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고용노동부는 올해 말로 종료되는 조선업 특별고용지원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1년 재연장하기로 했다. 이는 이미 2차례나 연장하여 법적으로는 더 이상 연장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3차 연장을 위해 지난 10월 29일 「고용위기지역의 지정기준 등에 관한 고시」까지 개정하며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
고용유지지원금, 훈련비, 주거비 등 각종 지원금과 더불어 제도적 도움을 준다는 조선업 특별고용지원과 고용위기지역 지정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지자체와, 기업들은 재연장을 그렇게도 강력하게 요구했을까? 이는 특별고용지원업종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6년 6월부터 지금까지 누가 어떤 피해를 당하고 누가 지원금을 독식했는지 확인하기만 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과 자본가 살리기
2016년은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시기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모두 정부로부터 자구안을 요구받았고 실제 실행됐다. 저가 수주와 건조능력 부족으로 인한 해양플랜트의 실패, 공급과잉으로 인한 신조선 발주 감소 등 국제적 경기침체는 한국조선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정부는 조선업을 살린다며 과잉생산능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할 것을 요구했다.
이 구조조정에서 공식통계로만 20만 명에 달하던 조선업 노동자들이 9만 명대로 줄었으니 노동자들이 받은 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퇴출은 물론 각종 수당 삭감, 상여금 기본급화 등 임금삭감이 뒤를 이었고, 이 피해는 5년이 지난 현재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는 조선업을 살리겠다며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그 핵심은 인력구조조정, 곧 인력감축이었다. 중소조선소는 문을 닫았고 대형조선소는 대대적인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동시에 정부가 한 일이 조선업 자본가들을 돕는 것이었다. 막대한 재정투입, ‘각종 세금과 4대 보험’ 납부유예, 전폭적인 인수합병 지원이 문재인 정부가 한 일이다. 즉, 조선업 구조조정은 조선업 대자본가를 살리기 위한 산업재편이었다.
정부가 조장하고 묵인한 횡령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중소조선소 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중소조선소 노동자들은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에서처럼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에 무급휴업을 받아들여야 했고, 하청노동자들은 속절없이 현장을 떠나야 했다. 그래도 남아있던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임금인상은커녕 수시로 일어나는 폐업과 임금체불로 고통을 당했다.
정부는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원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통해 4대 보험 납부유예와 체납처분유예(4대 보험을 체납할 경우 즉시 강제징수 절차에 들어가지만 이를 유예해주는 제도) 제도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이 제도는 원청의 인건비 절약과 하청업체들의 횡령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비용을 줄여야 했던 조선업 대자본가들은 하청업체를 쥐어짰고, 하청업체들은 임금삭감과 함께 4대 보험을 체납해 경영자금으로 사용했다. 워낙 문제가 심각해지자 2017년 12월 말 국민연금은 납부유예와 체납처분유예 보험에서 제외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도 국민연금 체납은 계속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로 체납을 해도 경영악화를 이유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납부계획을 제출하고 한두 번 내다 다시 체납을 반복해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마음 놓고 체납을 한다. 어차피 강제징수도 안 하고 처벌도 안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각 사업장별 4대 보험 체납액을 확인하면 확연히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약 191억원, 대우조선해양은 221억원, 현대중공업은 460억원이 체납됐다.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전체로 확대하면 건강보험 941억원, 국민연금 174억원, 고용보험 198억원 산재보험 342억원으로 총 1665억원(‘21.10월말 현재)이 체납된 상태다.
이중 납부가 대책이라는 정부
조선업 4대 보험 체납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피해가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하청노동자들의 급여에서는 매번 4대 보험이 공제된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은 체납고지서를 받거나 은행대출이 거부된 뒤에야 4대 보험 체납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문제는 정부에서도 알고 있다. 국정감사 때마다 매번 다뤄진 사안이었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항의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보험료 횡령을 눈감아주고 있어 피해액은 늘어나고만 있다.
이미 폐업했거나 체납액이 너무나 많아 해결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업체는 4대 보험 납부유예가 시행되면서부터 단 한 차례도 납부하지 않아 체납 누적액이 40억이 넘었다. 이런 하청업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업체를 폐업하고 나서야 각종 세금과 4대 보험 체납 문제를 해결하는 업체사장들도 부지기수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정말 가관이 아니다. 처음엔 국민연금 본인 부담금만 납부하면 가입기간을 인정해주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사장들 몫까지 납부해야 가입기간을 인정해주겠다고 한다. 이미 급여에서는 공제된 보험료를 그것도 사장들 몫까지 내라니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조선업에서 보여준 정부의 본질
정부는 불황이 찾아오고 기업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대자본가에게 생산능력을 몰아주어 자본의 집중을 돕는다. 그리고는 이래야 기업이 살고 노동자도 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은 당연시된다.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한 방안들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미봉책에 그친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조선업이 살아나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자!”고 한다. 그러나 참아봐야 더 빼앗길 뿐이다. 이번 고용위기지역 재연장을 보라. 심각한 4대 보험 체납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자본가들이 저임금을 유지하고 횡령을 저지를 수 있도록 또다시 허용해줬다.
이처럼 고용위기지역, 특별고용지원업종 재연장은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본가들을 살리기 위해 수십조 원을 쏟아부으면서도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전가하고, 뻔히 보이는 피해와 불법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역대 정부들이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모습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