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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전세사기 뻔한 수법에 왜 걸려들게 되는가?

▲ 2022년 12월 27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작년 10월 일명 ‘빌라왕’ 김모씨가 갑자기 숨졌다. 김모씨는 1100여채의 주택을 사들여 전세사기를 벌인 인물이다. 집주인이 사망하면서, 전세금을 받아야하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제때 받지 못하게 되었고,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 지도 알수 없게 되었다. 빌라왕은 가진 재산 없이 주택명의만 소유한 ‘바지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전세금을 돌려받을 대상은 죽어없고, 부동산 하락으로 집은 깡통주택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7월에 숨진 정모씨(200채 소유), 12월에 숨진 송모씨(60여채 소유)도 빌라왕과 연관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들의 피해세입자만 1500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날리게 되었다. 
무려 1100채의 주택을 소유한 빌라왕 얘기에 사람들은 놀란다. 그런데 주택 3400여 채를 보유하며 조직적으로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일명 ‘빌라의 신’까지 등장했다. 2013년 이후부터 전세사기 누적 피해금액은 15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전세사기의 주범들 


전면에 등장한 빌라왕은 ‘바지 사장’이다. 주택소유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1채당 200여만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1100여채를 소유한 김모씨는 명의만 빌려준 대가로 수수료로 22억원 가량을 얻은 것이다. 
‘바지 사장’이 수십억원을 챙길 정도이니 그 뒤에 숨어있는 몸통은 더 많은 이득을 챙겼을 것이다. 빌라왕 뒤에는 건축주 – 컨설팅업체(브로커)가 있었다. 전세사기 수법은 알고나면 뻔한 방법이었다. 건축주가 빌라를 짓고 그걸 시세보다 비싸게 컨설팅업체에 전세모집 분양대행을 맡기면 분양대행사가 부동산중개인을 통해 세입자를 모집한다. 주택시세가 2억원 가량이라면 2억 2천만원에 전세를 놓는 것이다. 건축주는 높은 가격으로 세입자와 계약을 마치면 주택의 명의는 바로 빌라왕(명의대여자)에게 넘기며 법적 책임을 벗어난다. 건축주는 2억원을 챙기고, 브로커와 빌라왕이 2천만원 가량의 이득을 나누는 것이다. 건축주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자신은 합법적으로 빌라왕에게 집을 팔았다며 빠져나가고, 브로커는 합법적으로 중개해준 것 밖에 없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결국 명의대여자만 법적 책임자로 남게 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신용불량자다. 이렇게 전세사기의 판을 만들고 세입자들의 피같은 재산으로 잔치가 벌어졌다.

 

공범들 


주택 매매가격보다 높은 전세가에 누가 전세를 들어가겠냐고 생각하게 쉽지만 그 뻔한 수법에 당한 이들이 수만명이다. 뻔한 수법에 걸려들었다는 것은 그걸 가능하게 만든 공범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세사기꾼들은 신축빌라의 경우 시세가 확정되어 있지 않아 주택시세를 알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했다. 신축이라 공시가격이 안 나오지만,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때 감정평가사의 평가금액이 들어가 있다. 전세사기꾼들은 주택가격을 책정하는 감정평가사와 짜서 시세를 높게 책정했다. 그리고 이걸보고 세입자들은 안심하게 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보험도 전세사기의 지랫대 역할을 했다. 전세보증보험은 집주인으로부터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먼저 지급하고 이후 집주인으로부터 반환받는 제도다. 그런데 전세보증보험이 오히려 전세사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매매가격의 100%까지 전세가격을 전세보증보험이 책임져주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세입자를 위한 제도라고 얘기하지만, 전세금을 올려 부동산 매매가격을 상승시키는 투기적 역할을 한 제도이기도 하다. 전세보증보험이 책임지니 걱정말라는 브로커에 말에 세입자들은 쉽게 깡통전세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금 채무불이행 변제한 금액만 1조6445억원에 달하고, 그 중 8909억원이 미회수 되었다. 9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공중에 떴고, 전세사기꾼들의 호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전부터 전세사기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았다. 올해 1월에 빌라왕 배후로 부동산업자가 구속되었지만, 피해자들은 이미 3년 전에 문제제기하고 고소까지 한 상황이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악성 채무불이행 상황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500채가량의 반환보증을 신청하는데 모를 수가 있는가? 빌라왕과 같은 명의대여자는 종합부동산세 미납금액만 수십억에 달했다. 경고음은 돌고 있었으나 제대로 책임지는 이들은 없었고,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었다. 

부동산 투기 자체를 막아야 


전세사기가 판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부동산 가격의 등락이다. 2020년부터 무제한적으로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이 주식,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부동산에는 거품이 넘쳐 흘렀고 부동산은 급등했다. 거품으로 채워진 부동산 가격이 전세금까지 밀어올렸다. 무자본으로 갭투기하는 이들이 급증했고, 빌라왕, 건축왕과 같은 차액을 노린 이들까지 늘어났다. 2020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였기에 ‘깡통주택’의 위험을 크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부동산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폭등의 시기가 있으면 폭락 상황도 발생한다. 결국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과 맞물리며 자산시장 폭락세를 겪고 있고, 매매 가격 이상으로 형성된 전세가 그 첫 번째 희생양이 되고 있다. 몇몇 피해자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부채비율이 80%에 가까운 소위 깡통주택이 서울시에만 50%가 넘는다. 전세사기는 부동산 가격 등락에 영향을 미쳐 돈을 벌려는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금은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사기가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빌라만 그렇겠는가? 부동산 규제로 오피스텔 건축과 분양이 많아진 것을 고려하면 올해는 오피스텔왕이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부동산을 통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빌라, 오피스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에는 빌라왕이라는 명의대여자가 한자리를 차지할 뿐이지, 주택을 건설하여 시세차익을 얻는다는 점에선 기존 부동산 시장과 다를 바 없다. 실제 시세보다 더 비싸게 분양하고 전세를 놓고, 거기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아파트, 일반 주택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추가 이득을 건설사, 분양대행사, 공인중개사가 나눠가진다. 전세사기에 등장한 건축가, 분양대행브로커, 공인중개사, 명의대여자가 다른 게 무엇인가? 건설자본은 큰 도둑이고, 빌라시장은 작은 도둑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자본주의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든다. 일부 자본가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그 투기적 공간으로 들어오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주식, 코인, 부동산 광풍은 2년을 넘어서지 못했고,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산 폭락 속에서 빚더미에 내려앉았다. 자산 광풍의 시기 폭락을 우려하며 투기에 흔들리지 말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뒤로 밀렸다. 뻔히 보이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휩쓸려갔다. 주변이 갑자기 부유해져서 가만 있으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했다. 단지 평균적이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욕심을 자본주의 투기꾼들이 이용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 삶의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불안정하게 만들어 틈새를 만들고 그걸 이용해 돈을 번다. 주택을 주거공간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사기꾼들은 깡통전세와 같은 또다른 틈새를 찾아내고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흔들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주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