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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생존조건인 최저임금조차 깎으려 발악하는 지배계급

2025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5월 21일에 가동을 시작했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25년도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다. 문재인 뿐 아니라 안철수,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 등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그리고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7년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는 상여금이나 식대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명목상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은 것처럼 보였지만, 전체적인 임금인상 폭을 낮췄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들어서는 최저임금을 2022년 5%, 2023년 2.5%을 인상했다. 명목상 2022년 물가인상률은 3.7%, 2023년 물가인상률은 3.6%다. 2022~2023년 기간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은 명목상의 물가인상률과 겨우 수지를 맞춤 셈이다. 
3월 31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생활필수품가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가격이 오른 167개 상품의 평균 상승률은 9%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보고서조차도 실제 현실의 생활필수품 물가를 다 반영하지 못했다. 가난한 노동자·민중이 체감하는 물가는 훨씬 높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크게 삭감됐다. 그런데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사용자(자본가)들은 중소상공인들을 앞세워 최저임금의 ‘동결 및 인하’, 그리고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2025년 최저임금 협상에서 노동계는 물가인상분을 감안해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플렛폼노동자와 배달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법을 확대적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중소상공인들이 어렵다?  


경총으로 대표되는 사용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상공업자들(자영업자 포함)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최저임금 1만원 고지를 넘기지 못하게 하려 애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1~2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법인은 28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205건에 비해 40.5% 증가했다. 파산신청을 한 법인들은 거의 다 중소기업이다. 법인들의 파산건수는 2013년부터 꾸준히 늘어왔는데 코로나19 펜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이후 더 많아졌다. 2023년에는 파산신청건 수가 1,657건이었다. 이런 추이라면 2024년에도 작년보다 더 많거나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좌: 최저임금차등적용을 요구하는 소상공인들(2022.06.08.) 우: 최저임금차등적용 금지법을 요구하는 노동계(2024.06.03.)

만악(萬惡)의 근원? 


그런데, 중소기업들의 파산이 과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결과인가? 경총은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대가들이다. 경총에 따르면 ‘일자리의 감소도, 실업률의 증가도, 최저임금 미만율 증가도, 중소기업들의 대출증가도, 그들의 파산도, 죄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은 탓이다. 경총에게는 최저임금 인상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그러나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금리와 물가가 치솟고, 자본주의 경제가 계속해서 침체되어 소비가 위축된 탓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기업들 사이의 경쟁이 훨씬 격화되고 있는 탓이다. 
더군다나 중소자본들은 많은 경우 대기업자본과 하청사슬로 연결되어 있는데, 대자본가들은 하청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중소자본가들의 이윤의 일부를 빼앗아 간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윤율이 극도로 떨어져 운신의 폭이 좁아진 중소상공인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경쟁에서 밀려난 업체들의 파산이 늘고 있는 것이다. 
중소상공인들은 망하지 않기 위해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려다 썼다. 이들 기업들의 부채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대폭 늘어났다. ‘2019년말~2023년 9월말’ 사이에 중소법인 대출액은 318조8천억원이나 증가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기간 동안 금리가 대폭 인상되었다. 그런데 중소법인들의 대출 증가분 중 절반에 가까운 153조원(47.8%)은 대출금리가 연 10%를 웃도는 제2, 제3 금융권 대출이다. 상호금융이나 저축은행 등 ‘제2·제3’ 금융권 대출은 정부의 이자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그런데 중소자본들이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 반대편에선 은행들의 이자수익이 폭증했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순이익이 3년 연속(‘21~23’년) 21조원을 넘겼다. 

