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쿠팡 현장 내 인권침해, 강한 노동강도에 따른 빈번한 산재사고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런 쿠팡의 열악한 현실은 언론에 수차 보도되었고, 쿠팡의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압력과 노동자들의 조직화 탓에 현장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UPH(unit per hour의 약자다. ‘시간당 생산량’이라는 뜻)는 없어졌다. 쿠팡의 열악한 현장이 자꾸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이 회사에 부담이 되었던 탓일 것이다. 그리고 특정인을 지칭해서 현장 전체에 방송해 일을 재촉하는 것도 사라졌다.
하지만 쿠팡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도입하거나 기존 방법을 강화하면서 더욱 촘촘하게 현장을 통제하려고 한다.
사실관계확인서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지시를 잘 못 이행하거나, 지각 등을 해서 일에 차질이 발생하면 ‘사실관계확인서’라는 것을 작성한다. 이는 일종의 ‘시말서 ’같은 것이다. 회사는 사실관계확인서를 작성하는 이유가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회사의 설명과는 다르게 사실관계확인서는 대부분 현장의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누구나 일을 하다보면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관계확인서를 작성하는 것이 그 개인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이 된다.
또, 회사는 마감시간이 되면 전체 직원들에게 ‘현재 컨디션이 저조하니 더 빨리 일해 달라’는 방송을 자주 한다. 회사는 많은 물량을 빠르게 최소한의 인원으로 쳐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재촉하면 사고의 위험과 실수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이 실수를 하면 회사는 또다시 사실관계확인서를 작성한다. 회사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압박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사실관계확인서가 재계약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노동자들에게는 큰 압박이 된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
쿠팡은 신선제품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특성상 주로 음식재료, 밀키트(밀키트란 손질된 식재료와 섞인 소스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식사키트)를 취급한다. 회사는 제품들이 도난당할까봐 현장 여기저기에 ‘물건을 훔쳐갔을 시 엄중한 처벌에 처한다’는 포스터들을 붙여 놓았다. 원래는 현장에서 섭취하는 것이 발견될 시 즉시 귀가 조치를 한다고 전체 노동자들에게 구두 경고를 했었는데,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꾸 “심야조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렸다, 계약직들이 집품해야 하는 음료수를 뜯어서 먹었다”는 소문이 돌더니 회사는 이를 노동자들의 몸을 수색할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요상하게 이런 일은 확인하기 어려운 반대조에서만 일어난다. 이 소문을 회사에서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들어가면 휴지걸이 마다 휴지를 훔쳐가지 말라는 경고장이 붙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면대 옆에 있던 손 닦는 휴지가 사라졌다. 청소노동자 분에게 직접 물으니 쿠팡에서 내려주는 휴지의 총량이 줄어서 본인들도 어쩔 수 없이 손 닦는 휴지걸이에는 휴지를 걸어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했던 것이 결국은 비용절감이 목적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한다.
이처럼 회사가 노동자들을 잠재적 도둑으로 취급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물건을 훔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노동자들을 도덕적으로 공격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거나 현장의 노동자들을 통제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보안검색 시행에 관한 것
회사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부터 사내에 반입금지 물품을 골라내기 위해 보안검색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사내에 어떤 물건들이 반입되면 안 되는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직원들을 수색할 수도 있으니 협조해달라는 문자였다. 나중에 핸드폰, 칼 등은 사내에 반입이 되지 않는다는 입간판이 세워졌다.
칼은 그렇다 하더라도 왜 핸드폰은 반입이 되지 않은 것일까? 급하게 연락이 올 수도 있고, 급하게 연락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말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이 일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핸드폰없이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할 것인가! 그러나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산성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 소지품 검색을 위한 설비가 설치되기도 전에 이미 그런 연락을 받은 모든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검열하듯 핸드폰을 현장에 가져가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지품을 골라내고 나서 현장에 출입하게 되었다. 회사의 문자 한 통에 사람들은 스스로 검열하고 조심한다. 괜히 회사에 밉보여서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불안해하면서 신경쓰는 것이다. 확실히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언제 핸드폰을 사용해야 하지는 판단하고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을 통제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회사는 ‘보안검색’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려고만 한다.
산재 부정수급 포스터
대구 물류 센터에서 일하던 20대의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곳곳에 ‘산업재해 부정 수급 방지’ 포스터가 붙었다. 포스터는 산재를 신청해서 부정수급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산재신청에 부도덕의 프레임을 씌워서 산재신청을 사전에 통제하겠다는 목적이 있어 보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면 ‘산재사고가 Zero’인 쿠팡을 찬양하는 기사가 버젓하게 뜬다.
쿠팡은 강도 높은 업무로 유명한데 이렇게 시달리다 보면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산업재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회사는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해 산업재해를 막으려 하기는커녕 몸이 망가진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마저 통제하려고 든다.
조퇴 사용 부자유
예전에는 조퇴하려면 현장 관리자에게 말하고 바로 퇴근하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조퇴 신청과정이 달라졌다’고 통보했다. 회사는 조퇴를 하려면 24시간 내에 현장관리자인 캡틴에게 조퇴신청서를 받아서 적어 내거나, 운영 사무실 서류함에 있는 조퇴신청서를 직접 가져다가 작성한 다음 매니저급 관리자에게 가서 왜 조퇴신청을 하게 되었는지 면담을 한 후 개인 면담지에 서명을 하도록 했다.
혹시나 건강에 관련된 사안이면 건강관리 담당자와 심층 면담을 해야 하고, 건강문제가 아니더라도 월에 조퇴가 1회를 넘어가면 일반 관리자와 심층 면담을 해야 한다. 회사는 회사를 다니면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자주 조퇴를 하는 지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거나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노동자들은 이런 복잡한 절차가 번거롭고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회사에 찍히면 회사가 인원을 줄일 때, 1순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동자들은 웬만해서는 조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조퇴가 인사고과에 반영되어 재계약, 무기계약직 전환 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더더욱 근태관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회사의 조퇴통제는 ‘더 적은 인원으로’ 최대한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목적을 지향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
요즘은 무섭게 덥다. 회사에서는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물, 그늘, 휴식’이 적힌 포스터를 붙여놨다. 그러나 물과 그늘과 휴식이 없는 현장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회사의 현장통제는 노동자들의 안전, 위생, 건강을 명분으로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회사가 내거는 노동자들의 안전, 위생, 건강은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헛소리다. 회사가 외부의 압력없이 자율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위생과 건강을 명분으로 현장을 통제해 생산성을 높이려 하고, 비용을 절감하려고 할 뿐이다.
결국 더 강도 높은 착취, 더 많은 이윤이 회사의 현장통제의 목적이다.
쿠팡의 노동자들도 이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런데도 회사의 현장통제가 먹혀들어가는 이유는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고용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재계약의 불안감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회사의 현장통제를 참아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싸우지 않는다면, 참고 참고 참아내다가 결국 회사의 필요가 다하면 버려지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불만, 불안, 꿈, 희망 등 자신들이 느꼈던 모든 것들을 모두가 함께 가감없이 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는 길 뿐이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