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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의 공장 간 전환배치- 노동자는 물건이 아니다

12월 9일 한국지엠은 부평공장 정규직노동자 425명에게 창원공장 전환배치를 명령했다. 지난 8월부터 2차례에 걸쳐서 창원공장 전환배치자를 모집했지만 1차 138명에 이어 2차 89명으로 총 227명 가량만이 신청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창원공장으로 전환배치를 원치않는 노동자들에게 강제적인 인사명령을 통보했다. 본인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기준도 불분명한 인사발령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12일부터 선전전을 시작으로 투쟁하고 있다. 19일자로 창원공장 출근을 통보하고는 출근하지 않으면 무급에 징계라는 얘기에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창원으로 내려갔지만, 20여명은 부당한 인사발령을 거부하고 투쟁을 선택했다. 

노조간부는 발령에서 제외?


그런데 이번 강제발령 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창원 강제발령에서 대의원을 비롯한 간부들은 제외된 것이다. 간부들이 앞장서서 투쟁을 만들어내도 모자란 상황인데, 발령명단에서 제외되어 자연스레 투쟁전선에서 벗어난 것이다. 발령에 동의하지 않는 400여명의 조합원들은자신들의 의견을 받아 함께 싸울 노동조합 간부 없이 개별적으로 울분을 터트리며 자발적으로 투쟁을 계획해야 했다. 자본은 간부들이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전에 이를 차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얘기하는 것이 단체협약에 따라 간부들을 전환배치 하는 것은 본인동의없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한국지엠지부 단체협약에는 조합원들의 전환배치는 당사자와 협의가 필요하지만, 간부들의 전환배치는 본인과 합의하도록 되어있다. 즉 강제발령을 금지한다.) 단체협약에 간부들의 전환배치를 제한한 취지는 간부와 활동가들을 조합원들에게서 분리시켜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 조항이 노동자의 무기가 아니라 자본의 무기가 되어버린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2공장 폐쇄부터 부당한 인사발령까지 계속 문제를 제기해 왔던 부평의 한 간부 동지가 자신이 앞장서서 부당한 인사발령에 맞서 싸우겠다며 본인을 창원으로 발령낼 것을 요구했다. 이 동지는 이미 부평1공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창원으로 내려가기 어려운 조건의 조합원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당사자로서 투쟁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자 1명이라도 창원에 더 보내려고 아등바등대던 자본은 직접 창원으로 발령을 요구한 간부의 창원발령을 거부했다. 투쟁을 가로막으려는 자본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결국 창원발령을 요구하며 노무팀에서 농성투쟁하는 기막힌 일까지 벌어졌다. 회사의 부당한 발령에 맞서 노동조합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싸워도 모자랄 판에 조합원들의 버팀목이 되지 못하자 조합원들의 불만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 개별 활동가가 당사자로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왜 노동조합이 필요한지,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안타깝고 씁쓸한 상황이다. 

 

계속된 구조조정


자본의 이런 공격의 이면에는 이윤의 극대화가 놓여있다. 한국지엠은 18년 군산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연구소 법인분리, 물류센터 폐쇄를 거듭하며 공장을 축소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은 계속 해고하고, 정규직은 지역을 넘나들며 전환배치했다. 그리고 22년 부평2공장 폐쇄에 맞춰 또다시 비정규직 해고와 정규직 전환배치를 하고 있다. 이번 400여명에 대한 창원 강제발령도 부평2공장 폐쇄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 이미 부평2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상당수가 해고되었다. 
비정규직은 해고되지만 정규직이라 해고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이 더 큰 것은 당연하지만, 가족과 터전을 등지고 타지역으로 강제로 떠나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 역시 작지 않다. 
심각한 것은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생산계획에 노동자를 억지로 구겨넣는다. 노동자를 물건처럼 이리저리 옮겨보내고 잘라낸다. 자신들의 이윤에 조금이라도 손실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자본에게 노동자들의 삶은 전혀 고려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생산의 변동이 생길 때마다 피가 마른다. 

정권과 자본은 대공장 정규직들의 작은 요구에도 귀족노조의 배부른 소리라며 마녀사냥을 해댄다. 그리고 뒤에서 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야금야금 확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손발을 묶어놓고 자신들 마음대로 칼날을 휘두르려 한다. 지엠 역시 마찬가지다.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노동자 쥐어짜기와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비정규직 해고에 맞서, 정규직화 투쟁을 진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 강제발령에 저항하며 투쟁을 선택한 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 당장 힘이 부족해 막아내지 못하더라도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자본에 맞서는 구심점이 되어 더 큰 주먹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구조조정은 정규직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98년 정리해고법, 파견법이 만들어지고 비정규직이 확산되었을 당시 자본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용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노동자를 꼬드겼다. 협력업체, 도급업체라는 이름을 단 비정규직을 수용할 것을 종용했다. 일정기간 자본의 말은 통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본은 자신들의 이윤에 조금이라도 손실이 될 것 같으면 해고의 칼날을 정규직에게도 들이민다. 
한국지엠은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업장이다.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전 지엠 자본이 한국공장에서 물량을 줄이며 2교대를 1교대로 바꾸고 비정규직 해고를 눈감으면 정규직은 살 수 있을 것처럼 했다. 하지만, 결국 군산공장은 폐쇄되었고 정규직도 해고를 피해가지 못했다. 해고에 맞서 제대로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노사합의가 이뤄지자 자본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한편으로 비정규직의 숫자가 늘어나고, 정규직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면서 정규직노조의 힘은 약화되었다. 
한국지엠은 지난 8월부터 2차례에 걸쳐서 창원공장 전환배치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1차 138명에 이어 2차 89명으로 총 227명 가량만이 신청했을 뿐이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