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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광주지회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희생양이 되다

기아차광주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아차에서는 반장이 여유인력이 없어서 조퇴가 안 된다고 하면 조퇴하려는 조합원이 노동조합 사무실에 사번을 적어 내고 퇴근하는 일이 관례가 되어왔다. 그런데 몸이 편치 않아서 조퇴가 잦았던 한 조합원이 이렇게 한 것을 두고 회사가 ‘무단이탈’로 징계했다. 회사가 자신들의 징계가 합당하다고 다수 조합원들이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조퇴가 잦은 조합원를 골라 징계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당 반의 조합원들은 징계가 조퇴를 통제하려는 회사의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생각해 징계철회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여유인력이 부족한 것이 ‘무단이탈?’-‘죄퇴’의 원인이기 때문에 회사가 더 많은 여유인력을 확충해 조합원들이 자유롭게 조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아차광주지회의 다수 조합원들은 징계를 맞은 조합원의 ‘잦은 조퇴’를 이유로, 곧 ‘근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회사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근태가 좋다고 생각하는 다수 조합원들은 징계를 자신들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징계가 ‘회사가 조퇴를 통제하려고 벌인 일’이라는 것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집행부도 징계철회 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조합 집행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징계철회 투쟁은 노동조합 내부의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 징계철회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조퇴자를 ‘무단이탈’로 보고한 반장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반장과 조퇴자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조퇴자가 노조사무실에 사번을 적고 퇴근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반장이 무단이탈로 보고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일도 쉽지는 않았다. 다수 조합원들은 여전히 징계가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일로 반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징계철회’ 투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반장의 근태조작, 그리고 이어진 반장퇴진 투쟁


그런데 위의 그 반장이 근태를 조작한 것이 반 조합원에 의해 발각됐다. 같은 날 조장과 평조합원이 지각했는데, 근태 일지에 조장은 ‘외출’로, 평조합원은 ‘지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외출’과 ‘지각’은 각각 그 시간만큼 똑같이 임금이 깎이는 것이기 때문에 평조합원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 차이를 문제 삼을 것은 없었다. 그런데 조장은 ‘지각’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쳐 진급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암암리에 반장들이 조장들의 근태를 조작해왔다. 
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은 근태조작을 근거로 반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현장에 반장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걸어두고 일하고, 식당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했다. 
반장들, 주임, 과장, 부서장 등 회사 관리자들이 식당 앞으로 몰려와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 맞섰다. 그러나 일이 커졌다. 이번에는 다수 조합원들도 반장이 잘 못 했다고 생각했다. 회사도 이 일을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는 이 반뿐 아니라 다른 반 근태까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태를 조작한 다른 반장들을 더 찾아냈다. 회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명의 조장과, 4명의 반장, 2명의 주임, 그리고 부서장이 경고를 맞았다. 그러나 반장을 해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고는 반장을 보호하려는 회사의 고육지책일 뿐이었다.

회사의 기획된 보복징계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해괴한 소문이 돌았다. 그것은 반장퇴진을 요구한 조합원들을 ‘직장내괴롭힘’으로 징계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반장퇴진을 요구했던 조합원들은 근태조작 혐의가 있었던 반장을 찾아가 해명을 요구했는데, 그때 반장은 “집단적으로 이러지 마세요. 집단적으로 이러지 마세요.”를 연발했다. 반장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소문도 났다. 이후 회사는 투쟁했던 조합원들을 직장내괴롭힘 혐의로 조사하고, 전환배치하고, 지금은 징계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소문이 단지 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회사의 기획이었다.  
근태조작으로 반장, 주임, 부서장 등 일부 관리자들이 경고를 먹자, 반장퇴진을 요구했던 조합원들은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 했지만, 더 이상 투쟁을 밀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투쟁을 접었다. 
그런데 소문이 현실화됐다. ‘알 수 없는’? ‘제3자’가 반장퇴진을 요구했던 조합원들을 ‘직장내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했고, 회사는 노무사 2인에게 이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다. 노무사들의 조사는 위의 두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조사가 ‘객관적’이라고 위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반장퇴진을 요구했던 조합원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 이것이 자신들에 대한 회사의 공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번 투쟁으로 너무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회사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노무사들의 조사는 한 달간 이어졌다. 그리고 지방노동청에서는 노무사들의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도 예상되었던 일이다. 지방노동청에서는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 ‘전환배치’와 함께 ‘감급과 출근정지’ 이상의 징계를 권고했다. 적극적인 가담자로 지목된 6인이 전환배치 대상이 됐다. 이들은 1공장(소울/세라토)에서 2공장(소울/스포티지)으로 전환배치됐다. 징계가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회사는 만약 이들이 다시 피켓을 들거나 유인물을 내는 등 투쟁에 나선다면 ‘괘씸죄’를 물어 ‘해고’까지 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대응


