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웰컴의 모순, 누가 누구를 웰컴하는가

Welcome to coupang of hell!


쿠팡 물류센터는 하루하루 채용되는 일용직과 계약직 직원들이 쉬지 않고 현장을 돌아가게 한다. 이들 중에 ‘웰컴데이(Welcome-day) 사원’이라는 게 있다. 이들은 쿠팡의 계약직에 지원한 사람들로 3가지 단계 중에 마지막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차로 서류전형을, 2차로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일하는 날을 ‘웰컴데이’라고 부른다. 웰컴데이 사원에게 주어지는 일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순전히 현장 관리자인 캡틴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웰컴데이 사원들은 그렇게 무작위로 주어진 일을 해야 하고 회사는 그것을 평가해서 최종적인 합격 여부를 가린다. 이런 과정을 통과해서 합격해야만 비로소 쿠팡의 3개월 계약직 사원으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쿠팡 측은 ‘웰컴데이’의 목적이 ‘신입사원의 오리엔테이션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은 고용계약을 맺은 이후의 훈련과정이므로 ‘웰컴데이’와는 사뭇 다르다. ‘웰컴데이’는 신입사원 훈련과정이 아니라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일종의 시험이다. 회사에서는 ‘현장체험’이라고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손이 빠르고’, ‘빠릿한’ 사람들을 뽑기 위한 시험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불안한 채용과정, 그리고 계속되는 고용불안


이런 복잡한 채용과정은 쿠팡의 물류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직감하게 해 준다. 사실 쿠팡의 물류 일은 대단히 힘들다. 신입들은 손도 빠르고 눈치도 빨라야 겨우 따라갈 수 있다. 회사도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빠릿한’ 사람들을 뽑기 위한 장치로서 웰컴데이를 고안해 낸 것이다. 그런데도 웰컴데이를 통과해 합격한 이들도 겨우 3개월짜리 계약직일 뿐이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9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 중 절반이 일용직이고 나머지 절반이 계약직이다. 계약직은 다시 3개월, 9개월, 12개월, 무기계약직으로 쪼개져 있다. 3개월, 9개월, 12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들은 재계약 때마다 숨을 죽여야만 한다. 무기계약직은 2년 이상 일해야만 될 수 있다. 매일노동신문에 따르면 무기계약직의 비율은 전체 계약직 중 20%를 넘지 않는다. 쿠팡의 현장은 무기계약직이 제일 안정성이 높은 고용형태일 정도로 고용의 불안정성이 매우 심하다. 

▲ 출처 : 쿠팡부천물류센터노동자인권실태조사보고서(2020.09.28)


노동환경도 엉망이다. 쿠팡은 노동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으로 유명하다. 쉬는 시간도 없다. 휴게실도 마땅치 않다. 냉·난방 장치가 충분치 않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사망사고도 종종 나온다. 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노동자들도 많다. 일도 빡센데 여기저기 감시용 카메라가 달려 있다. 
그런데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이 몰려든다. 그만큼 경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그만큼 열악해져 있기 때문이다. 웰컴데이에 모여드는 노동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과 반실업(불안전 고용)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노동자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웰컴데이 단계에서 불합격이 되었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들도 다시 일용직으로 지원이 가능하고 상시 모집하는 계약직에도 지원도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웰컴데이라는 관문이 왜 필요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고용불안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직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도라도 고용의 안정성을 유지시켜야만 물류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달리 보자면 회사는 최소비용을 위해 노동자들을 쓰고 버리기를 반복하면서도, 곧 노동의 유연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면서도, 물류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웰컴데이를 활용하고 있다. 웰컴데이는 자본가들의 물류안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고용안정책인 셈이다. 최대 이윤을 위한 일종의 줄타기인 셈이다.

노동자는 이윤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쿠팡은 늘상 언론 보도를 통해 전국적으로 물류센터를 세우고, 지자체와 협력해서 해당하는 시·도의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일자리를 늘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 일자리의 대부분은 고용이 대단히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다. 
웰컴데이는 그렇게 합격한 3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가 되는 것을 행운처럼 보이게 한다. 이 사회가 그 정도 일자리라도 얻는 것이 정말로 행운처럼 여겨지게 만들 만큼 형편없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쓰다버리면서 끊임없이 이윤을 빨아들이는 자본가들의 이윤욕이 웰컴데이라는 채용방식에 새겨져 있다. 이것이 비단 쿠팡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쓸만한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실업과 반실업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어딜 가나 최저임금 일자리뿐이다. 굳이 쿠팡의 웰컴데이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웰컴데이 노동자가 된다. “오늘 여기서 하루 일해보고 맘에 안 들면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어딜 가나 최저임금에 비정규직 일자리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이윤 내는 소비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들로 취급한다. 노동자들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최대의 고용불안 상황에서 자발적 웰컴데이는 고립된 노동자들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가장 초보적인 저항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저항이다. 자본가들은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절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들 스스로 보장해야만 한다. 그것은 부당한 현실을 끝장내겠다는 결단과 투쟁,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으로써만 지켜질 수 있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