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광주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이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6명의 노동자가 매몰됐다. 1월 19일 전남 영암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에서는 50대 여성하청노동자가 출근 3일 만에 20m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1월 24일 현대중공업 가공소조립공장에서 정규직노동자가 크레인 작업 중 철판에 치여 숨졌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1월 27일)된 직후인 1월 29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 붕괴사고로 3명이 또 매몰됐다. 결국, 삼표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첫 1호 처벌대상이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고 기업들은 1호 처벌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공사를 연기하거나 중단하면서까지 바짝 긴장했었다. 그런데도 사망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처벌수위?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경총 등을 비롯한 자본가단체들과 보수언론들은 ‘해외에서 보기 힘든 높은 처벌수위’, ‘기업 망한다’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을 쏟아냈다. 심지어는 ‘안전의무를 다하면 면책’되는 조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듣게 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엄청난 형사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요란한 앓는 소리에 비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재 처벌수위는 높지 않고, ‘면책’조항조차 필요없게 만들어져 있다. 사망사고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이 높다고 생각하는 자본가들의 심리는 지금껏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도 사업주가 처벌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는 공포감일 뿐이다. 또한, 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에서도 수차례 강조하듯이 ‘안전·보건의무를 다했을 경우’ 사업주는 처벌되지 않는다. 즉, 사실상의 면책조항이 있는 셈이다. 실재 처벌수위도 삼표산업과 같은 대상기업들의 재판결과가 나와 봐야만 알 수 있다.
돈벌이에 미친 대형로펌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론전은 물론 국회나 정부를 향해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면서 환호했던 집단은 노동계이기보다는 대형로펌들이었다. 기업오너가 처벌될 수도 있는 법이 만들어지자 새로운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자본 로펌인 김앤장을 비롯해 광장, 태평양 등 기업을 변호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대형로펌들은 법 시행 이전부터 대규모 전담팀을 꾸렸다. 이 전담팀에는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에서 일했던 전직 공무원과 관료들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대형로펌들은 공포마케팅으로 반쪽짜리라는 평을 듣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시무시한 자본가 처벌법인 것처럼 포장했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한 명이라도 죽게 되면 오너조차 처벌될 수 있다는 마케팅은 먹혔고 웬만한 대기업들은 이들과 손을 잡고 있다.
안전한 작업장은 만들어질까
앞서 나열한 사망사고들처럼 중대산업재해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왜일까? 자본가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보수언론들의 주장처럼 CEO가 처벌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으니 자본가들이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왜 노동자들은 죽어갈까?
산업재해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될 수도 있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기업들이 안전·보건의무를 다할 것이란 기대는 지나친 낙관이다.
산업현장에서 너무나 자주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일은 이미 다단계하청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조와 같은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만들지 못하는 비정규직노동자를 활용하며 갈수록 줄어드는 이윤율을 상쇄하려고 한다. 이미 구조화된 비정규직 제도를 포기할리 없는 자본가들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대형로펌과 함께 책임을 회피할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저렴할 것이다.
“작업자 책임인데 왜 우리를 처벌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자본가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안전사고 예방 조처를 충분히 시행했음에도 작업자가 준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나는 사고가 전체의 60~70%에 달한다고 본다”. 이 말은 정한성 한국파스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 1월 29일 한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경영자가 열심히 안전예방조치를 해도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작년 ‘산재청문회’에서 산재사고는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이라고 한 말고 똑같다. 자본가들의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정말 이 말이 진실일까? 현대중공업의 예를 들어보겠다. 작년 5명의 노동자가 연이어 죽어나가자 현대중공업은 안전대책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선박 블록의 밀폐구역 내 안전작업 매뉴얼인데 이에 따르면 작업 전 관리자가 산소농도측정을 해야 하고 충분한 환기설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산소농도측정은 하지도 않고 표지판에 거짓으로 적어놓고, 용접가스는 빠지지 않아 앞도 보이지 않는 밀폐구역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이런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난다면 현대중공업과 한영석 대표이사는 처벌을 받을까? 고용노동부의 해설서에 따르면 사전 안전조치를 충분히 했고, 안전교육 및 매뉴얼 등 시스템을 마련했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노동자들이 무리하게 작업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몰고 갈 것이 뻔하고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끝난 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고 산업재해가 줄어들 것이란 생각은 순진한 환상이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할 방법부터 찾는 자들이 있는 한, 저임금 비정규직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여전히 노동자는 죽어갈 것이다.
안전한 현장,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잘 만들어진 법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만들 수밖에 없다. 수많은 단계로 쪼개진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가 하나라는 의식으로 뭉치고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한다면 일하다 죽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