투쟁했던 조합원들은 노무사들의 조사가 시작되던 때부터 광주지회 집행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 일을 담당했던 집행 간부는 “반장한테 대들어서 무사한 경우가 없었다” “이것은 개인들 일이지 노동조합 일이 아니다” 등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집행부가 회사 편인지 조합원들 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집행 간부는 “집행부가 징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도 “이 일이 노동조합 활동과는 관련이 없는 개인들 간의 일”이라고 했다. 
이런 집행부의 태도는 집행부가 조합원들 편에 있기 보다는 회사와 조합원들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거간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게 했다.
징계가 예상되었던 시기를 지났지만, 아직 징계가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몇몇 집행간부가 전환배치 대상자 1인에게 전화를 걸어 “집행부가 회사의 3공장(봉고Ⅲ) 특근를 가지고 징계를 막았다.”고 공치사를 늘어놓기도 했다.(기아차에서는 노동조합 집행부와 합의 없이는 회사가 마음대로 특근을 할 수 없다.) “전환배치는 그렇다 하더라도 징계까지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조합원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집행부가 전환배치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징계’까지는 막아보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전환배치자들이 한 집행간부를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이 집행간부는 “반장에게 사과를 하면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말을 전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회사가 투쟁에 나섰던 조합원들에게 굴욕을 강요하는데, 그런 회사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중립적인 입장인 것처럼 조합원들에게 굴욕을 감수하라는 식으로 회사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분명 ‘거간꾼’ 그 자체였다. 
이런 집행부의 태도는 회사와 조합원들 사이에서 중개인(거간꾼)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 관료들을 지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들을 회사로부터 떼어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직 아래로부터의 다수 평조합원들의 힘밖에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보여준다. 

회사의 속내?


회사가 그들의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징계’까지 갈 생각이 없을 수는 있다. 확인된 것은 그들이 투쟁했던 조합원들의 의기와 자존심을 꺾고, 굴욕감을 줘서 정신적인 항복을 받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징계’로 그 조합원들이 앙심으로 품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다는 아니지만 전환배치된 이들 중 일부는 확실히 회사의 강압에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만약 회사에서 징계를 내린다면, 징계에 맞서 다시 투쟁을 이어갈 생각을 하고 있다.
어쨌든 회사가 징계를 서두르지는 않고 있다. 이것이 투쟁했던 조합원들을 심적으로 더 괴롭히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징계를 했을 때 그들이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회사의 가장 큰 약점은 반장의 ‘근태조작’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비록 양형은 낮은 ‘경고’였지만, 이것은 조합원들의 반장퇴진 요구가 정당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만약 징계처분을 받게 된 이들이 행정소송을 하게 된다면, 회사도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행정소송에서 회사가 진다면 회사 관료 누군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회사 관료의 이와 같은 두려움이 징계를 망설이게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짐짓 모른 채 하면서, 투쟁했던 조합원들의 굴복을 받아내려 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불투명한 것이 많다. 그러나 확실한 하나는 회사가 징계를 내린다면, 그것에 불복하고 다시 투쟁에 나설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조합 관료들도, 회사도 그리 편치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기아차지부와 같은 거대노조에서도 자본가들은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의 허점을 이용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