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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노동법 개악 저지하자!

 

윤석열 정부의 노동법 개악 청사진이 공개됐다. 지난 7월 18일 발족한 ‘미래노동시간연구회(이하 연구회)’가 12월 12일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편(개악)에 관한 자신들의 권고안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것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사장들이 요구했던 노동법 개편의 모든 것들을 종합한 것이었다.

연구회가 공개한 최종 권고안은 연장노동시간의 관리단위를 기존 1주일 단위에서 주·월·분기(3개월)·반기(6개월)·년 단위로 개편하고, 호봉(연공)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직무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권고안의 사회적 배경


세계경제가 고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장기적인 저성장(침체상태) 시대로 진입했다. 여기에 ‘디지털기술혁신’과 ‘탈탄소친환경경제로의 전환’ 등으로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다. 한편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한국도 그렇다). 이런 사회변화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낳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비정규·시간제 고용), 인터넷플랫폼을 활용한 중개서비스업, 재택근무, 비대면 상거래’ 등은 ‘노동시간, 노동장소, 임금형태’에서 다층적인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새로운 젊은 세대는 이런 노동시장에 적응해 가고 있고, 사회변화는 그들의 가치관, 향유문화,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이 MZ세대의 특성이라고 일컬어진다.)


제도는 사회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연구회가 내놓은 권고안은 이런 사회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결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변화에 제도가 조응하지 못함으로써 제도가 이윤추구의 장애물이 되는 현실을 변화시켜 이윤추구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받으려는 사장들의 현실인식을 권고안은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사장들의 이윤은 사회적 생산에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더 적게 하고 사장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더 많게 하는 방식으로만 확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연구회가 ‘노동자들의 자율적 선택권,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 등에 대해 아무리 좋은 말씀을 늘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 결국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장시간노동·수당삭감·노동강도강화·고용불안’을 의미한다.

사장들의 이런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의 사주를 받은 연구회의 권고안은 사장들의 요구안을 종합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결국 연구회의 권고안은 장기침체(수십 년째)로 접어든 세계경제와, 이와 뗄 수 없이 연결된 한국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모순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연장근로시간의 탄력적 운영 : 장시간 노동과 임금 삭감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년으로 확대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1주에 연장근로시간이 92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연구회는 권고안에서 노동일과 노동일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시간’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연구회의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가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되면 주당 연장근로시간은 69시간까지 가능해진다.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 확대와 더불어 연장근로시간을 저축해 휴식·휴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주장했다. 그리고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의 탄력적 운영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이 ‘노·사의 자율적 선택’, ‘노·사간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연구회는 “근로시간 연장이 곧 임금의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등으로 일자리를 독점(62.7%)하고 여성과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연구회는 “장시간 근로의 개선과 여성·청년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을 위해서는 근로시간 활용 방식을 다양화하고 선택의 폭을 확장해야 하며, 다양한 휴식과 장기 휴일 향유를 통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노동력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기간을 ‘월·분기·반기·년’으로 확대하자고 한다. 이렇게 하면 사장들과 노동자들이 공히 근로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선택해 활용할 수 있고, 한편으로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저축해 두었다가 휴식·휴가(근로시간 저축계좌제)로 쓰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고, 노동력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회의 지적대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들이 연장근로를 독점하는 것이 여성과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면 연장근로를 줄이고(연장근로가 줄어든 만큼 임금을 보전하고), 연장근로가 줄어든 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날 여지를 만들어 여성과 청년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일 것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여성과 청년의 일자리 해법으로 제기한다. 사장들이 연장근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 다시 말해 일이 많으면 몰아서 연장근로를 시키고, 일이 없으면 연장근로를 없애고 대신에 휴가를 갈 수 있게 하면, 도저히 일자리가 늘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일이 많을 때 기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게 된다면, 사장들은 연장근로시간 제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뽑을 수밖에 없었던 여유인력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여성과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제도를 개편해 사장들이 여유인력을 줄여 임금비용을 낮출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을 ‘월·분기·반기·년’으로 늘리는 대신에 전체 연장근로시간을 줄이자고 한다. 연장근로시간을 분기(3개월)단위로 관리할 경우 156시간⇒140시간, 반기(6개월)단위로 관리할 경우 312시간⇒250시간, 연(1년)단위로 관리할 경우 625시간⇒440시간으로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일이 많을 때는 장시간노동을 하게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이 줄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일이 적을 때, 저축해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휴가로 쓸 수 있어서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뭔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 연구회의 주장대로 그것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다수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조건에서 일한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로수당은 생계비를 보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 총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곧 임금 총액이 감소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을 저축해 두었다가 휴가를 간다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연구회는 일의 많고 적음에 따라 탄력적으로 연장근로시간을 운영할 수 있는 길을 터줌으로써 사장들이 임금비용을 낮출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할 뿐이다. 그리고 연구회는 이 모든 것을 노동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사장들이 그렇게 하려면 노동자대표와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힘 있는 자의 것이다. 힘이 없는 자들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또는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힘이 약하거나, 노동조합 관료들이 회사와 친분이 돈독하다면, 비록 법에서 노동자대표와의 합의를 명문화하더라도 노동자들은 그런 변화를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구회가 노동자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말할 때, 그 자유란 사장들의 힘의 우위를 전제(확신)하는 그래서 사장들의 자유가 일방통행하는 바로 그런 자유인 것이다.

