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양국의 전력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3주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군인들을 제외한 민간인 사망자만 1800명에 이른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피난길에 오른 난민들이 수십만을 헤아린다. 전쟁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할 때만 우리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생산력과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야만의 전쟁을 인류의 역사에서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야만적인 전쟁을 끝장내기 위한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최후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전쟁의 원인
이 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1949년 미국 워싱턴에서 조인된 북대서양조약을 기초로 미국, 캐나다와 프랑스·영국·독일 등 유럽 10개국이 참가해 발족시킨 집단방위기구. 현재 30개 회원국)는 러시아의 옛 위성 국가들을 흡수하면서 동쪽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왔다. 러시아는 나토가 자신의 옛 위성국가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면서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해 들어오는 것에 적잖은 위협을 느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경쟁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2014년 이전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親)러시아 정부였다. 이후 親서방 정부가 들어서자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복속시키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서유럽에 우호적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부도 나토 가입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이것이 러시아의 푸틴을 자극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13만 대군을 결집시켰고, 미국과 나토는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로 맞섰다. 전쟁 이전에 외교적 실랑이가 오갔다. 그러나 이 외교전에서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의 생명과 삶의 터전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 서로가 고려했던 것은 이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깡패들의 패권주의가 그들의 외교전을 지배했을 뿐이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병력시위와 경제제재를 배후에 둔 외교전은 군사적 충돌로 나아갈 위험을 잠재하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전쟁으로 나아갔다.
예상치 못했던 전쟁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전쟁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러시아와 ‘미국-나토’의 직접적인 충돌은 제3차세계대전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항상 전쟁의 위험을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와 미국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게 점치지는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한 군병력은 외교적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위협용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러시아가 2014년에 점령한 크림반도를 근거지로 해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을 점령해 벌이는 지엽적인 무력시위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물론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것이 일부 극우파 신문들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그가 정신이상자이거나 전쟁광이어서는 아니다. 푸틴은 아마도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이 직접 전쟁에 뛰어들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단히 지쳐있는 미국 국민(75%)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작년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가 다시 전쟁에 나서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바이든 정부는 가을에 있을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원유가 끊긴다면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나토가 전쟁에 직접 뛰어든다면 이런 일이 현실화될 것이다. 지난 8일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영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전쟁 물자를 지원하면서도 석유 금수 조치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것이 서유럽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틴은 ‘미국-나토’가 직접 전쟁에 뛰어들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꼬리를 무는 보복전은 결코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전쟁무기와 전쟁물자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對러시아 경제제재를 강화했다. 러시아 고위 관료들과 러시아의 신흥재벌인 올리가르히들에 대한 자산을 동결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접근을 제한하고, 러시아의 수출을 통제하는 등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8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했다.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와의 ‘정상무역관계’를 청산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 러시아의 수출상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물릴 수 있게 된다. 미의회는 러시아를 국제무역기구(WTO)에서 축출하는 결의안을 상정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의 對러시아 금융·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에 ‘비살상용’(?)전쟁물자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러시아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를 끊겠다고 위협하기도 하고, 한국과 같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나라들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해 보복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심지어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처럼 꼬리를 무는 서로 간의 보복행위는 세계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세계경제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경제는 세계경제로 발전했다. 어떤 나라도 독자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미국과 나토동맹국 그리고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에 대한) 러시아의 맞제재가 이미 수렁에 빠진 세계경제를 더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원자재 등의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對러시아 금융·경제 제재로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러시아 국내 물가가 치솟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경쟁의 필연적 결과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격화된 경제전쟁이 세계 모든 나라의 가난한 노동자·민중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꼬리를 무는 보복조치들은 결코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전쟁을 격화시킬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전세계가 경제전쟁에 뛰어든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전쟁으로 이행하는 제국주의 경쟁의 실체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아직 중국이 이 전쟁에 직접 뛰어들고 있지는 않지만 러시아보다도 더 막강한 경제대국인 중국이 미국과 대립해 격화된 경제전쟁에 뛰어들게 된다면 전세계가 군사적인 전쟁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인 제국주의 경쟁이 낳을 전 지구적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 반대를 넘어서 이윤체제에 도전해야
