장에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록 유도해 만들어진 단기업체다. 이 안에 상용직이 있고 물량팀, 그리고 프리랜서 노동자가 있다. 물량팀원들은 서로 다른 업체의 출입증을 발급받아 일감에 따라 여러 업체를 돌아다닌다. 사실 너무나 복잡한 구조라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에 노출된 하청노동자는 안전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안전보다 생산이 목적인 다단계 하청구조는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아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물량을 쳐내지 않으면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물량팀, 프리랜서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을 돌보며 시간을 허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담장 안은 무법천지
현대중공업 안은 무법천지다. 원청인 현대중공업부터 하청업체까지 있는 법조차 대놓고 무시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항상 수백건씩 적발된다. 사람이 죽어도 몇 백만 원의 벌금이면 해결되다보니 법을 지킬 이유가 없는 듯하다.
근로기준법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두 건의 중대재해로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휴업을 해야 했다. 2월 5일 건은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에서 고용노동부에 14개 업체의 휴업수당 미지급 및 기준미달지급 건으로 근로감독 청원을 넣어 시정지시를 받아냈다. 그런데 5월 8일 중대재해 작업중지로 인한 휴업수당이 또다시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하청업체들이 담합을 했는지 대부분의 하청업체에서 최소기준에 한참 모자란 5,6시간(본공 시급제)이나 3만원(일당, 물량팀)을 지급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휴업수당분의 기성금을 충분히 지급하지 않으니 하청업체도 하청노동자들에게 부족분을 전가하고 있다.
그리고 원청 관리자들과 업체 관리자들은 사망사고가 난 후 작업중지로 밀린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 ‘안전하게 빨리 빨리 일하라’고 난리다. 1인작업, 병행작업(예를 들면 용접작업이나 도장작업이 함께 이뤄지는 형태, 페인트는 인화성 물질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병행작업은 금지되고 있다), 안전조치가 안된 고소작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다시 노동자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사망사고가 나자 관리감독자들의 수당을 대폭 인상했다. 그리고 작업장에 이동형 CCTV를 수백대 더 설치하겠다는 안전대책을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상식적으로도 이것이 어떻게 안전대책이 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다단계 하청, 빠듯한 인건비, 현장통제, 생산 중심의 조직구조가 안전한 작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식이면 또다시 사망사고가 난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 살아서 퇴근할 권리가 이렇게 보장되지 않는다면 과연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수주 대박 소식을 알려도 현대중공업이 죽음의 공장, 무법천지 공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