근로일, 출·퇴근 시간 등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 확대 : 3개월 동안은 사장들 맘대로 


노동자가 근무일과 출·퇴근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한 제도가 선택적 근로시간제다. 주4일 근무제, 시차출근제가 이에 해당한다. 지금껏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1개월 단위로 정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구회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단위를 3개월로 확대하자고 한다.

때로 노동자들 중에 근무일과 출·퇴근 시간을 자신의 처지에 맞게 조정하고 싶어 하는 특수한 직무나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연구회가 특수한 직무나 직종에 종사하는 그들 소수 노동자들의 편의를 위해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사장들은 일이 많을 때 노동자들을 일찍 출근시키고 늦게 퇴근시키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필요로 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장들은 일단 기존의 노동자들을 최대한 부려먹을 방법을 찾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장들의 장시간노동 요구에 저항할 힘이 없다면, 사장들은 그들의 요구를 노동자들이 ‘선택’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늘어난 일감에 다 대응할 수 없다면 사장들은 단기간(연구회는 3개월을 상정한다) 부릴 수 있는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다. 이 경우 사장들은 고용단계에서 노동자들에게 사장들이 필요로 하는 근로시간제를 선택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물론 그 요구에 저항하는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사장들의 선택의 ‘자유’가 노동자들에게 자유스럽게 강요된다.


그런데 연구회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연장근로시간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일 간 11시간의 연속휴식 의무조항도 선택적 근로시간제에는 예외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장들은 최저임금만 보장하면 3개월 동안 어떤 저촉도 받지 않고 노동자들을 최장시간 동안 부려먹을 수 있는 것이다. 3개월 이후에도 일감이 계속된다면 사장들은 새로운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3개월 동안 또 그렇게 부려먹으면 된다. 여기서 노동자들의 선택의 ‘자유’는 없다.

심지어 연구회는 한 사업장 안에서 사장들이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경우 필요에 따라 직군별로 직군의 대표(부분근로자대표)와 합의할 수 있도록 했다. 사장들이 사업장 안의 전체 노동자들 중 약한 부위부터 각개 격파할 수 있는 길을 터주려고 하는 것이다.
호봉제 폐지, 성과·직무급제 도입

연구회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 노동시장의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임금의 공정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해마다 임금이 자동으로 인상되는 호봉제(연공임금제)를 없애고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이 적용되는 직무급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회는 호봉제 때문에 산업용 로봇이 확대되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로봇이 대신해 준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사회가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사장들은 생산에 로봇을 도입할 때, 반드시 노동자들의 수를 줄인다. 그리고 산업용 로봇 때문에 숙련노동자들은 더 단순하고 힘든 노동으로 밀려난다. 일자리가 감소하고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임금은 줄어든다. 이것이 기술의 진보가 사장들에게 봉사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사장들은 발전된 기술을 오직 이윤확대에 이용할 뿐, 노동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공장을 직접 운영한다면 기술적 진보를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이용할 것이다.

연구회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장들이 호봉제로 인한 고임금 때문에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회가 보기에 모든 악은 호봉제다. 
그러나 호봉제는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사장들은 고성장 시대에 숙련인력을 붙잡아 둘 목적으로 호봉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제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는 발전된 시대에 들어섰다. 사장들의 입장에서는 숙련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고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장들은 당장은 비싸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이득이 되는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면서 고임금의 숙련노동자들을 쫓아내기로 한 것이다. 최근 조선업종에서 대규모로 자동화가 도입되고 있다. 한편으로 하청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으로 내몰아 숙련노동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나게 만든다. 이렇게 이들이 떠난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메꾸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금껏 이런 방식으로 생산 방식을 혁신해 왔다.
그런데 연구회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복잡한 사회경제적 발전경로를 일축해서 호봉제의 고임금이 산업용 로봇의 도입을 촉진했다고 결론내리면서 마치 호봉제가 일자리를 감소시킨 원흉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을 사장들의 이윤을 위해 사용하면 그렇게 될 뿐이다. 어쨌든 연구회는 부지불식간에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의 진보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임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연구회가 호봉제를 일자리 감소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장들의 이윤확대에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회는 하청노동자들, 파견노동자들의 저임금의 원인이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대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제도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한 것은 사장들이다.
만약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는데 사장들이 전체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총액이 더 늘어난다면 사장들은 이것에 절대 반대할 것이다. 연구회가 호봉제 대신에 성과급제와 직무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거기에는 대전제가 있다. 연구회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의 대전제는 사장들이 전체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하향평준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장들이 전체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총액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연구회가 말하는 성과급제, 직무급제 도입의 대전제다. 달리 표현하면 노동자계급 전체의 임금을 하향평준화하는 제도적 장치로 성과급제와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전체를 개조하는 것이 연구회의 계획이다. 그래서 전체 노동자의 임금비용을 줄여 전체 사장들의 이윤을 확대하고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 연구회의 전략이다. 사장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추가과제 : 주휴수당도 연차수당도 안 돼?  


