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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안면인식기 설치에 현대중공업 원·하청노조 단호한 대응

현대중공업 안에서는 안면인식기 설치 문제로 노사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4월 5일부터 현대중공업지부는 하청업체 사무실에 설치되고 있는 안면인식기를 강제로 철거하기 시작했다. 하청업체들의 협의체인 사내협력사협의회는 안면인식기를 철거한 현중지부 간부들을 경찰에 고소하고 있고,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인사조치 하겠다는 협박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지부는 안면인식기 철거를 계속하고 있다. 

하청노동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는 사측


안면인식기를 둘러싼 갈등은 하청노동자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활용하려는 현대중공업 때문에 시작됐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2022년 8월 여름휴가기간에 하청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동에만 CCTV 200여대를 무단으로 설치했다. 당시 정보주체의 사전동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청노조가 강력히 항의했었고, 터치원이라는 MDM(모바일 디바이스 관리) 앱 설치를 또다시 추진하면서 광범한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동의서를 하청노동자들에게 강제로 받았다. 이 터치원이라는 앱은 휴대폰에 설치되어 일일작업지시서는 물론 안전점검 등 노동자 개인의 노동과정을 현대중공업 원청에 설치되어 있는 중앙서버에 전송하게 되어 있다. 심지어 사내 이동동선까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2024년에 또다시 광범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제3자 제공 동의서'를 하청노동자들한테 받기 시작했다. 2022년에 받았던 동의서보다도 더 광범하고 더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포함되었고,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제3자 또한 더 확대됐다. 그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안면 등 생체인식정보’였는데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재이력정보, 병력, 건강진결과 등 민감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 정보를 제공받아 활용할 수 있는 ‘제3자’에는 HD현대중공업, HD현대그룹사, 사내협력사협의회, 사내협력사 공조회, 사내협력사협동조합, 공동근로복지기금, HD현대중공업 외국인지원센터가 포함되었다. 사업장 내·외의 그룹사 전체와 사측과 관련된 기관들이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하청노동자의 모든 개인정보를 공유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은 수집한 개인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개인정보를 광범하게 공유하는 자들은 모두 원하청 사측과 관련기관이다. 지금도 공공연히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원하청 사측을 어떻게 믿겠나. 

▲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동의서' 중 일부

 

‘안전출입시스템’이라 우기는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지부가 안면인식기를 강제로 철거하자 현대중공업은 하청노동자의 출입관리가 어려워 도입한 것으로 안전관리에 필요한 출입시스템이라고 우기고 있다. 하청업체들이 작년 4월 하청노동자들의 출입관리와 안전관리 강화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해와 원청인 자신들은 이를 수용해 안전출입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면인식기를 설치한 이유는 현대중공업이 스스로도 인정하듯 ‘허위 기성’을 막기 위해서다.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들이 퇴사자들의 출입증을 만료처리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으면서 재직자인 것처럼 속이거나, 노동자의 근무기록을 조작해 인건비를 부풀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적반하장이다. 하청업체들이 퇴사자들의 출입증을 만료처리하지 않고 활용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일명 '가라 출입증'(만료시키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퇴사자의 출입증)은 하청업체들이 현장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노동자를 만들어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긴급하게 투입하는 물량팀에게 빌려주기 위해 몇개씩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출입증은 사원증이 아니라 원청에서 발급해주는 사내 출입허가증이기 때문에 만료처리도 원청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동안 하청노동자들이 ‘나는 퇴사했으니 출입증을 만료처리 해달라’고 원청에 직접 요청해도 '업체의 요청이 있어야 된다'며 사실상 다른 하청업체로의 이직을 가로막았었다. 이런 원청이 허위 기성을 막겠다며 안면인식기를 도입하겠다니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게다가 에스크로제도 운영과 조선업 재직자 희망공제 사업을 위해서 필요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주도로 작년에 만들어진 ‘조선업 상생협의체’의 중점 계획 중 하나가 에스크로제도였다.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 심각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도 꾸준히 대책을 요구해왔었고 그중 하나가 에스크로제도였다. 그러나 에스크로제도나 ‘조선업 재직자 희망공제’는 안면인식시스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일일작업지시를 받고 작업에 투입되는 하청노동자들의 출퇴근여부는 얼마든지 확인가능하고 근무일수 또한 확인가능하다. 
더 어이없는 것은 안전관리 때문이라는 핑계다.  조선소에서는 실제 투입되는 작업자와 일일작업지시서상 작업자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다. 이는 하청업체들이 물량팀이 급하게 필요할 경우 평소 보관하고 있던 '가라 출입증'을 주고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그제야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를 당한 재해자가 기록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신원파악을 할 수 없는 등 말이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안면인식기는 하청업체 사무실 입구에 설치되고 있으며 가라 출입증을 사용하는 하청노동자들(물량팀이나 사외업체, 아웃소싱업체 노동자들)은 이번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대상에서도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출입과 안전관리가 안 되는 이유는 결국 다단계하청구조


안면인식시스템을 설치해 출입관리와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명분은 현실성이 없다. 조선소에서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대부분 하청노동자가 피해자였고, 그중에서도 물량팀이나 외주업체 하청노동자가 다수였다.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물량을 쳐내야 계약된 금액을 받을 수 있는 물량팀이나 외주업체 하청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원하청 사측에 안전조치를 요구해도 들어주지도 않을 뿐더러 안전조치에 소요되는 시간은 공사대금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안전을 무시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작업을 완료하는 것만이 물량팀이나 외주업체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다단계하청을 활용하는 주체는 원청이다.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되고 있는 다단계하청은 최근 조선업 호황국면에서 더 증가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안전관리와 인원관리가 되지 않는 다단계하청을 확대하면서 안면인식시스템으로 안전을 확보하겠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단호한 대응은 현명한 선택


현대중공업지부는 하청업체 대표와 관리자들의 거센 항의에도 안면인식기를 계속 철거하고 있다. 정규직노조가 하청노동자 문제에 이렇게 직접 행동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직영으로 확대할 계획’이 없다면서 정규직노조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정규직노조 간부들이 고소와 인사조치 협박을 받으면서도 안면인식기 철거를 강행하고 있으니 정규직노조에 반감을 가진 하청노동자들도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강력한 대응이 없다면 안면인식기는 하청업체 사무실마다 설치될 것이고 출입문과 현장까지 확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정규직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다수의 하청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시스템이 안착되면 다음수순은 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자본가들과 기업의 약속은 믿을 수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6월 당시 현대중공업 사장이었던 권오갑(현재는 HD현대 회장)의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중단한다”는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후 수년간 희망퇴직과 4사분할, 분사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현대중공업을 휩쓸었었다. 
노사관계는 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현대중공업 원하청노조가 안면인식기가 설치되자마자 단호한 대응을 시작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협상과 타협이 불가피한 노동조합이지만 사측과의 관계에서는 갈라치기에 순응해서는 안 되며 단결의 정신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해질 수 있고 노사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