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반박
지난 11월 11일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냈다. 주52시간제도가 시행되면서 조선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감소해 부업과 이직이 증가했다는 보수언론과 경영계의 주장을 반박한다면서 내놓은 답변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 노동자가 다수 포함된 ‘기타운송장비제조업’의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근거로 삼았다. 기타운송장비제조업의 5~299인 사업장 상용직 임금이 전년동기 대비 올해 상반기 2.6%, 올해 7~8월은 5.3% 증가했고, 초과근로시간은 ’20년 상반기 25.2시간, ’21년 상반기 19.0시간이며, ’21년 7~8월에도 17.7시간으로 주52시간제 1개월간 허용시간인 52.1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분석결과에 따르면 조선업의 인력난이 주52시간제 때문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게 된다. 그런데 이 분석은 통계자료만을 분석한 것으로 실제 현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가 고착화 돼 일용직, 프리랜서, 심지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미신고 노동자들이 조선소에는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상용직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
우선, 고용노동부의 분석 대상은 상용직이다. 조선업 노동자들 중 상용직은 정규직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 중 일부만 해당된다. 하청노동자들 중 일명 본공으로 통용되는 상용직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본공 중에도 일용직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에 통계상 상용직으로 분류되는 인원은 적을 수밖에 없다. 즉, 고용노동부가 표본으로 삼은 상용직은 표본이 되어야 할 다수가 제외되어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 인상됨에 따라 올해 초 올랐다. 그러나 인상폭은 최저임금 인상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불법적인 무급휴업이 반복되는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일감에 따라 노동시간이 달라지고 임금도 달라진다.
조선3사의 경우 올해초까지 일감이 부족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아직도 일감부족으로 일부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정부에서 제공하는 직무교육을 받으며 버티고 있고 대부분은 일감을 따라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올해 7~8월 임금 증가폭이 다소 높아진 것은 일감 증가가 한몫을 했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초과근로시간이 법적 허용시간보다 적다?
경영계와 보수언론들은 일감 증가에 따라 초과근로를 더 해야 하는데 주52시간 때문에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고용노동부는 통계분석으로 실 초과근로시간이 법적 허용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통계로는 당연히 초과근로시간이 적다. 조선3사 모두 올해 3분기까지는 일감이 없어 초과근로시간이 거의 없었다. 수주량 증가와 실제 현장에서 공사가 착수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는 불가피하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그룹사의 경우도 이제야 일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아직도 일감이 없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2월, 5월, 7월 발생한 중대재해로 작업중지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당연히 노동시간도 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현재다. 4/4분기가 되면서 일감은 상당히 많이 늘었다. 정말 사람이 부족해 일을 못할 지경이다. 이렇다보니 많은 하청업체들이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활용해 초과근로시간을 늘리고 있다. 심지어 벌금을 내더라도 해야 한다며 주52시간제를 어기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물량팀이거나 일용직 신고를 한 노동자들로 이번처럼 상용직 중심으로 조사하면 통계에는 아예 잡히지 않는다.
주52시간제 때문에 숙련인력이 떠난다는 거짓말
조선업 자본가들과 보수언론들은 여전히 주52시간이 조선업 인력난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지난 2016년 이후 조선업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 통계상으로만 9만 3천여 명의 원하청노동자가 쫓겨났다. 즉, 숙련인력이 떠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일이 없다고 내쫓아놓고는 이제 와서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구조조정 기간 정규직노동자들은 임금이 동결됐고 하청노동자들은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빼앗겼다. 당연히 임금수준은 낮아져 최근 임금이 상승했어도 10년 전 수준에는 한참 못미칠 정도다.
주52시간 때문이라는 프레임은 낮은 임금을 노동시간을 늘려 보충하라는 뜻으로 가장 손쉽게 이윤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다. 이제 이런 프레임은 노동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조선3사의 수주는 모두 초과달성했다. 선박단가도 상승하고 있고 앞으로 수익이 많아질 것도 분명하다. 모든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상당하다. 그만큼 구조조정시기 너무나 많이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조선소 자본가들은 계속해서 인력난에 시달릴 것이다.
이렇다보니 조선소 자본가들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일명 돌관팀으로 불리는 물량팀의 경우 상당히 높은 일당을 주고서라도 투입시키고 있고, 본공의 경우에도 시급 몇백 원을 올려주기도 했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원인
조선업에서 인력난이 심각한 것은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과 언제 죽거나 다칠지 모르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비롯한다. 이런 사실은 조선업 자본가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감소로 이어지고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왔다.
울산에서는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겠다고 시와 일자리재단, 고용노동부 등이 주관하는 채용박람회가 몇 차례 열린 적이 있다. 9월에 열린 채용박람회에서는 400명이 목표였으나 실제 채용된 인원은 3명에 불과했고, 10월에 열린 채용박람회도 10여명만 채용됐다는 언론기사들이 나왔다. 이렇게 채용된 인력도 60세가 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이 사람들은 한 달도 되기 전에 대부분 퇴사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다. 일부 물량팀의 경우 20만원이 넘는 일당을 받기도 하는데 소수에 불과하고,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할 정도로 노동강도가 높다. 공정이 급하면 주말은 물론 조기출근, 철야작업도 불사한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이미 법 허용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하청노동자들은 이미 건설현장이나 플랜트산업으로 빠져나갔다. 플랜트건설노동조합이 10여년을 넘게 투쟁해서 쟁취한 노동조건 때문에 조선소보다 노동시간도 짧고 노동강도도 약하다. 일당은 조선소보다 최소 몇 만원은 더 많다. 이렇다보니 한번 조선소를 떠난 인력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고 평균연령도 높아져 고령화가 심각하다.
고용노동부든 조선업자본가들이든 인력난의 핵심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이를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낮은 임금 수준을 유지해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며 대통령까지 나와 외국인 인력을 대거 수입하겠다고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