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지난 8월 9일에 ‘반도체 지원법’을 공표했다. 이어 미국의 상원과 하원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이달 12일에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골자로 하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법안들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둘째는 미국 내에 제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위의 법안들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배터리·전기차·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주도의 생산·공급라인(Supply chain)을 새롭게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국외로 빠져나갔던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내 제조업 유치 정책을 통해 바이든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한다. 바이든 정부의 이런 정책은 11월에 있을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일자리 부족과 임금 삭감으로 불만이 쌓인 백인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이런 정책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의 결과는 세계경제가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보다 확고하게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냉전질서’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인지 단정짓기는 아직 이르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반도체·배터리·전기차·바이오’ 등 몇몇 미래의 유망산업 분야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이든 정부가 내거는 정책들은 분명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서 만들어놓은 자유무역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중국을 배제하면서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미국 내 제조업을 재국축하겠다는 보호무역 정책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이 정책들은 부분적으로 지금까지 미국의 우방이라고 여겨졌던 나라들, 한국·일본·유럽연합 등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집행되고 있다. 가령 다수의 중국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지원법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기아·현대차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피해자가 됐다.
바이든 정부의 ‘중국 견제’와 ‘미국내 제조업 유치’ 정책이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에션 감축법’ 등에 어떻게 구체화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반도체 지원법’
지난 7월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인 KLA·램리서치·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등 3개 회사에 14나노급(10억분의1m) 이하의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는 세계의 거의 모든 기업이 미국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이나 SK하이닉스도 그렇다) 바이든 정부는 개별 기업에 대한 이러한 통제를 산업 전반까지 확대해 통제할 수 있게 하려고 10월에 이런 내용을 담은 새 수출 규정을 발표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의 반도체 생산 기업들도 새로운 공장을 지을 경우 중국에 공장을 짓기가 어렵게 됐다. 한국·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새롭게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노동력이 값싼 베트남이나 인도로 가든지, 보조금을 주는 미국으로 가야 한다. 물론 자국에 지어도 되지만 중국은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 내 남은 각국의 반도체 공장들도 빠르게 노후화될 것이다. 반도체는 기술 진보가 대단히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탈중국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삼성 등도 이미 중국에서 빠져나와 베트남이나 인도 등지로 공장을 옮기고 있거나 그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어 8월 9일에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총 2,800억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법’ 발표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 규모의 투자자금을 지원하고, 동시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다.
그런데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기존 반도체 공장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막으려 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일본·유럽연합 등의 반도체 생산 기업들을 미국 내로 유치하려고 한다.
그런데 만사가 바이든 정부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강력한 중국 견제 정책, 반도체 씨말리기 정책이 중국의 기술 자립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은 7나노급 초미세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시진핑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핵심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중국 내 반도체 씨말리기 정책에 대응해 반도체 생산 공장을 인도나 베트남 등지에 짓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인도나 베트남의 노동력이 중국의 노동력에 비해 더 값싸다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항해 미국 중심의 새로운 생산·공급라인을 구축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시도가 얼마만큼 성공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경쟁 지형을 만들어 낼지 모두 예측할 수는 없다. 상황이 어찌 바뀔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바이든 정부의 행보는 막강한 경쟁국인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바이든의 보호무역주의는 확실히 막장 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런 ‘막장 수’가 의미하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쇠퇴하는 상황 속에서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패권 경쟁의 압력이 대단히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확대되는 경쟁의 격화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가공할 위력의 새로운 막장 드라마를 연출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도 틀림없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지난 8월 7일 미국 상원을 통과했고, 16일 바이든은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은 ‘에너지 보안 및 기후 대응 투자’, ‘대기업 증세(최저 법인 세율 15% 적용)’, ‘처방약 가격 결정 과정 개혁(정부가 제약회사와 의약품 가격협상)’, ‘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에 대한 정부의 의료비 지원 프로그램) 본인 부담금 한도액 설정 및 의료보험 보조금 연장’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알려진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주로 전기차에 관련한 것에 한정되어 있다. 기아·현대차의 전기차가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기아·현대차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글에서 다루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배터리와 전기차 분야에 한정하려고 한다. 다른 분야의 내용들도 충분히 다룰 가치가 있는 것들이지만, 이 글의 제재를 이루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중국 견제’와 ‘제조업 유치’ 정책에 맞는 핵심이 ‘배터리와 전기차 분야’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2023년부터 소비자가 전기차를 살 때, 신차에 최대 7,500달러,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를 지원한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핵심 광물(니켈·망간·코발트·리튬 등)의 일정 비율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비율은 2023년에는 40%이지만 1년마다 10%포인트씩 올라가 2027년 이후엔 80% 비율을 맞춰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면 소비자가 차량을 구입할 때, 3,750달러를 정부에서 지원한다.