연구회가 공개한 추가 주요과제에서도 이런 전략적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된다. 몇 가지 주요항목만 짚어보자. 연구회는 고령인구의 증가, 연금수령연령과 퇴직연령 사이의 간극,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수급의 불안정 등을 이유로 정년연장을 주요과제의 하나로 제안한다. 그런데 연구회는 정년연장의 조건으로 임금과 직무의 조정을 든다. 그런데 다수의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직무의 조정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연구회가 하는 말을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임금을 낮추고 직무급제 도입을 조건으로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연구회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직무급제를 도입할 때, 전체노동자들의 대표가 아니라 직군의 대표와 합의해서 도입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약한 곳부터 차근차근 호봉제를 허물겠다는 뜻이다. 이미 현실에서는 공공부문, 사무직, 연구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부와 회사가 이런 일들에 착수하고 있다. 

연구회는 문제가 되고 있는 포괄임금제에 대해 오남용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상시적인 근로감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권고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구회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포괄임금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 마지못해 포괄임금 조항을 추가과제에 끼워 넣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임금체계 개편에서 공정한 임금, 임금격차 해소를 주장했던 연구회는 파견법을 개선하고, 파견과 도급을 구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는 불법파견 시비를 없애고 비정규직 제도를 완전히 합법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사회 구석구석까지 확대된 비정규직를 확실히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비정규직을 완전히 합법화하고 저임금 체계를 만들어서 전체 노동자가 공정하게 저임금인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말이다. 


이 밖에도 연구회는 통상임금·평균임금·주휴수당·최저임금 등의 제도 개선을 주문한다. 연차휴가제도의 개선도 주문한다.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법부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통상임금 소송은 사실 일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에 한정된 쟁점이었다. 그런데 주휴수당과 연차수당,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 연구회는 주휴수당이 임금산정을 어렵게 하고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계약’을 유인하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마디로 없애야 한다는 뜻이다. 연구회는 연차수당도 돈으로 지급받는 것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식으로 연구회는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더 깎아내리는 제도적 방안들을 과제로 제안한다.

싸울 수밖에 없다


연구회는 노동조건의 토대를 뒤흔드는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연구회는 세계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전반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가 그 변화에 조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장들이, 그리고 정부가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하락을 뜻한다. 사장들은 전반적으로 언제든 필요한 때에 저렴한 노동력을 구할 수 있고, 일이 있을 때 오랫동안 빡세게 부리고, 일이 없으면 그만큼 임금을 삭감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이 있을 때 쓰다가 일이 없어지면 버릴 수 있는 저렴한 노동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노동시장을 원하고 있다. 이것이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성과·직무급제을 도입하려는 저들의 목표다.
연구회는 이른 시일 내에 권고안이 입법화되어야 한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내년 상반기 내에 입법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사장들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하나는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민주당을 설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저항할 것이 분명한 노동자들을 설득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그들의 저항을 찍어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민주당이 자신의 약점을 회피하려고 국민의힘과 타협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부분적으로 개악을 완화하면서 타협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남은 문제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저항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에는 사장들의 요구가 노골적으로 담겨있다. 여기에는 호봉제 폐지와 같은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포함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연구회는 추가과제에서 사장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무력화할) ‘대체인력 사용’과 ‘사업장 점거 제한’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을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노동법 개악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 의지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정년연장과 직무급제를 맞바꾸자는 술수 따위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정부와 사장들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보장하겠다는 위장술을 쓴다면, 그것은 좀 더 장기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진지를 허물겠다는 의지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당장 눈앞의 이익에 홀려서 어리석게 당하기보다, 조직된 노동자의 힘을 최대한 끌어 모아서 맞서야 한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