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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숟가락을 얹고 있다는 혐오에 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설 연휴에 이주 노동자들이 건강보험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국내 거주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는 1조4915억 원이지만, 건강보험공단이 이들의 치료비 등에 쓴 급여비는 9200억 원이어서 5715억 원의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치를 합산해도 1조4095억 원 흑자였다. 윤석열의 주장이 틀린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혐오정서에 기댄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 국민의힘 윤석열 페이스북 캡처

부실공사의 책임도 이주노동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이던 광주의 아파트 공사장 붕괴 사고가 나자 일부 언론에서는 부실시공을 이주노동자 탓으로 돌렸다. 골조 및 콘크리트 타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이 숙련도가 낮은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이고, 이들로 인해 불량 시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 문제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불량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설계를 마음대로 변경하고, 공사일정을 독촉하여 무리하게 진행하고, 다단계 하청구조로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를 써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관리자의 책임과 관리, 감독 하에서 주어진 일을 해온 노동자들이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는 멈추지 않고 있다.
 

비참한 주거 공간


2020년 12월 이주노동자 한 명이 비닐하우스에서 동사한 사건이 있었다. 정치인들과 언론, 정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문제가 심각하다며 해결을 촉구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외국인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마련을 한다며 실태조사를 하고 토론회도 개최했다. 고용노동부는 주거시설기준 강화안도 내놨다. 하지만 1년 이상 지난 지금도 현실은 그대로이다. 신규 고용에만 적용하고, 가설 건축물은 신고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등 빠져나갈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숙사 개선을 빌미로 주거비를 더 많이 공제하기도 한다. 합법적인 숙소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 아까워 제대로 된 난방시설도, 씻고 볼일을 볼 곳도 마땅찮은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은 뒷전이다. 이제 언론은 기숙사를 짓지 못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된 영농인들의 사례를 앞세워 무리한 정부지침이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몸이 망가져도 개인의 몫


산업재해 문제도 심각하다. 2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8∼2020년 산업재해자 33만1298명 중 7%에 해당하는 2만2844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산재 사망자 중 외국인은 8.3%였다. 작년의 경우에도 202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산재 사망자 668명 중 이주노동자는 75명으로 11.2%를 차지했다. 내국인보다 3배 가량 높은 수치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산재사고 노동자들도 많다. 사업주들이 산재처리를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산재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매우 적다. 인권위가 지난 2015년 법무부 산하 IOM이민정책연구원을 통해 이주노동자 3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주노동자의 68%가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경기도 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실시한 경기도 외국인 산업재해자 실태 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208명의 산재피해자 중 절반 이상인 52.9%가 산재신청조차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산재처리만 못 받은 것이 아니다. 조사자의 44.5%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월급을 못 받거나 적게 받은 경우가 40%, 치료중 노동을 강요받은 경우도 39.1%나 되었다. 산재처리를 받았다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니다. 산재보험 치료비를 피해자에게 청구하거나 산재기간에 일을 시키고 쫓아내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고용허가제 등 제도적 문제로 회사를 옮기기도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하는 것이다. 
건설업과 제조업, 5인 미만 사업장 등 노동강도가 높고 위험한 현장일수록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높다.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지만 이들은 보호장치도 안전망도 없이 험한 노동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주노동자 없이 유지되지 않는 사회


작년 기준 국내 전체 임금 근로자 2099만여 명 가운데 외국인은 81만여 명으로 전체노동자 수의 3.8% 수준이다. 하지만 건설현장, 생산직, 농축산업, 어업 등 힘들고 어려운 생산 현장의 이주노동자 비율은 훨씬 높다. 한국 원양어선 선원의 73.3%가 이주노동자이며, 고용된 농업노동자의 3분의 1이 이주노동자이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40만 여명이라고 하니 비공식적인 인원까지 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한국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말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집부터 식탁에 올라오는 식재료, 사용하는 물건의 대부분이 이들의 노동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천대받는다.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주52시간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건물에 사는 것도, 병원이나 학교, 보험 등 사회적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돈 벌러 한국에 온 거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과거 한국의 노동자들이 미국에서, 하와이에서, 독일에서, 중동에서 이주노동자로 차별받은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받는 차별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한국은 헬조선이라며 해외 이주를 꿈꾸면서도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이주민들을 무시한다. 얼마나 큰 모순인가.

지배계급이 확산시키는 차별과 혐오


이러한 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확산시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배계급이다. 이들은 이주노동자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싼 값으로 더 오래 일하는 노동자들이 필요해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오고 고용한 것은 자신들이라는 사실은 감춘 채 말이다. 또한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 자기 나라로 다 퍼가는 도둑인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이들의 노동은 사회의 부를 늘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들의 노동 없이 생산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들의 생산 덕분에 자본가들은 자신의 부를 축척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몫으로 받은 임금 중 일부를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 일부는 한국에서 살기 위한 비용으로 소비하고 있다. 성실히 일해 받은 임금을 자신의 쓰임에 따라 사용하는데도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범죄의 온상인 것처럼 호도한다. 이주민에 의한 강력범죄가 하나라도 생기면 벌떼처럼 몰려들어 이주민 전체를 범죄자로 몰아간다. 한국인과 비교해서 외국인의 범죄율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는 통계결과는 확대된 혐오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제주도에 예민 난민이 들어왔을 때 대중들 사이에 퍼진 불안감은 이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확인시켜주었다. 여기에 편승해 보수 정치인들은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워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지지세력을 집결하려 하고 있다. 대선후보 윤석열의 발언 역시 이런 혐오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차별과 혐오는 모두의 문제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은 비참하다. 법과 제도가 이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족쇄로 작용한다. 합법적 노예라는 이들의 푸념은 거짓이 아니다. 성별과 국적, 나이를 떠나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공동체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그런데 한국의 지배권력은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고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혐오를 조장하고 확대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한다. 이들이 부추기는 차별과 혐오는 이주노동자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여성, 노인과 아동, 생산직 등으로 노동자계급을 갈라치기한 후 이들을 차별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평범한 노동자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성실히 살며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대다수 노동자 서민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주노동자도, 정주노동자도 모두 고통 속에 놓여있다. 

혐오를 넘어 차별 없는 세상으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과 손잡고 이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이 사회에서 착취 받고 있는 노동자의 계급뿐이다. 노동자들 중 일부는 지배계급이 퍼뜨린 편견에 동조하며 차별에 동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노동자들이 훨씬 많다. 동료로서 함께 일하며 쌓은 신뢰와 부당한 착취를 함께 당하고 있다는 공감대는 서로를 연결하는 큰 가능성이자 토대이다. 부당한 일에 함께 동조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제일처럼 나서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배계급이 노리는 분열에 맞서 단결의 힘을 믿고 함께 싸워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여성노동자 문제는 여성 노동자가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일하는 모든 이들이 더불어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단결하여 함께 싸울 때에만 모든 차별과 억압에 맞설 수 있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