둘째,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완성차) 배터리를 구성하는 부품(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동박 등)의 일정 비율 이상을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지역에서 생산·조립해야만 한다. 이 비율은 2030년에 50%에서 차츰 높아져 2029년에는 100%가 된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입할 때 정부에서 3,750달러를 지원한다.
이 두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배터리와 전기차의 최종 조립·생산이 북미 지역에서 이루어져야만 그런 차량을 구입할 때 소비가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자동차(완성차) 업체들이 미국 정부가 소비자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북미지역에 전기차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전기차 생산·공급 라인은 중국에 편중되어 있다. 중국은 양극재의 70%, 음극재의 85%에 해당하는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셀 생산능력의 75%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은 양극재의 15%, 음극재의 3%, 일본은 양극재의 14% 음극재의 11%의 생산능력 각각 보유하고 있다. 중국·한국·일본이 전세계 양극재·음극재 생산능력의 99%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담고 있는 배터리·전기차 관련 법안은 이처럼 중국에 편중되어 있는 배터리 생산·공급라인을 미국 중심으로 재구축하려고 한다. 반도체 지원법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중국에서 전기차 배터리의 씨를 말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이 법은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법이 통과된 이후 전세계 주요 완성차업체와 배터리업체들이 북미지역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2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을 24년까지 앞당겨 완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중국 중심으로 구축된 ‘배터리 핵심 광물, 배터리 셀과 부품의 생산·공급 라인’을 단기간에 와해시키고 미국이 주도하는 생산·공급라인을 완성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심지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최대 수혜자가 될 GM과 포드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한편으로 미국 주도의 배터리 생산·공급라인을 구축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중국에서 생산·공급되는 배터리에 비해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가격이 상승하면 당연히 전기차의 가격도 상승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촉진할 가능성도 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담긴 바이든 정부의 배터리·전기차 생산·공급라인 재구축 계획은 중국 배제만이 아니라 배타적으로 북미지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공까지 가는 과정이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의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이 계획은 바이든 정부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중국과의 경제적 패권 경쟁이 미국 자본가계급 정부에 넣은 압력의 결과다. 심지어 그것은 미국의 오랜 우방국가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만큼 그 경쟁의 압력이 그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는 뜻이다.
더욱 불투명해질 세계 경제
13일 바이든 정부는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위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반도체·배터리·전기차에서의 미국 주도 생산·공급라인 재구축을 바이오 분야에서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국 견제 의도를 분명히 했다.
한편으로 미국의 상원은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법안의 심의에 착수했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켜왔다. 지금껏 대만을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상원은 대만을 독립적인 동맹국가로 인정하고 대만 정부를 국민의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는 대만정책법을 (축조)심의하기로 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상원의 법안 심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대만에 전쟁무기를 팔아먹으려는 바이든 정부가 변심하면 그 법이 상·하원을 통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으로 중국·러시아·북한 등의 결속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양 진영 간 갈등이 격화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인플레이션 감축법·바이오 제조법 등 중국 견제 정책은 세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더 확고하게 분열시킬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거대한 경제적 힘 때문에 그 구조 속으로 떠밀리고 있는 미국의 우방국가들은 더욱 미국의 경제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중국과 여러 방식으로 경제적 관계를 맺을 것이지만 말이다. 미국조차도 중국과 모든 경제적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단절은 냉전 혹은 전쟁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은 더 낮은 생산비용을 지향한다. 만약 미국 주도의 생산·공급 라인의 구축이 더 높은 생산비용을 낳는다면 그것은 진영 간 경쟁에서 미국을 곤란하게 할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변화될 미국 주도의 생산·공급 구조가 시간이 흐른 뒤에 반드시 미국에 이롭게 작용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의 보호주의가 미국을 더욱 곤란한 지경으로 내몰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상황이 세계 경제를 훨씬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러면 미국의 보호주의는 훨씬 더 강화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보호주의도 강화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중국과 러시아’를 한축으로 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을 다른 한축으로 하는 양 진영의 갈등을 더욱 고조시켜 그들 정부들이 위험한 무력도발을 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물론 바이든 정부의 계획이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면 미국의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가 다소 연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양진영으로 더 확고하게 나뉘고 대립과 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바이든의 계획이 자본주의 경제의 경쟁압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그것이 낳은 결과는 또다시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을 더한 격랑 속으로 끌고갈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더욱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결과를 피해갈 수는 없다.
이 모든 위험들의 뿌리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이 놓여 있다. 이 경쟁을 폐절해야만, 곧 자본주의를 폐절해야만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