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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빠진 대통령선거, 양자택일의 함정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최종 득표율 48.56%(1639만 표)로 국민의 힘 윤석열이 2위인 이재명을(47.83%·1614만 표)을 누르고 당선됐다. 표차는 30만 표를 넘지 않았다. 역대 대선 가운데 1, 2위 간 격차가 가장 적은 대선이었다. 국민의 힘은 ‘정권교체’의 의지를 국민이 보여주었다고 자축했다. 

그들만의 선거


이번 대통령 선거에 노동자들의 관심은 적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관심을 줄이는 방식으로 선거가 이뤄졌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한국 사회 절대 다수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과 공약은 선거운동에서 듣기 힘들었다. 선거 기간 내내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여야 후보들과 그 가족들의 스캔들이었다. 몇 달 동안 후보들의 비리 의혹 기사가 난무했고, 그들은 어느 후보의 가족이 더 문제가 많은 지 서로 겨루고 있었다. 매일매일 지겹게 울려대는 약점잡기에 귀를 막고 싶은 지경이었다. 언론들은 한편으로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네거티브 선거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실종된 노동 공약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는 노동공약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노동공약이 있다면,  정의당 심상정이 주4일제 문제를 제기한 정도다. 2017년 대선 당시 각 정당의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듯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전면에 내걸었던 것과 비교된다. 
오히려 후퇴한 노동정책이 이슈화되기도 했다. 윤석열은 ‘충분히 일할 수 있도록 주120시간 노동으로 노동시간 연장’, ‘150만원 받고 일할 수 있게 최저임금제 개혁’, ‘사장이 처벌받지 않도록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 과감한 노동개악 정책을 내뱉었다. 안철수는 ‘민주노총은 해악이라며 강성노조 척결’을 부르짖기도 했다. 

젠더 갈등 – 노동자 분열시도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젠더 갈등이었다. ‘이대남, 이대녀’로 20대 노동자들을 성별로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했다. 20대 청년세대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고통을 겪고 있는 바로 옆의 ‘남’과 ‘여’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20대 청년세대의 어려움의 원인이 성별의 차이에서 나오는가? 20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거주할 권리를 뺏기는 것이 문제다.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이를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이대남인가? 아니면 이대녀인가? 
자본가 정치인들과 언론은 멀리 있는 진짜 주범인 재벌들로부터 눈을 돌려 바로 앞에 보이는 남성과 여성에게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도록 유도했다. 진짜 혐오의 대상인 자본가들은 뒤로 숨겨졌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비정규직 고통의 진짜 주범인 회사는 뒤로 숨는 방식과 다를 바 없다.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혐오정치로 국민의 힘은 이대남 상당수의 지지를 얻었고, 민주당은 이대녀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노동자들은 남녀로 분열되는 손실을 입었다. 

노동자투쟁 없는 선거

▲ 촛불투쟁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고, 이는 대선에도 반영되었다.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선거로 바뀌는 경우는 없었다. 1973년 칠레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후보인 아옌데가 당선되었는데, 자본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바로 권력을 강탈해갔다. 많은 노동자들이 선거를 잘하면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한 문재인은 선거 이후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당장 2017년 대통령 선거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2017년 대선은 후보들이 노동자들을 위한 공약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이례적인 선거였다. 16년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고,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표출했다. 이것이 선거에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그들이 노동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노동정책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노동자투쟁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노동공약이 빠져 있는 것은 다르게 얘기하면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 만큼 침체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투쟁과 노동자정당

▲ 노동자들에게 선거보다 파업과 투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선거는 투쟁을 거두는 수단일 뿐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선거공약은 쌍둥이처럼 다를 바 없었다. 이들 정당의 공약은 철저하게 1% 자본가들의 이익에 맞춰져 있고,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생활밀착공약이라고 불리는 돈이 적게 드는 공약들은 서로서로 베끼기 바빴다. 선거 정책이나 공약만으로 보면 이 두 당이 통합해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많은 노동자들은 윤석열 당선이 싫어서 ‘이재명’을 찍었다. 또는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찍었다. 두 당의 이해관계는 동일하고 노동계급은 노동자정당을 뽑아야 하지만 대중은 두 부르주아 정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함정에 빠졌다. 진보정당이라고 얘기하는 정의당, 노동당, 진보당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선거는 노동대중에게 제대로 된 노동정책와 혁명적 사회변화의 방향을 알릴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선거 자체가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부르주아 선거제도는 이미 자본가 정당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노동자 정당에게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선거보다 파업과 투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선거에서 얻는 1000명의 표보다 1000명의 파업투쟁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자본을 압박하는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아래로부터 투쟁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힘을 성장시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선거는 다만, 노동자 투쟁을 거드는 수단일 뿐이다. 혁명적 강령으로 무장한 제대로 된 노동자 정당은 노동자 투쟁의 힘을 받아서 성장할 것이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