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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알바 체험기

한 독자로부터 쿠팡 아르바이트 체험기가 도착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임금 계약직,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동원한 ‘인해전술’로 엄청난 물량을 빠르게 쳐내는 쿠팡 물류센터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급성장한 쿠팡이 실제로는 노동자를 고도로 착취해 현재의 성공신화를 이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독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노동해방의 깃발

 


 

나는 가끔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처음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쿠팡에서 일을 하려면 익숙해지면 간단하지만 처음에는 조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쿠펀치라는 앱을 다운받고 앱에서 각종 동의를 하고 회원가입을 해야만 출근 지원을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공정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서 지원한다. 하지만 지원만 한다고 다음날 바로 출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채용되려면 “확정문자”를 받아야만 한다. 앱에서 출근 지원을 하고 나면 쿠팡에서 문자가 날아온다. 코로나 관련 문항과 주소를 적어 회신해달라는 문자다. 문자를 회신하고 나면 “확정문자“가 다시 오는데 이 문자가 최종 출근통보다. 확정문자와 함께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켜달라는 문자, 지원한 센터가 신선센터라서 추울 수 있으니 두툼한 외투를 챙겨오라는 문자가 온다. 확정문자를 받지 않고 다음날 출근을 하면 센터 앞에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 출근 


확정문자를 받은 다음날 아침에 출근버스 승차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도착해서 올라서서 출입구 앞쪽에 설치된 기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쿠펀치에 로그인해서 개인 QR코드를 찍었다. 체온을 재고 버스 좌석번호가 적혀 있는 일지에 이름을 적고 쿠펀치에 좌석번호를 입력해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센터에 도착해서 개인 신분증을 확인하고 손을 소독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 또 줄을 서야 했다. 코비드폴리스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이 출입구 앞에서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리세요”, “대화하지 마세요”, “바닥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한 줄로 서세요”, “신분증을 보여주세요”, “손 소독하고 들어 주세요” 등등 갖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여기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쭈뼛쭈뼛 앞사람을 따라 줄을 서 정문을 통과했다.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정문 통과 후 개미가 줄을 이어가듯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 사물함이 있는 한쪽 귀퉁이로 이동했다. 그리고 일용직은 공정에 따라 또 줄을 서서 출근명부에 사인을 했다. 신발을 안전화로 갈아 신으며 둘러보니 탁 트인 공간에 사물함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방이나 개인 짐을 넣어둘 곳을 물어보니 일용직은 사물함이 없으니 그냥 책장 같은 곳 한 칸을 사용하라고 했다. 줄을 서고 신발을 갈아 신는 동안에도 코비드폴리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지시하며 통제했다. ‘여기 훈련소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훈련생!!”이라는 호칭만 “사원님!!”이라고 바뀌었을 뿐,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똑같이 느껴졌다. ‘코비드폴리스면 코로나나 잡을 것이지’하는 생각도 잠시, 오늘 처음 온 일용직은 아까 통과했던 정문 옆 건물 4층으로 모이라고 해서 부랴부랴 이동하는데 뒤에서 또 들려온다. “한 줄로 이동할께요”, “대화하지 마세요!” 

# 안전교육


4층은 식당이었다. 칸막이가 쳐진 자리에 꽤 많은 인원이 일용직으로 출근해 앉아 있었다. 벽에 달린 모니터에서 안전교육영상이 나왔다. 영상이 나오는 동안 끝난 줄 알았던 마지막 출근 절차를 마무리해야 했다. 쿠팡 자체 와이파이로 쿠펀치에 접속해서 출근인증을 받아야만 진정으로 출근절차가 끝나는 것이다. 퇴근할 때에도 퇴근명부에 사인을 하고 정문에서 쿠펀치에 접속해 퇴근인증을 받아야만 이틀 후 임금이 제대로 나온다고 했다. 인증을 안 하면 임금을 제때 못 받고 임금을 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해지니 잊지 말고 인증을 꼭 하라는 말을 들으며 영상을 보았다. 안전교육의 내용은 “노동자가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장에는 지게차나 핸드파레트, 자동파레트(현장에서는 ‘자키’, ‘포크’라고도 불리는데 파레트를 옮기는 기구다)가 많이 이동하는데 “먼저 보내주고 지나가라”, “걸어다닐 때는 뛰지마라”, “냉동창고라서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해라” 등등 노동자가 알아서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안전사고의 모든 책임이 조심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는 교육내용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전교육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교육이수 설문지에 간단하게 체크를 하고 근로계약서도 내용이 뭔지 볼 새도 없이 빠르게 적었다.

# 업무배치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1층으로 내려가서 한쪽에 또 줄을 섰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을 호명하며 지원한 공정에 인원이 다 찼으니 ‘허브’라는 공정으로 가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물류센터에서도 힘들기로 유명한 공정이었다. 그리고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휴대폰을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출입증과 휴대폰을 교환했다. 나는 허브 작업 중에서 출하되어 포장된 박스를 싣고 내리는 곳으로 배치되었는데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 홀로 버려진듯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계약직이나 몇 번 일을 해본 일용직 노동자가 작업 방식을 알려주면, 눈치껏 움직여야 했다. 매니저나 캡틴이 있지만 그들은 일을 가르쳐 주지 않고 지시만 했다.

