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금리 인상, 위험한 줄타기

8월 26일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결정했다. 그동안 낮은 금리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그 돈이 부동산, 주식 투기로 쏟아져 들어갔다. 결국 가계부채가 1800조를 돌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가인상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이 위험성을 줄여보려는 시도다. 
그러나 0.5%에서 0.75%로 겨우 0.25% 금리 인상이다. 0.25%로는 거대한 거품경제에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금리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잠시 떨어졌지만 지금은 거의 회복된 상태다.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실질금리는 여전히 큰 폭의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고, 실물경기에 제약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돈풀기


코로나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돈풀기에 나섰다. 코로나 기간동안 주요국 중앙은행은 약 10조 달러 이상의 돈을 시중에 공급했다. 거기에 각국은 재정부양책을 쏟아냈다. IMF에 따르면 2020년 12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조 달러의 재정지출과 금융지원 조치가 시행됐다고 한다. 한국 GDP가 1조6천억 달러인 것에 비교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뿌려졌음을 알 수 있다.
전세계에 돈이 넘쳐났다. 그런데 풀려난 돈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 돈이 진정 필요한 곳은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코로나 사태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세를 못내 허덕이는 노동자를 위해 사용되었다면 불평등은 완화되고, 빈곤으로 생기는 사회문제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돈이 넘쳐나도 노동자들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돈이 넘쳐나면 투기 시장으로 집어넣고 노동자들에게 주식, 부동산투기해서 돈을 벌어가라고 부추긴다. 열심히 일해도 한달에 200만 원밖에 못벌지만 주식하면 그 이상을 벌수 있다고, 대출금리도 낮은데 가져다 쓰라고 유혹한다. 그렇게해서 10명 중 거의 4명이 주식 투기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29.9%였던 주식투자 비율은 2020년 38.2%까지 치솟았다.
 “빚투”,“영끌”과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커지고 있다. 6월 통계까지 발표된 미국 주택가격 지수를 보면 전년 동월대비 상승률이 18.6%에 달한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가격이 19% 이상 오른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누가 돈을 벌어갔나?


투기를 부추기는 거래상들이 돈을 벌어가기 마련이다. 주식, 부동산 투기 열풍에 힘입어 국내 금융지주회사가 올해 상반기 11조 원 이상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증가했다. KB, 신한, 우리 등 10개 금융지주사의 상반기 연결총자산은 3087조 원으로, 지난해 말(2946조 원)보다 141조 원(4.8%) 증가했다. 모두가 힘들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언론에서 부르짖는데, 금융자본은 대출이자로 손쉽게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거래상 뿐만 아니라 돈많은 이들이 돈을 번다. 코로나 17개월 동안 미국의 억만장자들 재산은 무려 62%, 액수로는 2000조 원 증가했다. 이는 주식시장의 전례 없는 활황 때문이었다. 물론 개미들 중 눈치빠른 이들도 손해보지 않고 일정한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일시적인 이익이 장기적인 이익으로 연결되는 개미의 수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식, 부동산 투기시장은 제로섬게임, 즉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억만장자를 개미들이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금리인상


돈풀기(양적완화)는 무한정 가능하지 않다. 지금처럼 양적완화를 계속하게 되면 주식, 부동산 거품이 계속 쌓이고 이것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험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각국 자본가들, 중앙은행, 정부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품이 커지는 위험을 줄이며 이득을 얻어갈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들이 쓰는 방책 중 하나가 금리조정이다. 경제가 침체되면 금리를 낮춰 돈을 풀고,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 돈을 거둬들인다. 지금은 자산거품 확대가 전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조율하려고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0.25% 금리인상도 그 결과물이다. 
미국은 아직 금리를 올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한 것을 의외의 결정으로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정책금리 인상을 위해서 더 강력한 성장과 고용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완화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역시 주식, 부동산 거품 확대에 대한 대책을 논의중이고,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거품을 줄이기 위한 금리인상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기 전 한국은행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 대응한 것이다. 

위험한 줄타기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되면 돈을 빌려준 이들은 돈을 벌게 되겠지만, 돈을 빌린 이들은 크게 타격을 받게 된다. 대출금리가 1%만 뛰어도 현재 대출을 보유한 전체 가계가 내야 할 이자가 12조 원이나 늘어난다.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먼저 금리인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면 하나뿐인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길거리로 내쫓기게 된다. “그동안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썼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할 것인가?
그러나 일련의 금융위기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서 보여졌듯이 금융자본이 무리하게 돈을 풀어서 대출을 유도했고, 그들은 파생금융상품까지 만들어서 투기쇼를 했다. 결국 대출금을 못갚는 이들이 늘어나면 그 연쇄작용으로 대출은행이 파산하게 되고 경제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정부는 투기 거품을 통제하지 않고 투기를 조장했다.  
2008년과 똑같은 일이, 더 큰 규모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전세계 자본가들과 정부, 금융기관은 투기를 막지 않는다. 투기 거품을 없애고 안정적인 경제운영을 하기는커녕 양적완화, 금리인상과 인하를 넘나들며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지는가? 

무책임한, 불합리한 


금융자본,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위험한 줄타기가 계속된다. 그들의 결정 하나하나에 노동대중은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투기의 끝에 상투를 잡고 막차를 타는 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그건 대부분 정보가 부족하고, 자금이 적은 노동자들일 것이다. 
언제 거품이 꺼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것, 거품이란 언젠가는 터진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투기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경제가 운영되는 자본주의 사회, 가진 자들에겐 오히려 불확실성이 무기가 되는 시스템. 그속에서 정보도, 운용자금도 적은 노동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거대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은 이런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경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돈과 권력을 키우는 이들은 현 상황을 바꾸고 싶지 않다. 위험한 줄타기를 더 하며 이득을 취할 기회를 노릴 뿐이다. 2008년의 교훈을 잘 보라고 지배계급에게 요구하는 것은 순진한 일일 것이다. 뭔가를 바꿔야 한다면 바꿀 필요성을 가진 노동계급이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