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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노동가요 틀었다고 손해배상 청구? 손배 가압류로 노동자의 손발을 묶으려는 자본가들

작년 연말, 창원의 서울쇼트공업(주)에서 사측이 점심시간에 노동가요를 틀어 소음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노조가 회사 안 노조 사무실에서 점심시간동안 소음기준을 초과하여 노동가요를 트는 바람에 휴식권을 침해받았다는 것이다. 임직원  18명이 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은 총 8240만원에 달한다. 
작년에 기업노조에서 금속노조로 가입한 이후 회사는 기본단협 체결을 거부하고 기존의 단협까지 해지하며 갈등을 키워왔다. 사측은 집회금지 가처분도 신청했는데 기각 당하자 이번에는 손배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헌법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노동조합의 선전활동은 노조의 일상적인 정당한 행위임에도 사측은 법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무기가 된 손배 가압류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기업과 국가가 노동조합과 노조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다. 그리고 법원 역시 기업이나 국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려왔다. 법원은 노조법 제3조에 근거하여 ‘법에 의한 정당한(합법적인) 쟁의행위일 때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목적·절차·수단 중 하나라도 정당하지 못하면 불법 파업이 되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게다가 합법파업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니다. “노사분규 중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불법·합법 파업을 가리지 않고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강력 지도하겠다.”는 최병렬 전 노동부장관의 발언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어떤 식으로든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었고 이후 손해배상 폭탄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결국 법원과 정부의 엄호 아래 노조활동 및 조합원에 대한 손배 가압류는 자본가들의 유용한 무기가 되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가리지 않고 손배부터 때리고 보자는 식이다.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자본가들에게 손배 가압류는 손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칼인 것이다.

고통받는 노동자들

▲ 출처: 시사IN 594호


반면 노동자들의 현실은 처참하다. 손배 가압류 직격탄을 받은 사업장의 노조활동은 위축을 넘어 무력화되었다. 파업은 엄두도 못내고 피켓팅, 기자회견, 선전전 같은 작은 쟁위 행위에도 손배 가압류가 남발되다보니 노조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노동자들은 월급 통장뿐만 아니라 부동산, 전세 자금 등도 가압류에 묶여 고통받는다. 게다가 대법까지 이어지는 긴 소송은 노동자들의 피를 말린다. 혹시라도 패하기라도 하면 연12~15%의 지연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노조 탈퇴가 이어진다. 자본가 입장에서 보자면 노조를 파괴하거나 길들이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없겠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들의 몫이 되어 목숨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실태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것


실제로 2019년 김승섭 고려대 교수 연구팀의 손해배상·가압류 피해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94.9%가 회사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 이후 동료가 노조를 탈퇴했다고 답했다. 손배·가압류 이후 조합원이 절반 이상 줄었다는 응답은 64%였다. 손해배상·가압류 이후 건강상태 역시 남성·여성 노동자 모두 약 34%가 '나쁘다'고 답했다. 특히 우울증상은 일반 노동자보다 남성 노동자는 11배, 여성 노동자는 1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자살 충동도 일반 남성인구에 비해 19.6배 높았다. 실제 자살을 시도한 남성노동자는 6명이었다. 손배 가압류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화시키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변하지 않은 현실


지난 1월 9일은 배달호 열사가 손배 가압류 철폐를 외치며 산화한지 19년이 되는 날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손배 가압류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손잡고>가 파악한 내용을 보면 2020년 11월 기준으로 정부나 회사가 노동자를 상대로 청구한 손배·가압류는 총 58건으로, 청구금액은 658억원, 가압류는 18억원에 달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손배소 대상이 정규직 노조였다면 지금은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심지어 노조원 개인을 상대로 회사가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손배 소송 사유도 업무방해 손실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번 서울쇼트산업의 소송 역시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이다. 휴식권이 침해당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지만 어떻게 해서든 노동자들을 괴롭혀서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것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철도노조가 23일간의 파업 이후 청구 당한 손해배상 금액은 162억 원이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2009년 파업의 대가로 물어내야 하는 돈은 47억 원이었고, 해고와 직장 폐쇄에 맞써 싸운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돈은 현대차 269억, KEC 300억, 한진중공업 158억, MBC 195억, 유성 57억, 발레오만도는 26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어떤가? 이들은 불법을 저질러도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않는다. 불법파견으로 수백에서 수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부당하게 착취한 자본가들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수십 번 받아도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벌금이 고작이다. 노조파괴를 자행한 유성기업 유시영회장은 겨우 벌금 2천만원을, 노조 파괴 범죄자 이재용은 낮은 형량에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불법을 자행한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는 자비를, 불법을 항의한 (없는) 이들에게는 가차 없는 폭력을 쓰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이다. 노동자들이 겁먹고 뒷걸음질 칠수록 저들은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손배 가압류를 무기삼아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어 무릎 꿇리려 하는 자본가들에 맞서 오히려 저들을 무릎 꿇리겠다는 각오로 당차게 싸우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