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인 9월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의 임금인상투쟁이 있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총파업 이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있었던 시기에 터진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의 투쟁은 급물살을 타며 짧고 굵게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총파업 투쟁 이후 거액의 손배와 고용승계 합의 미이행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나, 전라도 영암에서 들려온 투쟁승리소식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전체에게 다시금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현대삼호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라도 영암에 위치한 유일한 대기업인 현대삼호중공업은 1만명이 넘는 원하청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곳도 조선소인지라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거제나 울산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대중적인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파워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수시로 작업거부를 해오기는 했다.
현대삼호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이번에 임금인상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원청인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뒤흔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은 현대삼호중공업 하청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
또한, 그동안 대불산단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서남지역지회가 현대삼호중공업을 집중적으로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조직명까지 전남조선하청지회로 변경하면서 면밀한 준비와 현장 내 주체형성에 매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다시 파워노동자들이 포문을 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5~6년간 조선업 불황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아왔다. 작년부터 조금씩 조선업이 회복되면서 그동안 빼앗기고 억눌려왔던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개선과 임금인상 열망은 상당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선소에서 그렇듯 현대삼호중공업에서도 파워노동자들이 먼저 움직였다.
선체도장부 5개 업체장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고, 이들의 불만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9월 초 하청업체장들은 파워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추석연휴가 끝나면 임금인상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추석연휴가 끝나고 약속한 날인 9월 15일(목)이 되었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 날부터 본격적인 작업거부가 시작됐다.
사실 하청업체들은 집단적인 작업거부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업체별로 출근시간을 다르게 하거나 일당 2만원 인상을 던지기도 하고 아예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하는 업체도 있었다. 투쟁을 조직하고 있던 전남조선하청지회도 이런 방해공작에 얼마나 많은 파워노동자들이 작업거부에 동참할지 장담하지 못했다.
“생각일치 행동일치/시작도 함께! 마무리도 함께!”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이 작업거부를 시작한 첫 날 예상외로 100여명이 모였다. 돌관팀을 제외한 본공(상용직) 250여명 중 약 절반정도가 투쟁에 참여한 셈이다. 출근 후 각 업체 탈의실에서 대기하던 파워노동자들은 오전 10시 30분 경 현대삼호중공업 서문 인근 주차장에 집결했다. 5개 도장업체 중 4개 업체 파워노동자들이 모였고, 이중 3개 업체에서 사실상 현장노동자대표인 ‘소통대표’를 선출했다. 현장대표자회의에서는 바로 ‘안전5대요구안’과 ‘임금인상 요구안’을 정리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원칙을 투쟁에 참여한 모두와 공유했다. 바로 “시작도 함께! 마무리도 함께!”가 그것이다. 이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면서 철저하게 지키려했던 원칙이었다. 아주 단순하지만 노동자의 집단적 힘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이 행동강령을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도 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사실 파워노동자들은 수차례 작업거부투쟁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업체별로 팀별로 서로 분열하고 배신하며 스스로 무너졌고, 오늘은 임금인상을 약속하고 현장에 복귀하면 약속을 뒤집던 업체장들에게 속수무책 당해왔었다. 그만큼 함께 한다는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늘어나는 투쟁대오와 사측의 분열책
작업거부 투쟁 둘째 날이 되자 전날보다 더 많은 150여명의 파워노동자들이 집결했다. 전남조선하청지회는 조직을 정비하고 바로 노동조합 가입서를 돌렸다. 이제는 집단적 투쟁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선택해야 한다는 설득은 통했다. 절반이 훨씬 넘는 인원이 그 자리에서 흔쾌히 가입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투쟁 3일차인 9월 17일(토)엔 첫날 정리한 요구안을 모든 투쟁참여자에게 설명하고 승인을 받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제 투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공동요구안’이 공식화 됐다. 그런데 사측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다. 대폭적인 일당인상을 제시하며 투쟁대열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고 돌관팀 일부가 넘어가 버렸다.
사실 투쟁을 시작하기 직전에 5개 업체 중 1개 업체는 작업거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일당 2만원 인상 약속을 믿고 투쟁에 합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조삼모사 꼼수였다. 4대보험을 축소가입하고 법정공휴일 수당도 받을 수 없는 돌관팀 전환이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투쟁 4일차는 일요일이었다. 지난 2019년과 2021년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일요일이 가장 위험한 시기였다. 사측은 투쟁을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대열을 분열시키기 위해 개별접촉과 회유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5개 하청업체 사측은 ‘임금 1만원 인상, 19일(월) 미복귀자 징계’라는 회유와 협박을 담은 문자를 소속 하청노동자 모두에게 보냈다.
