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향상을 가장한 술수
현대중공업 사측은 작년 5·31주총장 점거투쟁 이후 조합원 1,411명을 징계하고 4명을 해고했다. 징계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있으며 추가징계가 이어지고 있다. 임·단협도 또다시 해를 넘겨 교착상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공격과 함께 교육을 가장한 공격이 진행 중이란 점이 더 우려스럽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작년 6월부터 「생산기술적 육성체계」를 시행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재직자의 숙련도를 높이겠다는 것이 이유지만 실상은 더 많은 것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생산기술직 육성체계란 무엇인가
현대중공업의 「생산기술직 육성체계」는 “노동자의 기술역량을 향상시킨다”는 명분 아래 “직무별로 생산기술을 체계화하고 역량표준을 제정해서 작업자 개개인의 직무능력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개개인에 대한 기본역량교육 및 직무역량 진단(2019.06.~2020.06.) → 개인별 역량 수준 확정(2020.07.01.) → 역량수준별 직무교육 → 차등 장려금 지급(2021년 하반기)”의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장려금은 평가등급(S, A, B, C, D)별 일시금으로 최소 20만원부터 최대 320만원까지 지급된다고 한다.
현재는 직무역량 진단과 역량 수준 확정을 위한 교육이 조선사업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이후 전체 사업부로 확장될 것이라고 한다.
생산기술직 육성체계와 NCS
「생산기술직 육성체계」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국가직무능력표준)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으로 정부지원금도 받고 있다.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태도 등의 내용을 국가가 체계화한 것”이다.
2013년 박근혜정부는 ‘능력중심사회’를 표방하며 교육부와 노동부 주도로 ‘수준별 NCS 학습모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신규채용에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으며, 재직자 교육프로그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NCS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살펴보면 현대중공업에서 진행 중인 「생산기술직 육성체계」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12월 발행된 「NCS 기업활용 가이드북」에는 ‘채용, 재직자훈련, 배치·승진, 임금’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제시되어 있다. 신규채용시 재교육비용을 절감하고, 재직자의 생산성향상, 배치·승진의 기준, 직무능력에 따른 임금 지급 등이 그 내용이다. 한마디로 생산성 향상과 직무능력급제로의 전환에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직무능력 향상? 인재육성?
현대중공업 사측은 「생산기술직 육성체계」가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여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고 선·후배간 기술전수를 통해 선순환하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기술숙련등급을 매긴다. 즉,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평가한다. 공정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관리자의 평가점수가 무려 30%에 달한다. 관리자의 말 한마디면 아무리 뛰어난 역량이 있다해도 최저등급을 받을 수 있다.
과연 그들의 의도가 노동자들의 직무능력을 높이기 위해서일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상당히 높다. 평균근속도 15년이 넘는다. 현대중공업의 생산직 중 근속이 짧은 노동자라도 기술교육원에서 훈련을 받고 협력업체에서 수년을 근무한 경력이 있다. 바로 입사한 경우엔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또다시 직무능력 향상이 필요하다는 말은 지나치다 못해 안 하니만 못한 것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직무능력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외주화(하청화)를 확대해온 시스템의 문제로 불량과 작업지연, 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무엇을 노리는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현대중공업 사측이 노리는 바는 분명하다. 직무능력 향상, 인재 육성을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통제를 강화하는 것, 직무능력급제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이 그것이다.
교육을 빙자한 점수매기기는 관리자의 통제력을 높여줄 것이다. 생산직 노동자 개개인 모두를 평가한 데이터는 인사고과가 될 것이고, 호봉제를 직무능력급제로 개편하기 위한 훌륭한 근거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인재육성을 빙자해 다기능 습득을 강제할 것이다. 직무별 구분되어 있던 노동을 한명의 노동자가 모두 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얼마나 효율적이겠는가. 취부도 하고, 용접도 하고, 사상도 하는 노동자야 말로 사측이 바라는 최상의 인재상이다. 그래야만 노동강도를 더 높일 수 있고, 인건비는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가 전문가가 되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개인이 작은 나사가 되어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다.” 즉, 이 사회에서 전문가, 인재라는 포장은 더 적은 인건비로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거짓 포장일 뿐이다.
대안정책보다 막는 것이 우선
노동자들의 숙련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해야한다는 대안적 숙련정책이 과연 가능한가? 현대중공업지부의 대응방향은 ‘노사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안적 숙련정책’에 있다.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숙련노동자를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조선산업이 많은 이윤을 내 회사의 지불능력이 충분한 성장기라면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수년간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치열한 국제적 경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고정비(인건비) 절감, 생산성 향상이다. 이는 다른 말로 “착취율을 높인다”라고 불린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에서 더구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이 시기에 교육을 하는 이유는 노동자를 더 쥐어짜려는 이유 말고는 없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