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류호정 국회의원이 “청년 '공정' 뒤 숨은 민주노총…위원장님, 그게 공정입니까”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민주노총과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을 저격한 글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해당 칼럼은 중앙일보의 [나는 저격한다]라는 제목의 기획의 첫 번째 칼럼으로 연재됐다.
류호정 의원은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투쟁에서 드러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갈등을 지적하며, 민주노총이 “자신(정규직)들의 욕심을 지키기 위해 청년이 요구하는 ‘공정’을 방패막이로 삼았”다면서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노총이 7월 3일 비정규직노동자대회를 강행한 것을 두고 “시대는 변했는데 민주노총의 집회는 변함없이, 하던 대로를 고집”한다며 “똑같은 프로그램을 반복하는 집회”라는 낡은 홍보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충고도 곁들였다.
기득권이 된 민주노총
이 칼럼이 기사화되자 민주노총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자본의 대표적 나팔수인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같은 편(?)인 민주노총을 저격한 것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중앙일보가 민주노총과 진보운동을 공격하는 프레임에 이용당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류호정 의원은 “오히려 내가 중앙일보를 이용했다. 글은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앙일보의 ‘저격’ 시리즈가 의도하는 바는 기획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필진을 2030세대로 구성해 사회 갈등의 주요 원인을 신·구세대 간의 갈등으로 규정했다. 중앙일보는 또한 ‘저격’의 대상을 기득권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저격’의 대상이 된 인물들은 주로 민주당 정치인과 주요 지지자, 정부인사이다. 류호정 의원의 글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이들과 같은 기득권의 위치에 민주노총을 포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출신의 젊은 노동정치인(류호정 의원 자기소개글)이 기득권이 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모양새는 중앙일보, 더 나아가 자본가 세력이 가장 바란 결과였을 것이다.
메시지 전달 실패가 노동자 탓?
게다가 7월 3일 민주노총 집회에 대해 민주노총이 코로나 시국에 낡은 집회 방식을 고집한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정부가 해당 집회를 이유로 민주노총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면서 밝힌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집회에는 다양한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연대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항의하고, 절박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 각각의 현장에서 피터지게 투쟁해 왔지만 사회적 관심조차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류호정 의원은 노동자들이 왜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먼저 듣기는커녕, 집회와 같은 낡은 홍보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점잖은 충고나 하고 있다. “집회 후에도 시민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몰랐”다며 집회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한 이유를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해당 집회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낡은 집회 방식’보다는 정부의 마녀사냥식 탄압에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계급의식 부재
류호정 의원이 문제의식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청년이 주장하는 공정은 시험만능주의이고 민주노조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차별해소를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 똑같은 프로그램만 반복하는 집회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옳은 말이라도 대상과 장소, 때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면 꼰대의 지적질과 다를 바가 없다.
일각에서는 류호정 의원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적 판단이 미숙해서라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류호정 의원 스스로 밝혔듯 본인이 의도한 내용을 적절한 매체를 통해 주장하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기득권이 자본가와 이에 공생하는 정치세력과 언론 등을 저격하기보다, 가장 먼저 민주노총을 이들과 같은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저격한 것은 철저한 정치적 판단이 결과물이다. 계급의식이 부재한 자유주의 정치정당으로 대표되는 정의당의 계급적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