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4번째 산재사망사고
9월 30일 오후 3시경 현대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가 휴게시간에 쉬기 위해 건조 중인 선박에서 내려왔다가 굴착기(로벡스 : 선박을 안벽에 고정하는 로프를 묶기 위한 중장비)에 깔려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만 4번째 사망사고이고 8월 1일 블록에서 추락해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사고까지 포함하면 5번째 중대재해다.
- 2월 5일 대조립공장에서 곡블록 철판이 흘러내리며 머리가 협착되어 정규직노동자 사망
- 5월 8일 건조 중이던 원유운반선 탱크 상부에서 추락해 하청노동자 사망
- 7월 13일 도장공장 지붕 강판 교체작업 중 25m 높이에서 추락해 하청노동자 사망
- 8월 1일 블록 턴어버 준비 중 2.2m 높이에서 추락해 하청노동자 의식불명
현대중공업은 단순교통사고로 물아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이번 사고를 사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라고 주장한다. 실제 사고 당일 유족들은 경찰로부터 교통사고 조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 경찰서까지 가야만 했다. 최초 사망진단서에도 ‘사고종류’를 교통사고로 기입했다가 유족들의 강한 항의로 ‘깔림’사고로 정정되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장소는 단순도로가 아니었다. 도크사이드라는 곳으로 수시로 작업자와 중장비가 오가는 사실상 작업장이라고 봐야 한다. 폭이 약 4m 정도 되는 이곳은 양 옆으로 툴박스 등 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시설물이 많기 때문에 중장비 운행시 신호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위험한 장소에 시야 확보가 안 되는 중장비가 신호수(유도자)도 없이 운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제든 사고는 일어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사고 후 대책
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요란한 사고대책을 마련한다. 그런데 회사는 이번 사고를 교통사고로 몰아가면서 어이없는 짓을 벌이고 있다. 우선, 대대적인 시간통제(일명 기초질서지키기)에 들어갔다. 각 부서 생산과장들과 하청업체 대표들을 동원해 각 도크의 건조 중인 배 입구를 휴게시간 전후로 지키고 있다. 두 번째, 사고의 원인이 시야를 가리는 툴박스에 있다면서 모조리 없애겠다고 한다. 툴박스에는 작업자들의 작업공구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를 옮겨버리면 노동자들만 더 힘들어지게 된다. 세 번째, 귀마개를 하고 있으면 장비이동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위험이 있다며 휴게시간에는 귀마개를 빼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교통사고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사고장소와 같은 곳(PE장, 도크사이드 등)은 15km/h, 공장 안 대로에서는 20km/h로 오토바이 규정속도를 줄여버렸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주요원인은 신호수의 부재와 안전통로 미확보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하든 ‘교통사고’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대책뿐이다.
책임회피와 은폐·조작은 현대중공업의 특기
현대중공업의 중대재해 은폐·조작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4년 故(고)정범식 노동자의 죽음이 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동부경찰서와 함께 정범식노동자의 죽음을 자살로 조작했다. 검찰과 1심법원도 마찬가지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족이 5년 4개월간 싸운 끝에 2019년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8월 1일 블록에서 추락해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중공업MOS 하청노동자의 사고가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중공업MOS는 처음에는 블록에서 떨어진 사고라고 했다가 사다리에서 넘어진 사고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 두 사고원인은 원청이 안전관리책임을 지느냐 재해자의 실수냐의 차이로 책임소재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 교통사고로 처리되면 중대재해라도 노동부의 조사나 작업중지, 특별안전감독 등도 받지 않게 된다. 즉, 원청은 안전관리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사업주 즉, 자본가들은 항상 이렇게 책임회피에만 신경을 쓴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산재사망사고 다발사업장인데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5명이 죽고 635건의 산안법위반이 적발되도 사장에게 떨어지는 것은 고작 벌금 2천만원인데 뭐하러 노동자의 안전에 신경 쓰겠는가. 현대중공업에서의 중대재해는 또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니 자본가들이 치러야 할 노동자의 목숨값보다 이윤이 더 많다면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이윤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