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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안전은 노동자의 손으로

한 쿠팡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센터에서 현장노동자들에게 소지품을 검사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대단히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2022년에 개인 소지품 검사라니? 
지난 5월에는 문자를 보내더니 현장 입구 앞에 현장 반입금지 품목(칼, 부탄가스, 음식물, 핸드폰 등)을 적은 입간판을 세워뒀었다. 회사에서 물건을 훔쳐 가면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포스터를 현장 곳곳에 붙이기도 했고, 현장 안에 들고 들어갈 가방은 소지품 내용물이 보일 수 있게 투명한 가방만 허용한다는 문자가 오기도 했었다. 그 투명 파우치 안에 먹을거리를 넣고 다니는 것은 금지한다고도 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오후·심야 조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검열’을 더 엄격하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도난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현장노동자들은 회사가 도난사건을 구실삼아 자신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얼마 후 회사는 퇴근하는 출입구 앞에 검열하는 기계를 설치해서 보안직원들이 불시에 검사를 했다. 버튼을 눌러서 초록색 불이 켜지면 통과, 빨간색 불이 켜지면 다시 금속탐지기로 몸 전체를 검사하고 주머니 속의 물건을 다 꺼내게 해서 하나씩 확인하는 식이다. 매일 하지는 않지만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불시에 검사하는 것이다. 회사의 통제는 전체 현장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도둑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회사의 통제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문을 정해놓는다. 그래서 여러 공정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한 문으로 빠져 나가야 한다. 검사버튼을 눌러야 퇴근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퇴근하려는 노동자들이 일렬로 늘어서는데  이때 다음 조 출근하는 사람들과 맞물리면서 출입구 계단이 출퇴근 노동자들로 뒤엉키게 된다. 사고의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보안직원들은 한명만 배치되어 있고 버튼을 누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 주업무라서 사람들이 밀리고 당겨지면서 다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않는다. 버튼을 눌러서 ‘삐’하는 소리가 나면 금속탐지기를 쥐고 있는 사람이 다가와서 검사만 한다. 보안직원은 안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칼이나 부탄가스의 소지를 금지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런데 회사는 검열 때문 사람들이 뒤엉켜 사고의 위험이 커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율배반이다.  
여성의 경우, 검사기계에서 ‘삐’소리가 울리면 여성용품을 출퇴근하는 사람들 앞에서 꺼내보여야 하니 당연히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런 검열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헛소리다. 

회사는 냉동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드라이 아이스를 취급할때 조심하라고 한다. 산소포화도가 낮아져서 어리러우면 말하라고 하기도 하고, 제공받는 장갑이 적절하지 않으면 작업에 마땅한 장갑을 요구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회사는 차가운 드라이아이스를 취급하는 노동자들에게 방한장갑이 아니라 일반 면장갑을 제공한다. 산소포화도가 낮아져서 노동자가 어지럼증을 느껴도 잠깐 의무실에 누워있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일해야 한다. 실제 저산소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노동자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회사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신경을 쓴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돈 들어가는 것에는 매우 인색하게 굴면서 돈 안 드는 말로 노동자들을 위로?하면서 회사에서는 “작업 속도가 늦춰지거나 출고가 적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위하는 척하는 돈 안드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돈 들어가는 방한장갑이나 산소포화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비를 들이는 것에는 매우 인색하게 굴면서 말이다.

이윤을 위한 통제


회사에서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노동자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한다. 회사는 이윤을 위해 쉬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는 성실한? 노동자가 필요할 뿐이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회사 내의 질서를 잘 내재화시킨 뒤, 노동자들이 회사의 규칙에 따라 스스로 통제하고 질서유지를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질서와 규칙들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회사의 이윤논리에 맞춰져 있다. 오히려 그런 이윤논리에 따른 질서와 규칙들이 노동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노동자는 범죄자? 회사의 통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으로 없애야 


회사의 감시와 통제는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는 도난사건을 근거로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회사의 행위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단지 일반적인 가능성만을 가지고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자유와 권리가 철저하게 구속당하는 독재체제가 지배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사실 쿠팡에서는 회사가 노동자들에 대해 독재를 행사하고 있다. 
이란 상황에서 개별화된 노동자들은 회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집단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은 집단적으로 뭉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조직해야 한다. 
질서와 규칙이 회사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기본적 권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해야 한다. 그것을 회사에서 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노동자 스스로 할 수 있고 그래서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현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위협하는 회사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명령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머지 않은 장래에 쿠팡에서 그런 노동자들의 기상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