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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1126.7조, ‘건전재정’ 한다는 윤석열정부의 참혹한 성적표

텅 빈 나라 곳간


총선 다음 날인 지난 11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중앙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차감한 값)는 87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날 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역대 최고 수준의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고, 재정 총량을 엄격하게 관리해 왔습니다."라며 역대급으로 돈을 아꼈다며 자화자찬했다. 미래세대에 빚과 부담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의 재정상태를 알려주는 수치를 확인해보면 정부의 자화자찬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더한 국가채무는 전년 결산보다 59조4000억원 증가한 1126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년(49.4%) 전보다 1.0%p 높아진 50.4%로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국가채무에 연금충당부채(공무원과 군인 등에게 국가가 지급해야 할 연금액 추정 액수) 등을 합친 국가부채는 2439조3000억 원으로 이 역시 사상 최대치다. 관리재정수지는 2022년보다 30조원이 줄긴 했지만, 예산상 적자 계획(58조2천억원)보다 28조8천억원 늘었다.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 발행 잔액도 전년대비 60조 원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실제 적자는 더 심각한데 통계 착시로 꼼수를 부려 적자규모를 축소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적자규모를 줄이기 위해 국가 재정 통계에 잡히지 않는 외국환평형기금(외환시장 개입을 위해 조성한 기금) 20조원을 끌어다 쓰고, 법적 근거 없이 지방정부에 지급해야 할 교부세·교부금 18조6000억원을 삭감한 것을 포함하면 실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전년보다 더 큰 125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적자규모를 줄이기 위해 분식회계를 저지른 셈이다. 

각자도생하라는 윤석열정부


보고서의 모든 수치가 국가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정기조를 바꾸기는커녕 윤석열정부는 정부지출을 줄이는 긴축재정을 통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역대급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무지함 또는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역대급 재정적자의 원인에 대해 “예상치 못한 세수 감소”라며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 원인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세수(세금으로 얻는 정부의 수입)부족을 꼽는다. 정부는 2023년 세입 예산을 400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는데 실제 국세수입은 344조1000억원에 그쳐 56조4000억원 상당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법인세 감소와 내수 부진으로 인한 부가가치세·소득세 감소는 역대급 세수 펑크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정부가 뚝심 있게 밀어붙인 법인세, 종부세 인하 등의 부자감세도 한 몫 거들었다. 불 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쳤다. 코로나와 기후위기,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노동자 명목 소득은 2.5% 올랐지만 물가는 3.6% 올라, 실질 임금은 1.1% 줄었다. 고금리로 인한 이자부담이 더해져 소비는 더 줄어든다. 경제는 성장하지 않고, 소득은 줄어드는데 물가는 올라 사람들이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계빚은 1886조원을 돌파해 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난해진 사람들은 지갑을 닫아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는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민간 소비가 위축되면 정부라도 지갑을 열어 소비를 늘려 경기 위축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역할을 해야 할 정부마저 건전 재정을 한답시고 지출을 줄이고 있어 경기 위축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정부 소비 증가율은 2022년 4.0%에서 지난해 1.3%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정부는 해결방안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물가를 잡는 것도, 소득을 늘리는 것도 내팽개치고 기업과 부자 감세에만 목을 매고 있다. 코로나, 이태원참사, 폭우피해, 전세사기 등 사회적 위기에서 보여준 윤석열정부의 국정철학인 ‘각자도생’이 경제 영역에서도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지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내수를 진작해 소비 활성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회복지원금을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포퓰리즘 정책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무분별한 현금 지원이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며, 국가채무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에서 나랏빚 13조가 더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이에 맞서 기본소득당 용혜인의원은 물가 인상률이 임금 인상률을 앞지르는 소득 감소가 2년 연속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은 소박한 수준에서라도 실질임금을 보충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민생에 득이 된다며 민생회복지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는 측의 주장은 제대로 된 원인분석도, 그것을 해결할 대책도 없는 무능한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 비해 진일보한 주장이라는 점에서는 귀 기울일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한다 하더라도 소박한 수준일 뿐 민생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을 대책이다. 또한 민생회복지원금을 마련할 재원은 세금일 텐데 결국 이 부담도 노동자, 서민에게 떠넘긴다는 점에서도 이 정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코로나 시기 경기 위축을 타개하겠다며 재난지원금을 뿌려 소비를 진작한 바 있다. 이렇게 시중에 뿌려진 현금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린 원인이자, 지금의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또한 자본의 탐욕으로 발생한 기후위기는 농수산물 가격 폭등을 일으켰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또한 원자재 공급망을 교란해 물가를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소박한 수준’의 민생회복지원금은 경제위기라는 폭탄이 터지는 것을 약간 뒤로 미룰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