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연금 개악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지난 1월 27일에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이하 연금추계위)에서 국민연금 재정추계(추정계산)의 잠정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에서 3월에 재정추계 최종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회 연금특위에서는 4월 말을 시한으로 연금 개혁안을 내놓는다. 복지부는 최종 재정추계를 기반으로 10월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하고 대통령 승인을 거쳐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연금추계위에서 이번에 발표한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때, 국민연금 재정은 2041년에 적자로 전환해 2055년이 되면 고갈된다. 2018년의 4차 재정추계에서는 수지적자 시점을 2042년, 재정고갈 시점을 2057년으로 추정했다. 5차 재정추계에서는 수지적자 시점이 1년, 고갈 시점은 2년 앞당겨졌다. 연금추계위는 국민연금 재정의 고갈 시점이 앞당겨진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의 영향이 가장 컸고, 경기침체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계획대로 가고 있다
연금추계위에서의 재정추계를 근거로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회(이하 민간자문위)는 27일 28일 양일간 연금개혁안 도출을 위한 토론을 벌였다. 민간자문위는 현재 9%인 연금보험료율을 내부 토론을 통해 단계적으로 15%까지 인상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작년 12월 8일 복지부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한 전문가 포럼’에서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인상하고 연금 수급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소위 전문가들이 한통속으로 짜여진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간자문위원들 사이에서 소득대체율을 현재와 같이 40%로 유지하자는 의견과 50%로 인상하자는 의견이 맞서면서 단일한 합의안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민간자문위에서 연금 수급 연령의 상향조정에 대해서는 아직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연금수급 연령의 상향 조정은 정년 연장과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년퇴직과 연금수급 시점 사이의 간극-‘연금보릿고개’을 계속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도 정년연장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정부와 국회, 그리고 개혁 때마다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모두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연금수령 연령을 늦추는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는’ 국민연금 제도개혁을 한통속이 되어 밀어가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갈 길을 보여주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정부의 연금법 개악에 맞서 1월 19일, 1월 31일 노동자민중이 파업과 거리시위에 나섰다. 19일에는 경찰 추산 112만 명 노동총연맹(CGT) 추산 200만 명, 31일에는 프랑스 내무부 추산 127만, 프랑스 노동총동맹 추산 280만의 시위에 참여했다. 노총들(8개의 노총연합)은 2월 7일 화요일 파업과 11일 토요일 시위를 예고했다.
마크롱 정부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고, 연금을 100% 수령할 수 있는 기여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연금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정년과 기여기간 연장에 맞서 대대적인 파업과 거리시위에 나섰다. 더 늙도록 일하고 더 늦게 연금을 받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보험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더 늦게 연금을 수령하라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전문가님?들의 제안이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는 확실히 달갑지 않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악을 막아낼 수 있을지 섣부르게 단정할 수 없지만, 프랑스 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갈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어쨌든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프랑스 노동자민중처럼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보험금을 더 늦게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연금 개혁은 필요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전문가님들의 주문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좇아 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뿐이다.
연금추계위의 진단대로 출산율(2023년 0.73명, 2024년 0.7명 전망)이 떨어지면서 보험료를 내는 생산노동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반면 수명연장으로 정년 이후 연금을 수령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당장에 어떤 식으로 바꿀 수는 없다. 연금 고갈은 필연인 셈이다.
