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 ‘미래노동시간연구회’(이하 연구회)가 지난 7월 18일 발족한 이후 연구회가 마련 중인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공개했다. 연구회가 마련한 개편안의 핵심은 ‘연장근로시간의 탄력적 운영’이라 할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을 ‘주당’ ‘12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주’가 아닌 ‘월·분기(3개월)·반기(6개월)·연간’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가 ‘월·분기·반기·연간’로 바뀌면 ‘1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연구회가 ‘균형잡힌’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연구회의 연구결과를 정부에 ‘권고’하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지난 7월 18일 연구회가 발족하기 이전 6월 16일에 윤석열 정부는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노동시간과 관련해 “계좌저축제 도입,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연구회가 내놓은 연구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 연구회가 정부에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연구회의 전문가들에게 윤정부의 정책을 ‘권고’해 연구케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연구회의 연구결과대로 근로시간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지면 노동시간이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해진다는 비판이 일자, 이에 대해 연구회는 “극단적 상황”이라며 “여러 건강보호조치를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연구회가 고민한 ‘건강보호조치’는 현재까지 ‘11시간 연속휴식권’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고작이다. 이런 대책도 정확히 윤석열 정부의 대책과 일치한다.
‘11시간 연속휴식권’과 ‘계좌저축제’
‘11시간 연속휴식권’은 노동일과 노동일 사이에 11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한다(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연구회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마련한 ‘11시간 연속휴식권’이라는 대책은 노동자들에게 “잠자고 밥먹고 다시 출근해 일하라”는 정도의 ‘권리?’일 뿐이다. 일하는 기계로 살 권리인 것이다.
노동일과 노동일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노동일이 몇 주씩 계속되면 반드시 건강을 해치게 된다. 사무직 노동자들도 그러하지만,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죽을 수도 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하면 임금으로 지급받지 않고 이를 모아뒀다(저축했다)가 휴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노동자들은 1시간의 연장근로에 1.5시간분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연구회는 연장근로에 대해 수당을 지급받는 대신 휴가로 사용하면 0.5시간분의 인센티브를 더해 2시간의 휴가를 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방안은 IT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부분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대단히 현실성 없는 대책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임금이 너무 적어서’ ‘여유인력이 부족해서’ 또는 ‘일이 너무 많아서’ 연월차 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어 돈으로 지급받는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을 저축했다가 휴가로 쓴다는 것은 가당찮은 말씀이다. 이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말씀이거나 현실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기만적인 사람들의 말씀이다.
더군다나 악날한 사장들이 단기계약직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빡세게 부려먹고 해고하면 계좌저축제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계좌저축제를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먹는 사장들도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52시간 노동제는 허울뿐이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힘없는 노동자들에게는 1년 내내 주69시간 노동제가 강요될 것이다.
포괄임금제, 공짜노동의 수단
지금도 포괄임금제로 노동자들에게 ‘공짜노동’을 시키고 주52시간 노동제도 지키지 않는 사장들이 허다하다. 노동부가 2020년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이상 사업장 2,522곳 가운데 29.7%가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기본급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연장근로 등에 대한 모든 수당을 합한 금액을 월급여액이나 일당금액으로 정해 지급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조건에서 당사자 동의를 전제로 노동자에 불이익하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만 적법하다.
그런데 이런 대법원 판결이 현실에서 사장들에게 강제성을 발휘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장들이 ‘하루 노동시간’ ‘주 근무일수’ ‘임금’ 등 노동조건을 정해놓고 노동자들을 고용하면 개별노동자는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사장이 정해놓은 노동조건이 맘에 들지 않는 노동자는 딴 데를 알아봐야 한다. 그런데 딴 데도 마찬가지다. 사장들은 이런 식으로 수당의 일부를 떼먹는다. 정말 악날한 사장들은 ‘퇴직금이나 연월차수당’까지도 포괄임금에 포함시켜 떼먹는다.
포괄임금제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류정호 의원과 더불어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포괄임금제 계약을 금지하고, 노동시간을 명확하게 기록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그것의 폐해가 심각해서 ‘드러내놓고 사장들의 정부’인 윤석열 정부의 청탁을 받은 연구회에서조차 포괄임금제를 제한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법적인 포괄임금제를 제한해야 한다는 현실의 압력을 받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더욱더 연장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기간을 확대’하려고 한다.
노동시간의 합의주체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연구회
포괄임금제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용단계에서 사장들이 정해놓은 고용조건을 개별노동자들이 거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연구회에서는 연장근로시간 관리기간 확대에 따른 근무형태나 계좌저축제 등에 대해 노동자와 합의한다는 전제를 단다. 그런데 연구회는 합의주체를 명확하게 하지는 않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과반의 신임을 얻은 대표와의 합의’인지, ‘노동조합 대표와의 합의’인지, ‘개별노동자와의 합의’인지에 대해 연구회는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다고만 한다.
현실에서 노동조합 대표와의 합의가 아닌 노동자들의 대표와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노동자 대표는 사장들이 힘으로 강제하는 것을 거부하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힘을 행사할 합법적 수단인 단체행동권(파업권)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개별노동자와의 합의라는 것은 허울뿐이다. ‘계약기간’ ‘주당 연장근로시간’ ‘계좌저축제’ 등을 사장들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해놓으면 생존을 위해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하는 개별노동자들은 사장이 정해놓은 고용조건이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러니 연구회가 아무리 ‘노사’가 자유롭게 연장근로시간에 대해 ‘합의’한다고 강조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사장들 ‘맘대로’가 되는 것이다.
12월 13일 연구회는 자신들의 최종적인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주52시간제 파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주52시간제를 도입한 민주당이 국회입법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편에 반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성일 뿐이다. 정치공작에 능한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약점을 회피하기 위해 (가령 대장동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이재명을 구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의 근기법 개악을 묵인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정부의 근기법 개악을 민주당에 의지해 국회에서 저지하려고 하는 시도는 대단히 위험하다. 민주당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거리투쟁과 파업투쟁만 가장 확실하고 믿을만한 대안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체제를 겨냥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가 대단히 위태롭게 자신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소수의 노동자들을 제외한 다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다수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사장들이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도입한 주52시간 노동제마저도 스스로 파괴해야 할 만큼 사장들은 이윤율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부와 사장들은 이윤율이 추락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자들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고용이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짜려고 한다. 포괄임금제와 같은 불법적 고용관행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법적 조치들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괄임금제와 같은 불법적 고용관행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축적해 체제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합법적 방식으로 관리하면서 이윤율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주52시간제를 허울로 만들고 연장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임금비용을 낮추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부터 사장들에게 강요된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그런 사장들의 바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심각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사장들의 이윤축적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윤율이 추락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심화될수록 사장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점점 더 격화될 것이다. 이것은 노동법 개악과 같은 정부와 사장들의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