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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사면의 궤변, 민생과 경제회복

절대권력, 특별사면


특별사면이란 국가원수의 권한으로 범죄인에 대한 형벌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하거나 형벌로 상실된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행위를 일컫는다. 사면과 복권, 감형까지 사면의 범위로 들어간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재량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최고권력자의 사면권은 고대역사서인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것이다. 왕이 사라진 지금도 이 특권은 아무도 견제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다. 
현대에도 특별사면은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면서 범죄를 저지른 권력층을 사면시켰는데, 이승만 정부 때는 신년 맞이 특사, 팔순 맞이 특사가 있었다. 이때 거창민간인학살사건(한국군이 ‘공비 소탕’을 빌미로 1951년 2월 7일 산청에서 시작해 함양을 거쳐 2월 11일 거창까지 지리산 동남부를 돌며 5일간 저지른 '연쇄학살사건'을 말한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수는 거창 719명, 산청·함양 705명 등 모두 1424명에 달한다)의 주동자로 불리는 사람들마저도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역대 모든 대통령은 꾸준히 특별사면을 해왔고 정치인와 재벌들을 사면시켜줬다. 물론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구속이 된 사람들이나 가벼운 경제사범들을 끼워 넣기는 했지만, 이것은 주로 각 정권의 최측근과 재벌들의 사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생안정과 경제회복?


윤석열 정부에서도 8월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특별사면 대상에는 이재용(삼성), 신동빈(롯데), 장세주(동국제강), 강덕수(STX) 등 주요 재벌의 총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재벌들을 특별사면하면서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범국가적 경제위기 극복이 절실한 상황인 점을 고려했다’며 ‘적극적인 기술투자와 고용창출로 국가의 성장동력을 주도하는 주요 경제인들을 엄선해 사면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경제 분야의 국가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재벌 총수들을 풀어주는 것이 과연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성장을 위한 것일까. 
각 인물들이 구속된 이유를 살펴보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재용은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가석방을 받았고 이번 사면을 통해서 직업제한까지 풀리면서 경영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를 비롯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뇌물죄, 국회에서 위증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이번 사면으로 완전히 풀려났다. 신동빈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목적으로 K스포츠 재단에 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70억 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2년 6개월 형이 선고되었으나 이번에 사면되었다. 장세주는 비자금 88억여 원을 조성해 해외도박자금과 개인채무를 갚는 데 사용하여 횡령죄로 2016년에 징역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018년 이미 가석방이 되었으며 이번에 사면되었다. 강덕수는 분식회계를 통해 허위 재무제표 제출로 2조 6500억 원 상당 사기 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었다. 이런 이유로 실형까지 살게 된 자들이 ‘민생안정’과 ‘경제회복’과 어떤 연관이 있기에 사면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재벌총수들이 감옥에 가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민생이 불안정해지는가? 경제개혁연구소의 2020년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는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재벌총수에게 실형이 선고된 후에 주가는 0.6%하락에 그쳤고, 집행유예가 나오면 오히려 주가가 1.4% 내려간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국거래소와 인포맥스의 2021년 조사에서도 재벌총수의 사법처리 후에 오히려 주가가 상승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즉, 재벌들의 사면과 경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뜻이다. 

사면을 하면 국민통합이 이뤄지는가?


‘국민통합’은 사면을 할 때 마다 자주 등장하는 명분이다. 특히 감옥에 간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사면할 때면 자주 등장한다. 12·12 쿠데타와 5·18광주 항쟁 사건을 두고 형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국정농단으로 구속되었다가 문재인 정권 말기에 사면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뇌물과 횡령 혐의의 현재 감옥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 범죄자들의 사면으로 국민통합이 가능한 것인가. 이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정작 사면을 반대하고, 사면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사면은 강행된다. 사실상 정치인들의 특별사면에서 ‘국민’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정치·경제 권력을 향유하는 소수의 지배자들과 지지층일 뿐이다. 
이번 8·15 특별사면에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전직 상층관료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생색내기일 뿐이고, 비정규직노동자의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받은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대표나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수십 수백억원의 손배를 당한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외면되고 있다. 이처럼 파업과 집회를 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특별사면은 자본가계급의 공생 이벤트


특별사면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한 몸이라는 자기고백이다. 이번 사면에서 이명박과 김경수가 빠진 것처럼 여론의 눈치를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주며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무소불위의 특권이다. 경제권력은 정치자금과 정치인들의 공약에 투자를 약속하고 정치권력은 어떠한 죄를 지어도 솜방망이 처벌로 책임을 회피하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이 두 권력은 자본가계급이라는 계급적 범주로 묶여 있다.
특별사면은 합법적 외피를 쓰고 자본가계급 공동체의 실체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이벤트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국민 대통합, 민생회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치 대단한 결단을 하는 양 사소한 경제사범과 상층노조관료들을 끼워넣기는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생존과 존재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본주의 절대법칙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