경기침체도 연금재정의 고갈에 한몫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안정적으로 낼 수 없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의 확대, 연기금의 투자 손실(2022년 –51조) 확대 등도 연금재정의 고갈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되는 2055년이 되면 정부와 지배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2030 젊은 세대들은 나이든 세대들의 노후를 위해 보험료를 꼴아박고 연금은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정부와 지배자들이 연금법을 개악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을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로 나뉘어 대립시키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정부와 지배자들은 2030세대들의 불만을 나이든 세대들에게 향하게 해서 그들의 불만을 연금제도 개악을 위한 동력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만약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꾸려가야 하는 가난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으로 국민연금 제도가 지금과 같이 유지되고 5차 재정추계 결과대로 2055년에 국민연금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면 정말로 국민연금 제도는 쫑나는 걸까? 그래서 지금의 2030 젊은세대들은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은 체제의 안전판이다. 그것이 깨지는 것은 체제의 심각한 위협요소다. 지금의 2030 세대들이 30년~40년씩 보험료를 납부했는데, 퇴직한 다음에 국민연금의 재정이 바닥나서 굶어 죽게 생겼다면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맞겠는가? 아니다. 그들의 불만이 분명히 정부와 지배체제를 향할 것이다. 아직 퇴직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어차피 퇴직하면 연금을 못 받을 것인데. 그러므로 그렇게 되면 정부와 지배자들은 매년 근로세대의 보험료를 연금재정으로 해서 퇴직세대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꿔서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독일 등 유럽국가들 중 일부는 부과식 제도로 바뀌었다.
국민연금 재정확보는 부과식으로 해결될까?
그런데 여차저차해서 국민연금 제도를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꾸면 아무 문제 없이 국민연금의 재정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더 적은 수의 보험료납부자들이 더 많은 수의 연금수령자들을 부양해야 한다면 지배자들은 보험료납부자들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2055년 재정이 고갈된 후 연금수령자들이 지금과 같은 소득대체율 40%을 보장받게 하기 위해서 그때의 보험료납부자들이 내야 하는 보험료율은 26.1%다. 이 보험료율은 매년 늘어 2060년에는 29.8%, 2070년에는 33.4%, 2080년에는 34.9%에 이르게 된다.
지난 27일 28일 양일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국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는 내부토론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5%까지 높이는 합의에 이르렀다고 한다. 적립식을 유지하면서 국민연금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이 제시한 방식이 이것이다. 정부와 재정추계에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적립식이든 부과식이든 더 적은 수의 보험료납부자들이 더 많은 수의 연금수령자들을 부양하려면 보험료를 더 거둬들여야 하는 것이다. 적립식이든 부과식이든 근로세대가 퇴직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재정체계에서는 둘 모두 부과식인 셈이다.
누가 그 재정을 부담할 것인가?
퇴직 후 노인들의 생계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재정이 필요하다. 연금 재정이 고갈되어 연금제도가 부과식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노인들의 부양하기 위한 사회적 재정은 필요하다. “누가 그 ‘비용-재정’을 부담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여기서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서로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바로 지배자들이 노리는 것이다.
적립식을 부과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든, 적립식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이러저러한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보험료율을 15%까지 높이자는 것이든 어쨌든 연금재정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꼭 노동자민중이 부담해야 하는가?
지금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다. 기업의 경우 피고용인인 노동자 4.5%, 고용인인 사장이 4.5%을 부담한다.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장이 50:50으로 나누어 부담하는 규정이 계속된다는 전제 하에 보험료율이 15%로 인상되면 노동자가 7.5%, 사장이 7.5%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50:50의 규정은 절대도 변할 수 없는 규정인가?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이 30, 사장들이 70를 부담하게 할 수도 있다. 애초에 50:50의 규정도 필연적인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힘의 균형를 반영했던 것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장들에 맞서 싸워서 이긴다면, 노동자들의 노후 생계를 위해 필요한 국민연금 재정을 위해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험료율 6%p(15%-9%)를 사장들에게 부담하게 할 수 있다. 지금의 보험료율 9%를 그대로 두고 정부에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국민연금 재정에 보태는 방법도 있다.
이것이 부당한 일인가? 사장들-자본가들의 이윤은 생산자들의 노동으로부터 발생한다. 생산자들이 일하지 않으면 이윤도 없다. 그들이 갈취한 이윤의 일부를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해 쓰는 것이 부당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프랑스 노동자들처럼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사장들이 스스로 그것을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장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찍어누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맞서 싸워야만 그들이 갈취한 이윤의 일부를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해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