전남조선하청지회는 이를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험난한 길을 걸어왔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간접경험과 값진 교훈을 멀리 영암의 조선하청노동자들에게 전해줬기 때문이다.
전남조선하청지회는 사측의 분열책과 협박에 오히려 강하게 맞받아쳤다. 다음날 공동요구안을 공식적으로 전달하겠으니 서문 앞으로 5개 업체 대표들이 직접 나와 받아가라고 통보했다. 만약 나오지 않으면 이 투쟁은 전남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이 될 것이며 투쟁대오는 현장으로 들어가 투쟁을 확대할 것임을 천명했다.
마지막 줄다리기
주말에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전남조선하청지회로부터 긴급 연대요청을 받았다. 일요일임에도 당연히 두 지회는 영암으로 달려갔다. 다음날인 월요일 중요한 투쟁국면을 맞아 최대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투쟁 4일차인 19일 아침이 되자 전 주보다 더 많은 약 200여명의 파워노동자가 집결했다. 조선하청 3지회가 모두 모였고 함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서문으로 행진까지 했다. 전날 엄포를 놨던지라 5개업체 대표가 모두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표자 한명을 보내 공동요구안도 받아갔다.
투쟁 5일차인 20일엔 서문을 벗어나 정문에서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사실상 결정권한이 없는 하청업체 사장들이 아니라 원청을 향해 교섭해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공장 끝자락에 있던 서문이 아니라 원청의 본관이 있는 정문으로 투쟁거점을 이동시킨 것은 앞으로 어떤 투쟁이 기다릴지 명백히 보여주는 신호였다.
결국, 투쟁 6일차인 21일 수요일이 되어서야 교섭은 진전되기 시작했다. 원청이 교섭에 직접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부터 이어진 교섭은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의견일치안이 만들어졌다. 일당 1만원 인상과 연차부활, 안전요구는 단계적 수용이 핵심내용이었다.
투쟁 7일차 아침이 밝아오고 서문 인근 주차장에 다시 모인 파워노동자들은 의견일치안 설명을 듣고 찬반투표를 진행해 통과 시킨 후 바로 ‘투쟁승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로서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의 작업거부투쟁은 투쟁 일주일만에 승리로 마무리 됐다.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파워노동자들이 작업거부 투쟁을 시작하자 금속노조 광전지부와 현대삼호중공업지회가 곧바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정규직 현장조직들도 현수막을 게시하고 유인물을 배포하며 지지를 보냈다. 진보정당들과 사회단체들도 지지를 표명하며 투쟁대오가 고립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투쟁을 이끌던 전남조선하청지회의 긴급요청에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한달음에 영암으로 달려갔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직후 일어난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의 투쟁은 꼭 승리해야만 하는 투쟁이었다. 투쟁 이후 온갖 어려움에 직면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패배감을 남긴 것이 아니라 조선하청노동자들의 가슴에 투쟁의 불씨를 남겼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정이 점차 지연되자 업체들은 인근에 위치한 대한조선 파워노동자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하려 했으나 이들이 거부했다. 대한조선 파워노동자들은 같은 파워노동자가 작업거부 투쟁을 하고 있는데 대체인력으로 일할 수는 없다는 계급적 본능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현대삼호중공업 원청의 빠른 판단도 한몫했다. 사실상의 결정권한을 가진 현대삼호중공업 원청은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 투쟁을 짓밟으려다 엄청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분열책과 협박에도 파워노동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투쟁하자 제2의 대우조선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남은 불씨
현대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들의 투쟁승리는 또 다른 불씨를 지피고 있다. 사측은 파워노동자들의 투쟁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 돌입 직전 스프레이와 터치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기습적으로 인상해버렸다. 이는 효과가 있었고 이들은 파워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집단적 투쟁을 통해 임금인상과 안전요구를 쟁취한 파워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하청노동자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블라스팅 노동자들은 금방이라도 임금인상 투쟁에 돌입할 분위기다. 대체인력 투입을 거부했던 대한조선 파워노동자들도 들썩이고 있다. 거제 대우조선에서 폭발한 조선하청노동자의 투쟁이 멀리 영암의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번졌고, 인근 대한조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불씨가 울산에까지 옮겨 붙게 된다면 조선하청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