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슈퍼싸이클이 도래하고 있다?
올해 들어 조선업 활황의 기운이 완연하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대폭 증가하고 있고, 한국 조선업의 수주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 누계 발주량은 작년 동기(1,221CGT) 대비 165% 증가한 3,239만CGT를 기록했다. 이 중 한국은 406% 증가한 1,366만CGT(42%)를 수주하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9월 7일, 클락슨리서치).
한국은 올해 발주된 14만m³급 이상 LNG 운반선 38척 중 37척을 수주할 만큼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또 1만2000TEU(20피트 컨테이너 12,000개를 실을 수 있는 선박)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량도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400% 이상 폭증하고, 러시아와 카타르의 LNG 운반선 발주가 본격화되면 한국의 수주량 증가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언론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한국조선업이 다시 한 번 부흥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본가들이 보는 관점에서 호황일 뿐이다.
내쫓을 땐 언제고 이제는 사람 구하기 힘들다?
조선업은 2016년부터 6년 가까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고정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14년 20만 명이 넘었던 조선산업 인력은 2021년 5월 기준 9만 명대로 감소했다.
이제 수주량이 늘어남에 따라 현장생산인력이 대거 필요하게 되었다. 최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각종 언론에 도배됐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발표한 '생산직접직 필요인력' 자료에 따르면 올해 4분기부터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울산, 경남, 부산, 전남 등지에서 △2021년 4분기 199명 △2022년 1분기 3649명 △2022년 2분기 5828명 △2022년 3분기 8280명 △2022년 4분기 7513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인력 부족 현상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국내 최대 조선소가 있는 울산으로, 내년 3분기 최대 5972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출처 : 뉴스1, 2021.08.12)
정규직이든 하청이든 인원감축에 혈안이던 때가 1년도 안됐다. 고정비를 줄여야 한다며 정규직은 희망퇴직과 정년퇴직자 미충원으로 감원하고, 하청은 그냥 ‘일없으니 나가라’는 한 마디로 줄여나갔다. 그런데 이제 분기마다 수천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난리다.
인력난의 원인을 주52시간으로 몰아가기
그런데 정말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언론과 원하청 사장들은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엉뚱한 논리를 펴며 저임금의 하청구조를 유지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주 52시간제로 연장근로와 특근이 제한되면서 실질임금이 하락해 인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회사협의회 관계자라는 자가 언론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주52시간 때문에 잔업·특근을 하지 못해 임금이 하락했기 때문에 조선업 취업을 꺼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OECD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집계된 국가 중 멕시코(2124시간)와 코스타리카(1913시간)에 이어 한국 노동자는 세 번째로 일한 시간(1908시간)이 길었다. 이런데도 더 많이 일해서 부족한 임금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정작 문제는 아무리 오래 일하고 숙련도가 높아져도 좀처럼 올라가지 않은 임금 때문임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주52시간은 죄가 없다.
인력난의 대안이 외국인 채용 늘리기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연장하고, 외국인 채용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 말은 지난 7월 한 언론에 양충생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이 한 말이다.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인력 채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데, 이 역시 저임금과 탄력적 인력운영이 가능한 고용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고용허가제로 족쇄가 채워진 이주노동자는 저임금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다. 이는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일정규모의 실업자 집단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선산업 자본가들은 이미 외국인 채용 규모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2019년 베트남 인력 도입 추진 사업’을 통해 선정된 조선용접공 채용을 알선하고 있고, 산업통상자원부와는 연 300명 규모의 선박도장공 외국인 인력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싸우지 않는다면 장밋빛 미래에 노동자는 없다
지금 한국의 조선소는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임금체불은 수시로 일어나고 정부가 허가해준 4대보험 납부유예로 수백억 원의 보험료가 체납되고 있다. 대법원에서도 불법이라고 판결한 포괄임금제는 고용노동부가 사실상 인정해주면서 불법적인 포괄임금근로계약이 횡행하고 있다.
일감이 많아져 또다시 많은 노동자들이 조선산업에 유입된다면 과거와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다단계 하청구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려는 자본가들이 태도를 바꿀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대안은 있다. 지금껏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고 처참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싸우게 된다면 초과이윤을 벌어들이는 조선업 자본가들의 몫을 뺏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력의 수요가 많아지나 공급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노동자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거제는 하청노동자들의 조직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라도 영암의 조선소 노동자들도 자생적인 움직임(작업거부)으로 스스로의 임금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이 서로 연결되고 조직된다면 분명 다른 대안은 만들어 질수 있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