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격한 대립을 야기했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9월 27일 국회본회의에서 다뤄지게 됐다. 양당은 8인협의체를 구성해 공동의 합의안을 만들기로 했다. 8인협의체는 양당대표 각 2인, 각 정당이 추전하는 전문가 2인으로 구성된다.
180의 의석 수를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 개정안을 강행처리하지 않고 이처럼 국민의힘과 타협을 시도하는 데는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파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도 협치를 강조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문재인은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골칫거리라며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암시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의 개정안이 강행처리되는 것보다는 타협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언론중재법 개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사를 겨냥한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 중과실에 의한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까지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확실히 언론매체들에 재갈을 물릴 정부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국민의힘과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는 언론단체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론재갈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적대적이었던 거대 보수언론사들의 손을 떨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수처가 검찰을 길들이는 정부의 강력한 무기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단히 인색했던 국민의힘이 마치 자유를 위한 투사집단인 것처럼 행동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언론사들과 언론단체들이 갑자기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목청을 높이며 위선을 떠는 데에는 이런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정파적 이해가 우선인가 계급적 이해가 우선인가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발의한 것은 나름의 정파적 이익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조국사태에서 보수언론이 그 가족들까지 끌어들여 몰매를 가한 데서 보여준 극단적인 처사에 복수심이 커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런 정파적 이해관계가 본질적인 것일까?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정부가 탄생하면 개정된 언론중재법은 국민의힘 정부가 언론매체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물론 민주당 정부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국민의힘 정부가 탄생하면 국민의힘 정부는 경쟁세력인 민주당을 견제하는 데서도 그 법을 이용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더 우선하는 것일까?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정파적 이해가 우선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배체제의 안정화를 위해 언론매체들을 관리하고 길들이는 것이 더 우선하는 것일까? 당연히 정부는 그것이 민주당 정부든 국민의힘 정부든 후자를 자신의 본질적인 임무로 간주한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 개정에서 충분히 타협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그것이 지배체제의 안정화에 필요하다는 공통의 인식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민주당과 함께 분명히 타협안을 만들어 낼 것이다. 물론 그 타협안에서 정파적 이해가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다. 양당이 합의한 8인협의체에서 정파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자본가 지배체제의 안정화다. 정부는 일관되게 그것을 대변한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가짜뉴스’와 그에 따른 ‘피해자 구제’에서 그 필요성을 구한다. 문재인의 말처럼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립각을 세우는 팩트체크와 같은 사실보도 언론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후죽순처럼 성장한 인터넷 언론들이 가세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정보를 얻는 방식이 엄청나게 다양해졌고,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 식의 정보들 또한 넘쳐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확실히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도 대단히 커졌고, 제도권 언론들은 대중들의 생각을 규제하고 조율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의 상당 부분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왜 이처럼 아님 말고 식의 기사들이 판을 치는 것일까? 정보와 이데올로기의 혼란은 사회의 혼란을 반영한다. 이는 사회가 낙관적 전망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단히 불확실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기존 정체세력들의 정치적 위기 또한 심화되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안정적인 삶을 책임질 대안들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서로 물고 뜯는 정쟁이 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되며, 대안 없는 무정부적 충돌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 언론에 반영되어 언론이 이전투구의 난장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성 언론들이란 대부분 지배계급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조율하는 공론의 장이다. 그런데 지배계급 내부의 세력들이, 정당들이 대안 없이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면, 대중의 절박한 삶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의미 없는 정쟁들이 판치고 있다면, 당연히 언론은 그런 상황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중들이 언론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지배수단으로서의 언론의 기능 상실
자본주의 지배체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제하고 조율하던 언론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배계급이 언론을 통해 대중들의 생각을 규제하고 장악할 수 있으려면 대중들이 그 언론을 신뢰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신뢰가 깨져가고 있다.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지배체제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지배계급 전체가 언론을 통제하고 규제해야 할 필요성을 갖게 만든 사회경제적 토대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고의, 중과실, 허위, 조작’ 등의 표현은 언론이 이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자본가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언론들을 단속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그것의 정치적 표현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거짓과 과장과 허위와 조작이 판치는 언론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부질없는 시도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로부터 발생한 지배계급들 내부 세력들의 무정부적인 충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단지 그것의 표현수단에 지나지 않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잠재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보면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체제의 ‘불안정성과 전망상실’ 곧 사회의 위기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말을 들을 때까지 아무리 재갈을 물려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한 언론이 사회 세력들의 무정부적 충돌을 어떻게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격한 충돌이 언론을 통해 표현될 때 ‘거짓과 허위와 조작’이 개입하는 것은 필연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거짓과 허위와 조작을 뿌리 뽑으려면 그런 언론을 낳은 자본주의를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오히려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그 증상에만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언론중재법은 치료제가 아니라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실패가 예정된 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는 달리 길이 없다. 그래서 사회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언론을 단속하고 검열할 필요를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단속과 검열을 강화하는 것 말고, 그래서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병이 들지 않은 것처럼 속이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언론중재법은 노동자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것
얼마 전 민주노총의 양경규 위원장이 구속됐다. 집시법, 방역법,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어떤 부르주아 언론도 왜 노동자들은 그때 방역법을 위반하면서 집회를 강행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서울에 8,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하는 언론사를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기존 언론들은 고의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방역법 위반만을 떠들어 댄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언론중재법이 개정되면 노동자투쟁을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중단될까? 언론들이 노동자 투쟁을 불법으로 매도하거나 그 기운을 꺾으려고 통계수치를 조작하고, 자본가들의 편에선 전문가들과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외국의 사례들을 인용해서 고의적으로 허위와 조작을 일삼는 것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을까? 사법부가 노동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고의, 중과실에 의한 허위, 조작’ 기사에 대해 최대 5배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판결할 수 있게 된다하더라도 이들은 노동자투쟁을 잠재우기 위해 거짓선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노동자 운동이, 노동자들의 운동을 대변하는 언론이 한 말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탄압하려 할 것이다.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중재법은 가차 없이 적용될 것이다.
정보력이 부족하고, 그 정보의 진의 여부를 가릴만한 위치에 있지 않고, 그것의 진의를 판단하는 것을 지배자들과 언론들이 가로막는다면, 노동자들은 다분히 심증에 의지해 자신들의 주장을 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를 정부는 ‘고의, 중과실에 의한 허위와 조작’이라고 몰아붙일 것이고 지금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며 언론의 자유를 떠드는 보수적인 언론매체들도 노동자 운동을 탄압하는 정부의 편에서 그들을 거들 것이다. 그런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한다
진실이 완전한 증거를 가지고 등장하지 전까지는 합리적인 의혹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 것은 불가피하다. 심지어는 거대 언론매체들도 그렇게 기사를 쓴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는 이런 결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에 대해서는 관용과 타협이 없을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언론중재법은 노동자 운동과 노동자언론을 탄압하는 저들의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그렇게 이용하려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진실은 보수적인 언론들을 통해서 드러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거짓과 허위와 조작을 통해 노동자들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한다. 진실은 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이 있을 때 밝혀진다. 보수적인 언론들이 왜곡된 형태로나마 노동자들의 진실을 보도할 때는 노동자 운동이 투쟁을 통해 그 진실을 부정할 수 없이 세상에 드러냈을 때이다.
보수적인 언론매체들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해야 한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