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흔하게 듣고 접하는 단어가 있다. ‘MZ세대’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과거 X, Y세대를 이어 다음 알파벳순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1980년부터 200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다.
과거에도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 존재했다. ‘기성세대’,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 등이 그것이다. 이 말들은 잠깐 화두가 되었다가 사라졌으나 어느 순간 ‘세대론’ 붐이 일면서 여러 분야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지속시키는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 현실문제를 어떻게 세대갈등으로 가려지게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자주 언급되는 ‘청년’과 ‘기성세대’
세대갈등을 부각시킬 때 청년과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주로 활용된다. 청년들은 불평등한 사회의 피해자로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제공자로 보는 것이다. 예로, 박근혜 정부가 임금피크제 정책을 실시하려 할 때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 기성세대가 양보해야한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래야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피착취계급 내에 있는 사람들끼리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로 기다.
하지만 ‘기성세대’에 포함되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의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세분화 시켜서 보면, 기성세대 내에도 청년세대의 문제라는 차별과 박탈감을 동일하게 겪고 있는 비정규직, 계약직, 불법파견으로 고용된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들은 이전의 경제 발전시기를 우연히 잘 타고나서 시대적 혜택을 받은 기득권층은커녕 가난과 불평등,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세대론자들은 기성세대를 일컫는 n86세대들의 시대적 배경을 대졸자와 캠퍼스라는 단어로 좁게 해석한다. 그러나 당시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n86세대’라는 대표명사는 그 범위에 포함되지 못하는 절대다수를 역사의 기록에서 지워버린다. 그렇게 아주 일부의 이야기가 한 세대 전체의 서사로 포장되어 객관적인 현실을 보지 못하게 가로 막았다.
일자리나 비정규직 문제에서는 세대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막론하고 그런 고용형태로 존재하는 노동자로 구분해야 하는데 이걸 가로막는 것이 세대론이다. 덧붙여, 언론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50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원’은 기성세대 비중 전체에서 0.7%에 불과하다. 결국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를 위해 양보해야 하는 가진 것 많고 욕심 많은 한 세대로 통칭할 수 없다.
불평등 구조는 지금이 아닌 그 이전부터
청년세대가 겪는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담론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 청년임에도 많은 자산과 권력을 가진 계층이 존재한다. 이것은 모든 청년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청년문제’는 청년세대라는 한 덩어리를 분해하는 작업을 통해서만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안정적인 자산을 보유한 청년들의 자산축적 경로를 역추적해보면 거의 대부분 그 이전 부모세대에서 결정된 부를 물려받은 경우가 많다. 이건 이미 그 이전 세대에서도 불평등의 문제는 있어왔고 그것이 이어져 온다고 볼 수 있다. 결국은 계급 구조 안에서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의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현대의 경제·사회적 구조는 짧게는 해방이후부터 재벌들이 어떻게 부를 독식하는 제도가 안착되었는지, 생산수단을 어떻게 소유하였는지 그 연원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거기에 구조적 모순의 원인이 숨어있다. 지금의 “일자리 창출없는 수출의존 축적 전략,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원하청 구조, 노동인권을 위협하는 변칙적 고용계약 행태들”은 세대론의 시선에서는 볼 수 없다. 나이라는 원초적 차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리는지 알 수 있다.
언제 ‘청년’을 언급하는가
선거나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미디어에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정치인들과 미디어들은 경쟁적으로 청년들을 피해자로 포장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소비한다.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지금의 체제에서는 피착취계급을 여러 기준으로 나누고 갈라치기하는데, 세대론 역시 ‘나이’라는 원초적 차이를 활용한다. 세대론은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더 크게 재생산하면서 차이에 따른 차별을 성별, 청년과 노인 또는 고용형태나 성정체성에 따른 갈등으로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럼 누가, 왜 이런 세대담론들을 만들고 확산시키는지 알아야 한다. 세대불평등론은 청년들의 취업, 비정규직 문제 등은 기성세대가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장년 노동자가 고용, 임금 등을 양보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논리는 기업, 재벌, 고용주 등의 책임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게 세대론을 말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목표일지도 모른다.
세대가 아닌 계급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결국 특정 세대에 대한 정책은 있을 수 없었다. ‘20·30세대’를 위한 정책은 없었다. 같은 세대가 갖는 문화적 동질성,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생겨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공감대 이상의 강렬한 시대 경험과 정치적 동질성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객관적 처지와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세대’라는 틀에 욱여넣고 동질적 집단인 듯 다루는 것은 자칫 현실을 왜곡하기 쉽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장애의 정도에 따라 갈라치고 사회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현재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 시작점일 것이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