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지회 투쟁이 1월 21일 급박하게 마무리되었다. 20일 한국지엠지부장이 내려온 후 하루만에 벌어진 일에 투쟁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엠비정규직 투쟁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며 연대해주었던 많은 동지들도 의아해했다.
투쟁을 끝내기 위한 내용 없는 제시안
20일(월) 17시 금속 경남지부, 한국지엠지부, 창원지회, 창원비정규직지회 4자 회의가 있었고, 이 때 한국지엠지부장이 제시안을 가지고 왔다. 제시안의 주요 내용은 향후 창원공장에 CUV가 양산되어 2교대 전환할 시 비정규직 해고자를 우선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해고자들의 생계는 실업급여, 재취업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며, 근로자지위확인 대법원 승소 시 복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에 대해 한국지엠지부와 창원지회가 책임지고, 최종적으로 한국지엠부사장의 구두 약속을 받는다는 것이다.
창원지엠비정규직지회 쟁대위 논의에선 다수의 동지들이 “내용이 없는 제시안”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다음날 오전 지엠지부장이 요청한 간담회를 진행한 후 제시안에 대해 비지회 조합원은 토론과 표결을 진행했다. 결과는 쟁대위 입장과는 반대로 찬성 48, 반대 21로 가결되었다.

그런데 막상 합의안은 애초 제시안과는 많이 달랐다. 합의안의 각 항목에는 모두 “노력한다”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핵심 요구사안이었던 해고자 복직에 대한 것도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고 되어 있었다. 노사간 합의에서 ‘노력한다’는 것의 의미는 노력하는 시늉만 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의 대법 결과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 시 즉시 채용 노력한다”고 꼬리표를 달아 놓았다. 대법 판결조차도 지키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둔 셈이다. 그런데도 합의서에는 해고의 책임이 사측에 있다는 내용이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이번 해고는 한국지엠의 불법, 부당한 문제임에도 ‘업체폐업에 따른 해고’로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번 합의는 노사합의가 아니라 지역지부(비정규직지회)가 노측에 기업지부(창원지회)가 사측에 싸인한 노-노 합의였다. 내용도 형식도 문제가 있었다.
조합원은 왜 그런 선택을?
합의서가 나오기 이전에 비정규직지회가 논의해 세운 계획은 ‘2월까지 현장에서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할만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하면 생계가 급한 동지는 생계를 나가고, 투쟁을 결정한 동지들은 남아서 힘있게 투쟁한다’는 것이었다. 비지회조합원들 모두는 2월까지 승부를 보지 못하면 최소 2년 동안의 장기투쟁을 예상했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다수의 조합원은 2년을 투쟁으로 버티며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수동적으로 정규직노조에 의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수 조합원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해고라는 큰 사안이 조합원들을 투쟁으로 일으켜 세우긴 했지만, 2017년의 해고자 복직 투쟁의 패배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켰고, 그 사이 간부층도 취약해졌다.
이전 투쟁에서 앞장섰던 동지들 중 일부는 패배를 경험한 후 거대한 지엠에 맞서 투쟁해도 해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에 빠져 패배감을 조합원들에게 심기도 했다. 반면 지도부는 내용없는 합의안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자신있게 방향을 제기하는 정규직 지부장에 비해 소극적으로 반대하는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대비될 수밖에 없었다.
이 합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지켜보기 위해 한국지엠 최종 부사장도 미리 내려와 있었다. 그는 지엠지부장이 비지회조합원들을 설득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바람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금속노조 중앙도, 한국지엠지부, 경남지부도 투쟁을 종결시키는 것에 급급했지 사측에게 어떻게 책임을 지울 것인가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정규직노조와 경남지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투쟁은 종료되었다. 내용없는 제시안으로 투쟁상황을 종료하려 한 금속노조, 경남지부, 한국지엠지부, 창원지회보다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들이 조합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스스로의 실력부족이라는 한계가 크게 작용한 합의였다.
합리화하지 말아야 다음이 있다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지회 합의안을 대승적이라고, 그래도 투쟁의 성과라고 포장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 한다. 알맹이 없는 합의안이다. 이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쉴 새 없이 이어져온 투쟁 속에서도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조건을 헤쳐온 조합원들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결정이 너무나 뼈아프다. 그렇기에 찬성을 찍은 조합원들마저도 그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고 여전히 생계를 나가지 않고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조합원들이 있다.
투쟁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어이없게 합의서가 만들어졌지만 이번 투쟁의 한계와 약점을 제대로 평가해야 이후를 준비할 수 있다. 핑계와 남 탓으로 합리화하지 않고 뼈아프게 평가하고 보완해 내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미래는 다시 준비될 것이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