# 오전근무


작업 현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운송장이 붙은 프레쉬 박스(쿠팡전용신선박스)와 종이박스가 컨베이어를 타고 내려오면 운송장을 보고 지역을 구분해서 지역1, 지역2 등이 씌어진 5개의 파레트에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차곡차곡 쌓은 후 랩으로 포장을 해서 핸드자키를 이용해 밖으로 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파레트를 깔고 박스를 쌓아올리기를 반복했다. 입고된 제품이나 얼음팩, 회수된 프레쉬 박스가 쌓인 파레트가 일하는 옆으로 수동자키와 자동자키가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게 이동했다. 노동자가 일하는 구역이나 자키가 지나다니는 길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 조금만 잘못하면 부딪치거나 발등을 찍힐 것 같았다.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몇 시간이 소란스럽고 정신없이 지나갔다.  

# 정신없는 작업장


오전 물량이 마감된다는 방송이 나오고 바닥에 붙은 지역명 스티커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마감되지 못한 채 컨베어를 타고 내려오는 박스들은 갈 곳을 잃고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오후 물량이라며 다른 지역명의 박스가 바로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 동안 익숙해진 지역명은 저 멀리 날아가고 다시 새로운 지역명과 위치를 익히기도 전에 새로운 박스가 쏟아져 나왔다. 헤매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하는 이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다. 다들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바빴다. 나 역시 빠르게 동공을 움직여 바닥에 적힌 지역명과 손에 들린 박스의 지역명을 확인해 파레트에 쌓아올릴 뿐이었다. 그렇게 또 적응이 될 즈음, 뒤에서 “사원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의견과 상관없이 다른 공정으로 이동해야 했다. 오전 일이 마감되면, 오후에는 매번 지역이 바뀌었다. 패턴은 일정했지만 오후에는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면 바닥의 스티커를 바꿀 엄두도 못 냈다. 내일 출근할지 말지 알 수 없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정성을 쏟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고, 시간은 그것을 익힐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물량은 쌓여만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스스로 무작정 외워야만 했다.
  

# 화장실 가고 싶다 


  이번에는 나뉜 지역에 따라 파레트가 아닌 “롤테이너”라는 운반랙에 포장된 박스를 쌓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류센터에는 “물량이 터진다“라는 말이 있다. 캡틴은 물량이 터지는 곳에 인원을 빼고 넣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런 업무에 배치된 나는 몇 시간 동안 화장실에 갈 수가 없었다. 여기선 정해진 휴식시간도 없었고 너무 바빠서 화장실에 갈 짬을 낼 수도 없었다. 정해진 휴식시간은 점심시간뿐이다. 일하는 동안에는 각자 알아서 쉬고 알아서 화장실을 가라고 한다. 하지만 처음 온 일용직은 쉬는 것은 고사하고 화장실에 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아니 능숙한 일용직, 계약직이라도 바쁜 틈을 타서 쉴 시간이나  화장실에 갈 시간을 빼내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화장실 갈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박스를 쌓고 옮기기를 반복했다.  

 

# 점심시간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캡틴은 밥을 먹고 나면 앉은 좌석 번호와 시간 그리고 체온을 다시 재어 적어놓으라면서 종이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줄을 섰다. 어디선가 “앞뒤 간격 벌려주세요”, “바닥에 붙은 스티커 위에 서 주세요” 하는 코비드 폴리스의 통제 소리가 어김없이 들렸다. 식당 입구에서 손소독제로 소독을 하고 위생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 자율배식으로 식판에 음식을 담고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다 드시고 소독물티슈로 드신 자리를 깨끗이 닦아주세요”, “식사하면서 말하지 않을께요”라는 코비드 폴리스의 당부를 들어야 했다. 휴대폰도 반납했기에 오직 밥에만 집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점심시간에 출입증과 휴대폰을 바꿔서 사용한 후 다시 출입증과 바꾼다고 한다. 그렇게 밥을 먹고 또 한 줄로 이동해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의자 몇 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칸막이도 없이 의자를 놓고 앉으면 그곳이 바로 휴게실이었던 것이다. 코비드 폴리스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것이 쉬는 것인데, 그걸 하지 말라니 참. 코로나를 핑계로 이야기조차 할 수 없게 통제하는 것이 진정 코로나를 예방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오전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박스를 옮기고 쌓기를 반복하고 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하루가 끝났다.

# 노동자의 막장, 쿠팡


물류센터를 전쟁터라고도 하고 막장이라고도 한다. 쿠팡에서의 노동은 막장이 어떤 것인지를  절절히 느끼게 해줬다. 하루에 저 많은 물량들이 출고가 된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쏟아져 들어오는 물량은 ‘취급주의’, ‘쏟음주의’, ‘깨짐주의’, 심지어 ‘계란취급주의’, ‘바나나 취급주의’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보고도 던질 수밖에 없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량을 쳐낼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일이 많은데도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직이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었다. 계약직 노동자가 쉬는 날 그 빈 자리 역시 일용직으로 떼우고 있었다. 주말에만 지원하는 사람, 주간에 하루 이틀씩 지원하는 사람, 야간에만 지원하는 사람, 오전만 지원하는 사람 등 하루짜리 노동자들을 때려 박아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인해전술이다. 안전한 일자리는커녕 안정된 일자리가 없어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쿠팡은 그렇게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막장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