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추진이 가짜뉴스?
윤석열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이 쟁점화 되고 있다. 그 시작은 5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김대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이었다. 야당의원의 공기업 민영화 관련 질의에 김대기 비서실장은 “인천국제공항 경영은 정부가 하되 30~40% 정도는 지분을 민간에 팔아야 한다”고 답변해, 정부가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 다음 날, 민주당은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인천국제공항 민영화를 윤석열 정부에서 재추진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300여 개의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면서 철회한 전례가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국민의힘은 민영화 추진은 가짜뉴스라며 반발했고, 대통령실도 “비서실장 개인의 의견”,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검토한 적도, 현재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국정과제에서 드러난 민영화 의지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해명과는 달리, 인수위 시절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전력, 보건의료, 사회복지 등 공공부문 전반에 걸쳐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중 ‘에너지안보 확립과 에너지 신산업·신시장 창출’을 위해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전력시장·요금체계를 조성하겠다고 제시했다. 인수위가 발표한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에서는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 육성’을 통해, 전력 판매구조를 시장에 개방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전력시장을 민영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또 다른 국정과제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추진’을 살펴보면, 보건의료, 사회복지, 교육, 언론, 정보통신 등을 ‘서비스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민영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기능조정·외주화·인력감축 등 공공서비스 축소, 공공기관 및 출자회사 지분 및 자산 매각, 교통·산업·생활 인프라 SOC 민간투자 확대, 민간병원 지원확대, 사회서비스 분야 민간공급 확대 등 공공서비스가 담당해 온 영역에서 민간자본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본질은 공공부문 민영화
이런데도 민영화를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해명은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에 가까운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기업의 소유권을 민간으로 완전히 넘기는 것만을 민영화로 한정해, 자신들은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기만이다.
윤석열 정부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들도 공기업의 소유권을 통째로 민간에 넘기는 방식의 민영화를 추진하려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자, 민간자본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우회해 왔다. 공기업 선진화/효율화/정상화 등의 이름을 갖다 붙이더라도 본질은 공공부문 민영화일 뿐이다.
좋은 민영화는 없다!
민영화 예찬론자들은 시장경쟁 체제 도입을 통한 효율성 향상으로 요금 인하,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기업은 언제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에 설비투자를 줄이고, 고용을 줄이고 외주화 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해왔다. 이로 인한 이용요금 인상, 안전사고 발생 증가, 노동자 고용불안 증대, 서비스 질 하락은 당연한 결과이다.
대표적 철도 민영화 사례로 꼽히는 영국의 경우 민영화 이후 해마다 탈선, 전복, 열차충돌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경쟁을 통해 생산성과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회사가 난립했지만, 이윤 극대화에 눈이 먼 기업들이 안전을 위해 필수인 유지·보수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전력 시장을 민영화한 미국 텍사스에서는 지난 해 한파가 닥치자 수백만 가구가 정전되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사전에 있었음에도, 전력회사들이 비용을 이유로 설비투자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파가 있던 달의 전기요금으로 1,880만 원이 청구되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의 KT는 민영화 이후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비용절감에만 열을 올렸다. 민영화 이후 정리해고를 10여 차례 시행해 6만여 명이던 노동자들을 2만여 명까지 줄이고, 그 자리를 외주·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웠다. 설비를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설비를 뺀 건물은 매각하거나 임대사업에 활용했다. 화재, 통신망 장애 등의 긴급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는 불필요한 비용으로 치부되고 있다.
위 사례에 등장하는 기업들은 민영화로 천문학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민영화로 인한 피해는 모두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는 민영화가 가져올 결과가 어떨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소수의 자본가에게 막대한 부를 몰아주고, 다수의 노동자 민중에게 그 피해를 전가하는 민영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 조직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