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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인력난에 정부와 자본가들이 내놓은 해법

▲ 3월 2일, 정부가 추진한 조선5사 원하청자본가들의 상행협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금속노조와 조선하청3지회

윤석열 정부는 심각한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며 지속적으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작년 10월 ‘조선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내놓더니 11월에는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발족했다. 그리고 올해 2월 27일(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상생협의체는 조선업 원하청 자본가들만 참여했고 협약 체결식도 이들만의 잔치였다. 「상생협약」주요내용은 “적정 기성금 지급, 숙련 중심 임금체계 개편, 에스크로 결제 제도 활용, 재하도급(물량팀) 사용 최소화, 체납보험료 납부 지원 등”이다. 
3월 8일(수)에는 비상경제장관회의가 열렸는데 ‘일자리 사업 신속집행’, ‘빈일자리 대책’, ‘조선업 상생 패키지 지원사업’이 발표됐다. 이 모든 대책들은 ‘외국인 인력 신속 도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동시간 개편’ 등과 함께 조선업뿐만 아니라 물류업, 농업 등의 저임금 일자리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정책들이 연일 발표되고 집행되고 있다. 

▲ 2월 27일, 발표된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 주요내용

원인은 알고 있으나 대책은 없다


조선업 인력난은 이미 예견되었다. 극심한 조선업 불황을 거치면서 10만 명에 달하는 인력 감축을 했던 조선업에서는 수주량이 증가하면서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이 인력문제였다. 조선업 자본가들은 정부에 끊임없이 지원대책을 호소했고 문재인 정부나 뒤이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수조원 단위의 지원금을 풀어가며 자본가들의 청원해결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인력난은 여전하다. 신규 입직자들에게 온갖 지원금 미끼를 던지고 일자리 알선을 해주어도 내국인은 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내국인을 대신해 이주노동자 고용 절차를 간소화하고 동남아, 동유럽 국가에서까지 인력을 모집해 조선업 현장에 투입하고 있지만 인력난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자본가들이 꼽는 조선업 인력난의 원인은 고용불안정이 빠졌지만 비교적 정확하다. “저임금·고위험 등으로 청년층 등의 신규인력 유입 매우 저조, 기존 숙련인력의 이·전직도 심각”(비상경제 장관회의, 「조선업 상생 패키 지원사업 추진계획」, 2023.03.08.)하다는 분석은 꾸준히 나왔다. 그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원하청 격차 해소’가 대책으로 나왔다. 
정부가 내세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교묘한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다. 그동안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확대해온 정부와 자본가들이 그 책임을 소수의 안정된 일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포석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즉, 정규직과 하청간의 고용, 임금, 복지의 차별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는 겉보기에는 올바른 해결책처럼 보이나 실제 노리는 바는 ‘하향평준화’다. 

실효성 없는 임금인상 방법


‘조선업 상생협의체’에서 내놓은 하청노동자 임금인상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원청에서 하청업체에 ‘적정 기성금’을 지급하고 이에 상응해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한 숙련 중심의 임금체계를 만들어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하청업체들의 생산성 향상이 전제 조건이다. 조선업내 하청업체들은 사실상 인력공급업체다. 설비도 기술도 없는 단지 인력만 투입시키는 인력사무소나 다름없다. 이런 하청업체들에서의 ‘생산성 향상’은 노동자를 더 쥐어짜는 방법밖에 없다. 즉, 50명이 필요한 블록을 40명으로 완성하던가, 5일 걸리는 일을 4일 안에 해내면 원청이 원하는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결국,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은 노동강도를 높여야만 가능하다는 소리다. 
숙련임금체계를 만들어 공정임금을 실현하겠다는 계획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이미 원청에 의해 정해진 직무별 인건비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직무별 기성금이 정해져 있고 하청업체장들은 서로 협의해 기성금 중 얼마를 인거비로 책정할 것인지 결정한다. 물론, 어떤 기준으로 책정되는지는 그들 말고는 알지 못한다. 또한 이미 십수년의 근속과 높은 숙련도를 갖추고 있는 기존 하청노동자들에게 숙련임금체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결국 임금 상한선을 만들어 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 적용하겠다는 말과 같다. 

자금여력 생길 때까지 보조해주겠다!

▲ 비상경제 장관회의, 「조선업 상생 패키 지원사업 추진계획」, 2023.03.08.


