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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될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이후 국보법)은 이 법이 제정되어 공포된 1948년 12월 이후 73년 간 한국 정부와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과 세력들을 탄압하는 절대적 수단이었다. 국보법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진보정당과 노동자정당 운동 할 것 없이 정부와 지배계급의 질서에 맞서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국가의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왔다. 곧 국보법은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와 지배계급의 수단이었다. 이 때문에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국보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졌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런데 지난달 10일부터 시작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국회청원 서명이 10일 만에 10만을 넘으면서 국보법 폐지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회부되었다. 이번 국회 청원운동은 이전의 국보법 철폐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무대는 바뀌었다. 이전의 운동은 거리에서 벌어졌지만 이번 국보법 폐지 운동는 국회라는 무대를 향하고 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운

 

국회를 무대로 벌어진 국보법 폐지 시도가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2004년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보법을 폐지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한나라당의 반대가 완강한데다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이 문제를 두고서 분란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은 이 시도가 실패한 것을 대단히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번 국보법 폐지 시도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국회청원 운동이라는 한계 상 이후 주도권은 제도권 정당들에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178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태도가 상당히 주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미 민주당 안에서의 움직임은 진행중이다. 민주당의 이규민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의 민형배 의원은 국보법을 전면 폐지하는 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다음 달 8일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 78명이 주최하는 국보법 폐지 토론회도 예정되어 있다. 정의당은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지난 달 20일 국보법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국보법은 정부와 지배계급의 장애물?

▲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평화기조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국보법 폐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 때의 국보법 폐지 시도는 확실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개방시키고,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북한 경제를 개발하고,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진출하는 경제 루트를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계획은 남한 자본가 계급에게 북한이 새로운 이윤창출을 위한 생산과 소비시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침체된 남한 경제에 활력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보법이 노무현 정부의 이런 계획에 장애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이런 계획을 훨씬 구체화시켰고, 이를 실행하려고 시도했다. 북한의 김정은 정부도 침체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개방정책을 추진했다. 남북의 화해분위기는 이러한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 조성됐고,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북미 정당회담이 결렬되기 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최근 미국에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재인 정부에게 북한의 김정은 정부와 다시 화해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지난 달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은 바이든을 만나 44조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이것을 대가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바이든 정부로부터 대북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약속을 받아낸 것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바이든 정부의 어느 정도의 묵인 하에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다시 강화하려 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미 노무현 시절에 밑그림이 완성된 더 큰 구상을 염두에 두면서 말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민주당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대북문제를 십분 활용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국보법 개정과 폐지 안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다음 행보를 위한 일종의 실험대 같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이런 자신들의 구상을 밀어가는 데서 국보법이 장애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 경제협력이나, 남북정상회담 등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보법을 위반한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법이 김정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이고, 이것은 남북한의 관계개선에 장애가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올해 1월에 있은 8차 당대회에서 남한을 “혁명대상”으로, 곧 ‘적화통일 대상’으로 규정한 규약을 삭제했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남한의 헌법과도 같은 권위를 가진 최상위 규범이다.) 이것은 남한의 국보법 존치의 근거가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극우들은 북한 노동당 규약을 근거로 국보법의 존치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과도적 상태의 모순, 정부의 눈치보기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한국 지배계급 전체의 입장이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 한편으로 지배계급 내부에서도 북한의 개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계산하면서 이른 시일 내에 국보법의 개정이나 폐지를 바라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을 개방시키더라도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이 과정에서 자본가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 세력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계속해서 국보법을 이용하려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대선의 목전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로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대선의 결과를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체 지배계급에게 국보법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 국보법을 개정 혹은 폐지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자본가지배계급의 상태와 그것이 대선에 미치는 결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2004년처럼 자신들 내부의 반발도 고려해 넣어야 한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보법의 개정이나 폐지에서 얼마만큼의 속도을 내야 하는지, 또 그것을 어느 정도의 폭으로 손질해야 하는지 등을 신중히 저울질할 것이다.  
특히 국보법 개정폐지와 대북관계 개선이 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이롭게 작용할 것인지 불리하게 작용할 것인지 그들은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 북한의 핵문제가 풀리지 않았고, 이 문제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부가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인지도 예측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와 민주당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고 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도보수층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북한 핵문제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 정부의 눈치도 봐야 한다. 
국보법을 폐지해야 할 필요성과 상황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국보법 전면 폐지, 즉각 폐지를 주장하는 아래로부터의 도전을 활용하면서도 그들 생각에 너무 멀리 나아간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들을 찍어누를 공산이 크다. 이런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보법의 개정과 폐지 논쟁이 온전히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국회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마무리되도록 하려고 할 것이다.  

국회는 너무 좁다. 대중투쟁의 무대가 열려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자운동, 그리고 진보정당과 노동자정당 건설 운동을 탄압해 왔던 악법, 국보법은 역사에서 사라져야 한다. 물론 국보법이 완전히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정치와 사상의 완전한 자유,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와 체제에 도전하는, 지배계급의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들과 개인들에 대한 탄압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계급사회가 없어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 국가의 법은 국보법을 대체할 형법 조항들을 통해 정부와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들을 겨냥할 것이고 그들을 탄압할 근거가 여전함을 증명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의 진보를 가로막는 하나의 벽을 치우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다. 특히 아래로부터 조직된 힘에 의해 그렇게 될 수 있다면 한국 민주주의와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하나의 큰 전진이 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가들이 그 틈을 열어준다면 그것을 활용해 운동을 강화할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라는 무대 밖, 거리에서의 운동이 조직되어야 한다. 국회는 노동자민중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없다. 이번을 계기로 국보법 폐지 운동이 전진하려면 정부와 자본가들이 설정해 놓은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자본가지배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자민중의 도전을 억압탄압하는 수단이었던 악법, 국보법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보자. 

 

김정모

 

국보법은 1948년 12월에 공포시행되었다. 해방 후 한국사회는 좌파와 우파가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런 혼란 중에 남한만의 단독정부에 반대해 제주에서 43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주둔 중이었던 14연대 소속 좌익계열의 군인들이 ‘제주군민들을 진압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항거한 것이 ‘여순반란’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국보법을 만들었고, 이 때 입건되고, 구속된 이들이 11만 8,621명에 달했다. 전국 18개 형무소(교도소) 수감자의 80%가 국보법 위반 사범이었다. 
국보법은 박정희, 노태우 정권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고, 독재에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매년 수백 명씩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 자신이 국보법의 피해자였던 김대중 정부에서도 국보법 위반으로 1,270명이 입건되고 700여 명이 구속되었다. 국보법을 폐지하려고 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469명이 입건되고 179명이 구속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2018~2019년 2년 동안 583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대상이 되었고 40여 명이 입건되었으며 7명이 구속됐다. 최근에는 한 출판사가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국보법은 이승만 정부에서부터 역대 정권들이 정부와 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과 세력들 탄압하는 무기가 되어왔다. 심지어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국보법 폐지를 고려했던 노무현 정부와 그리고 고려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국보법은 그들에게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탄압의 무기로 이용됐고,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