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불허로 가닥 잡은 EU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해양의 합병이 결국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2월부터 기업결합심사를 시작한 EU가 4번째 심사를 진행하면서 LNG선의 과다 점유율을 이유로 사실상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해양을 합치면 LNG선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많은 LNG선을 발주하는 머스크, MSC, CMA CGM 등 거대 선사들은 대부분 유럽 기업이고, EU측으로선 유럽 선사들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동안 EU는 LNG선의 과다 점유율을 해소할 방안을 요구했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일정기간 LNG선 가격 동결, LNG선 기술 이전 등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웃고 있는 현대중공업
EU의 기업 결합 불허 방침 소식에 현대중공업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식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무산된다 해도 현대중공업은 큰 타격이 없고 오히려 자금여력이 생긴다고 한다.
2019년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지주사를 설립하고 회사를 분할할 수 있도록 했으며, 주식교환과 인수합병이 성사됐을 경우 유상증자한다는 조건으로 인수에 필요한 자금도 거의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대우조선해양 합병이 무산된다해도 현대중공업그룹으로서는 손해보는 일이 없다. 오히려 인수합병이 지지부진한 3년간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기선으로의 승계작업을 마무리 했고, 두산인프라코어까지 집어삼켰다.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은?
작년 11월 30일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주도했던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온라인 브리핑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무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개인적으론 플랜D까지 고민 중”이라며, “기업결합이 무산될 경우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히 협의해 후속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국내에서 무분별하게 반대하는 일부 지역과 노조가 누구를 위한 반대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7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들어갔다. 여전히 갚아야 할 돈이 약 7조 원 대다. 대우조선해양은 매각이 무산된다면 이 부채로 인해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은 작년 12월 말 여신상환 유예기간을 2022까지 1년 더 연장하는 ‘세부 실행방안 합의서에 대한 변경합의서’를 협의했다.
당장 갚아야 할 부채를 잠깐 유예한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대우조선해양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겠지만, 제3자 매각을 다시 추진하든 회사를 쪼개 매각하든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될 수 있다.
공격신호가 될 ‘플랜D’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주도했던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플랜D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현 상황을 놓고 보면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회복세에 접어든 조선업 경기에 힘입어 대우조선해양도 수주목표를 140% 초과 달성했다. 올해부터 매출로 잡히는 선박의 이윤율도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경영악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런데 경영환경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독자생존의 길을 가든, 제3자 매각을 하든, 또는 국영화로 가닥을 잡는다 해도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이윤율을 개선하려는 일관된 방향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대규모 부채가 있는 기업에게 다른 방향이란 파산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모든 노동자들에게 공격신호나 마찬가지다. 특히, 정규직노동자들은 주 공격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대우조선해양 사측과 아무리 원만한 협상을 한다해도 결정권은 산업은행이 쥐고 있다. 매각 무산으로 인한 손실과 절박한 공적 자금 회수 압박을 받는 산업은행이 무엇을 요구할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