정부의 이러한 계획은 장장 5년을 기한으로 잡고 있다. 조선업 원청은 높은 선가를 받는 선박이 매출로 잡혀 충분한 자금여력이 생길 때까지는 인건비를 충분히 인상할 생각이 없다. 이러다보니 정부에서는 원하청자본가들의 자율노력을 지원하겠다는 핑계로 각종 지원책을 내놨는데 이것이 3월 8일 비상경제 장관회의에서 발표된 「조선업 상생 패키 지원사업 추진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조선업의 ‘Heavy Tail’ 계약 방식 때문에 향후 2~3년간 여전히 어렵다며 이를 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당장 조선업 원하청 자본가들이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를 정부에서 지원해주겠다는 건데 대표적으로 ‘조선업 희망공제 사업’ 확대가 있다. 신규입직자는 작년 시범실시한 사업에서 연령제한(45세)을 폐지하고 대상인원(2천명)과 지역을 확대했다. 기존 재직자에 대해서도 원청의 비용분담을 조건으로 2024년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연 450만원의 소득 상승 효과가 있다며 하청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 450만원 소득 상승 효과는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 신규채용인원 2천명만 지원하고, 기존 중대형 조선소 하청노동자 5만여 명(2022년 10월 기준)은 내년에나 원청이 원해야 몇 명일지 모르는 인원이 지원된다. 결국, 금액도 너무 적고 대상인원도 소수이기 때문에 유인책이 되지도 못한다. 

안전 규제 완화와 조선업 고용허가제 인력 확대


인력난 해소를 위한 각종 지원대책에는 심각한 규제완화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안전규제의 완화다. 정부는 ‘안전한 작업장 구축 지원’을 하겠다면서 스마트안전장비 보급, 유해위험요인 시설개선, 위험기계 교체나 위험공정 개선에 자금을 지원한다. 그런데 원하청이 「안전보건 상생협력사업」을 추진하면 ‘산업안전감독 대상’에서 제외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업 상생협약 체결 원청에게는 협약 이행 평가에서 ‘④도급사업시 안전보건조치, ⑤도급 체계’ 두 개 항목을 면제해준다. 즉, 하청업체에 대한 안전보건조치와 다단계 하도급 문제는 평가조차 하지 않고 지원금만 주겠다는 뜻이다. 
최저임금 이주노동자의 투입규모도 확대해주기로 했다. 숙련인력이라는 E-7 비자 이주노동자를 확대하는 것에 더하여 최저임금만 줘도 되는 고용허가제 E-9비자 이주노동자를 조선업에 대거 배정하기로 했다. 조선업에 익숙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주노동자가 대거 투입되는데도 산업안전감독도 면제해주고 하청업체 대한 안전보건조치를 점검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조선업 현장의 중대재해 위험도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란 뜻이다. 

4대보험 납부유예 연장, 체납사업장 지원 제한 해제


지난 구조조정 시기뿐만 아니라 지금도 진행형인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가장 큰 피해는 4대보험체납이다. 박근혜 정부가 계획하고 문재인 정부가 실행한 4대보험 납부유예 조치는 하청업체장들의 4대보험 횡령을 조장·묵인·방치했다. 월급에서 원천징수된 4대보험료가 공단에는 납되지 않으면서 수만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체납자 신세가 되었고 지금까지 구제대책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또다시 고용보험·산재보험 납부유예조치를 6개월 더 연장해줬고, 고용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고용보험을 체납해도 고용보험사업 지원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전혀 하지 않고 횡령범들을 또다시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저임금 노동력 유지/확보가 핵심인 대책들


이 모든 조치들은 조선업 원하청 자본가들의 청원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청에는 대규모 수익이 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하청은 온갖 불법과 횡령을 저질렀음에도 호흡기를 달아주려 한다. 거창하게 이중구조 개선이니 상생협력이니 말하지만 결국은 조선업의 주요 경쟁력인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정부와 조선업 자본가들은 하청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향상시키겠다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적정수준’일뿐이다. 정규직의 70~90%까지 임금수준을 높이겠다는 말도 있는데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는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제를 활용하면 노동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제도 개편 없이도 주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결국은 일감이 증가하면서 단위시간 당 임금인상이 아니라 과거처럼 장시간 노동을 통한 임금 총액 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