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줄어도 천문학적 배당잔치
현대중공업지주는 올해도 고배당을 실시한다. 핵심 자금줄인 현대오일뱅크의 실적이 줄었음에도 작년에 이어 고배당 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몽준과 정기선 부자는 931억 1,784만 5,500원의 배당을 받게 된다.
작년에도 정씨부자의 배당금은 말들이 많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순으로 현대중공업을 쪼개고 지주사를 설립해 손쉽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증여세 부담은 고배당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의혹이 아닌 현실
정기선은 2018년 4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인수하며 단숨에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인수자금(3,540억 원)의 90%(3,040억 원)를 정몽준이 대납했고, 나머지 500억 원을 NH투자증권으로부터 주식담보 대출을 받아 냈다. 이에 따라 정씨부자는 1,440억 원의 증여세를 내야하고 대출금 500억 원도 갚아야 한다. 여기에 5년간 6회에 걸쳐 분할납부하기로 하면서 가산금 60억 원도 내야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18년 8월 말 갑자기 “배당성향 70% 이상, 배당수익률 5%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2월 6일엔 “앞으로 3년 동안(2020~2022년) 배당성향을 70% 이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배당 기간은 증여세 분할납부기간(2018년~2022년)과 정확히 일치한다. 2022년까지 배당금으로만 받게 될 총 금액은 어림잡아도 4,655억 원에 달한다. 증여세, 대출금, 가산금을 모두 제하고도 2,600억 원 이상 남는 엄청난 금액이다.
2월 18일 현대중공업지주가 자사주 48만 6천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하면서 정씨부자의 지분율은 30.9%에서 31.9%로 1% 올라가게 된다. 앞으로 3년 동안 정씨부자가 받게 될 배당금도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노동자는 일하고도 쪽박
정씨부자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장난질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때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경영환경이 아직도 어렵고 살아남기 위해선 생산성과 원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주주에게는 이윤이 줄어도 대규모 배당을 해주면서도 노동자들에게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재작년부터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4대 보험 체납도 심각해 은행권 대출도 막히며 심각한 생계곤란을 겪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올해 1월 급여도 또다시 체불됐다. 약 3천여 명의 하청노동자가 전액 또는 30~50% 임금이 체불됐다.
오죽하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을 경우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생계비보다 못한 월급을 받는다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건조부 물량팀·일당제 임금삭감 발표
현대중공업 건조부 하청사장들은 2월 28일 일방적으로 물량팀과 일당제 노동자들의 임금을 3월 1일부터 삭감하겠다고 통보했다. 일당은 5천 원 삭감, 물량팀은 맨아워(M/H, 숙련노동자가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분량)당 5백 원을 삭감한다. 모든 물량팀에 사업자등록을 원칙으로 하고 업체 간 이동은 6개월 간 금지시킨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건조부 물량팀·일당제 임금삭감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량팀·일당제부터 시작해 차츰 시급제 본공으로, 건조부에서 선행의장 등 야드와 내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하청노동자의 임금체불, 4대 보험 체납 문제를 기성금 현실화가 아니라 임금삭감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골적인 책임회피
이번 조치로 하청노동자들은 임금삭감뿐만 아니라 더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물량팀에게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한 것은 그동안 업체에서 가입해줬던 4대 보험을 물량팀이 자체 해결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업체가 가입했던 4대 보험을 물량팀장이 부담해야 되고, 이는 고스란히 팀원들의 몫이 된다. 즉, 보험료만큼 실질임금도 내려간다.
2017년 11월 현대중공업은 [공사도급기본계약서]를 수정하며 <재하도급 금지> 조항을 강화했다. 업체(1차 하청)가 물량팀(2차 하청)에게 물량을 줄 경우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인데,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조항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를 되살려 다단계 하청을 공식적으로 양성화하려고 한다. 6개월간 업체 이동도 제한한다고 하니 단가에 따라 움직였던 물량팀의 경우 저임금을 받아들이든가 현대중공업을 떠나든가 선택해야만 한다.
4대 보험 책임을 떠넘기고 2차 하청을 양성화하게 되면 그동안 원청이 지원하고 책임졌던 비용과 부담이 모두 하청으로 떠넘겨진다. 이보다 확실한 비용절감과 책임회피는 없다.
조용히 있으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번 임금삭감은 한 부서, 일부 물량팀의 문제가 아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 사측은 1년 반이 넘도록 임금체불과 4대 보험 체납 문제가 심각해도 꿈쩍도 안했다. “돈을 안줘도 일 잘하는데 왜 줘야 되느냐?”가 그들의 생각이다.
나섰다가 혹시라도 모를 불이익과 조선소에서 다시는 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하청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가만히 있으면 그 누구도 원청의 횡포와 업체 사장들의 뻔뻔함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계속되는 현대중공업 원청의 책임회피에 참다못한 일부 업체 사장들이 정몽구 집 앞까지 쫓아가서 집회를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는 이들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힘이 있다. 노동자들은 뼈 빠지게 일해도 월급조차 제대로 못 받는데 정씨부자는 숫자 몇 개 바꾸고 수백억 수천억을 그냥 가져간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