엄청난 전력 차이 때문에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3주가 다 되도록 계속되는 데는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의 전쟁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금융·경제 제재에 그 원인이 있지는 않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의 강력한 저항이 우크라아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러시아군이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민중이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저항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그런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은, 심지어 인도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도 결코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들을 돕는 것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그들은 지역적 패권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이윤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에게도 우크라이나는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 지금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은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를 견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우크라이나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들이 그들을 돕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과 나토동맹국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제국주의의 간섭이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미국과 나토동맹국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젤렌스키 정부와 서방의 자본가들과 협력하면서 이윤을 얻으려는 우크라이나의 자본가계급으로부터도 이 저항 운동이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세계 전쟁과 제국주의 경쟁에 반대하는 노동자·민중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평화’는 ‘잠시’일 뿐이고, 우크라이나에서의 양대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충돌은 계속될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지속되는 한 이 충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경쟁을 멈출 수 없다. 이 때문에 잠시 평화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전쟁의 위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들이 진정한 자결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를 폐절하는 운동으로, 곧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구상의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위협하는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민중들이 제국주의 경쟁을 폐절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윤을 위한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건설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경쟁’없는 자본주의를 기대할 수 없듯이, ‘전쟁’ 없는 제국주의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는 푸틴과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규모는 작지만 한국에서도 전쟁에 반대하고, 문재인 정부의 전쟁지원을 비판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평화’는 이윤경쟁체제인 자본주의를 그대로 두고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 지구상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을 없애고 진정한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이윤체제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한 운동은 러시아에서, 미국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만들어져야 한다.
이윤체제에서 진정한 ‘평화’는 없다
이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 짐작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만큼이나 섣부른 행동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전환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들이 감지된다. 결사항전을 선포하며 지난달 28일 즉각적인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했던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 뜻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속한 정당 ‘국민의 종’은 ‘전쟁과 나토가입’에 대한 자신들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나토)동맹이 우크라이나를 최소한 15년 동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 관한) 현실적인 것에 대해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실상 러시아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서유럽의 나토동맹국들의 입장도 상당히 바뀌었다. 지난 10일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이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만났는데, 거기서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은 ‘장기적’으로 가능하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의 ‘신속한’ 유럽연합 가입을 배제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배제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러시아도 그들이 ‘비(非)나치화’로 이름한 ‘젤렌스키 정부의 퇴진’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부를 인정해주는 대신에 젤렌스키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월 16일 현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포위하고서 젤렌스키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애초 그들의 요구에서 젤렌스키 정부의 퇴진 요구를 빼면, 러시아의 요구는<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인정 ■우크라이나의 비(非)군사화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의 자치공화국 인정> 이 남는다.
러시아의 요구를 종합해보면 크림반도와 도테츠크·루한스크·돈바스 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삼아서 나토와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서 나토의 동진(東進)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저항에 부딪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미군의 전례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내부에서도 반(反)푸틴 정서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3월 14일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4차 협상이 15일에 이어 16일에도 다시 열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측 관계자는 “확실히 협상의 공간”이 있다며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 정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격돌했던 러시아와 나토동맹국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맞추어진다면 전쟁이 일단락될 수도 있어 보인다. 물론 협상의 조건을 두고 줄다리기와 신경전이 오갈 수 있고 타협점을 찾지 못해서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3월 24일에 유럽을 방문해서 나토회원국 정상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제재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설혹 전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으로 치닫는 경쟁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지속되는 한 전쟁이 끝나더라도 결코 평화가 보장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자신의 발전 동력으로 삼는 체제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세계를 ‘분할·지배’하는 제국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최후 단계다. 제국주의가 더 이상 발전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쇠퇴하는 최후의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자기파괴적이다. 제국주의의 자기파괴적인 경쟁이 전쟁으로 외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화’는 영원하지 않고 매우 ‘일시’적이다. 세계 노동자·민중의 손으로 이윤을 위한 경쟁체제인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이윤을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자본가계급의 정치적·경제적 지배를 끝장내야만 노동자·민중을 위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