자본주의가 이렇게 돌아간다. 대자본들은 하청사슬로 연결된 중소하청업체들의 이윤를 강탈해 자본주의 경제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들의 이윤을 증대시키거나 사수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자의 형태로 중소자본들의 이윤을 강탈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대자본가들은 중소상공인들이 극도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각종의 자료들을 들이밀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정점에서 이윤을 빨아들이는 그들의 지배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장 가난한 이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조차도 도둑질해 갈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대자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최대한 억누르고, 그것이 안 되면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해서 중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완화해 줌으로써, 중소자본들의 파산을 지연시키고 경제의 최정점에서 빨대를 꼽고 이윤을 빨아들이는 그들의 ‘지배시스템(지배구조)’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경총 등 사용자들이 최저임금위원회의 협상대에 올라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기 위해 왜곡되고 과장되고 거짓된 근거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편의점 사장들의 파산을 염려하는 척하면서 파산에 직면한 가난한 소상공인들을 분기시켜 최저임금 인상의 발목을 붙들어 매려 한다. 
그러나 경총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대기업 사장들(대자본가들)은 편의점주(소상공인들)의 파산을 염려할 만큼 그렇게 너그럽고 동정심이 많은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상공인들의 부담을 가중시켜, 자신들의 이윤을 지탱해주는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고 여론조사를 조작하고, 각종 조사 자료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어느정도 얘기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드리워진 자본주의의 모순을 들여다보기 전에 그들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하는 술수들을 몇가지 들여다보자.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 방아쇠 당긴 한국은행 


올해 최저임금 낮추기의 선봉은 한국은행이었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고용분석팀은 지난 3월 5일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돌봄서비스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이용자 비용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돌봄서비스업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해야 하며,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주들의 원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근거를 제공한 것이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아주 교묘하다. 일단 저항할 힘이 거의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을 도입하자고 한 점에서 그렇다. 돌봄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하는 업체들뿐 아니라, 개인들, 노동자들까지도 자신들의 비용부담을 낮추기 위해 외국인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화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점에서도 그렇다. 한국은행은 최저임금 차등화가 수용될 수 있는 대단히 약한 고리를 건들인 셈이다. 
한국은행은 이런 식으로 최저임금 차등화가 노동자들의 저항을 뚫으면 내국인들과 다른 업종에까지 최저임금 차등화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설문조사╺ 여론조작 


한국경제신문이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에 의뢰해 지난 5월 10~20일 사이에 자영업자 등 사업주 431명, 알바생 및 알바 구직자 2,807명을 대상으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지급에 대해 물었다. 5월 21일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사업주의 81.6%(337명)가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찬성했다. 이것은 이상할 것은 없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알바구직자(알바생)들 중 56.4%(1584명)이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에 찬성했다는 점이다. 
왜 이 알바구직자들은 자신들의 임금을 깎자는데 동의했을까? 질문이 틀렸다. 다시 묻자. 설마 알바구직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자는데 동의했을까? 아니다. 사업주와 알바구직자의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지급”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 사업주는 최저임금을 정하고 특정 업종의 최저임금을 기준이 되는 최저임금보다 낮게 책정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알바구직자들은 최저임금을 정하고 더 업무강도가 높은 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더 높게 책정하기를 바랐다. 사업주들는 하향식 업종별 차등화를, 알바구직자들은 상향식 업종별 차등화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신문은 둘을 뒤썩어서 사업주와 알바구직자들 모두가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당연하게도 이들이 노리는 바는 최저임금의 하향식 차등화다. 그리고 경총과 같은 사용자 단체들은 왜곡된 설문조사 결과를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근거랍시고 떠들어댄다. 사기다. 

‘최저임금 미만율’의 아전인수  


이런 식의 사기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분석·인용’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경총은 23년도 최저임금 노동자들 중에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노동자의 비율을 나타내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13.7%로 2022년의 12.7%에 비해 1%포인트 늘었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300만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와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를 근거로 추정한다. 경총이 주장하는 최저임금 미만율 13.7%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해 추정한 것이다. 그런데 2022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근거로 최저임금 미만율을 추정한 결과는 12.7%였는데 반해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를 근거로 추정한 결과는 3.4%였다. 둘 사이의 차이가 크다.  

▲ 출처 : 경총 「2023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보고서(2024.05.16.)
▲ 출처 : 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미만율


학계에서는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를 근거로 추정한 최저임금 미만율이 더 ‘정확도·신뢰도’가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경총이 굳이 부정확하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근거로 한 추정치를 내세우는 것은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서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주가 많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경총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믿을 수 없는 추정치를 근거로 경총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추어야 한다’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노동자 생존위한 최소한의 안전판, 혹은 자본주의 체제의 안전판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한 최저한도의 임금을 정한 법으로 알려져 있다. “죽지 말고 먹고는 살아라”는 정도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서 최저임금법은 악법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다지 선한 법도 아니다. 
그러나 최저임금법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필요한 곳에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이윤을 향한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고갈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본가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지배하는 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이윤를 향한 탐욕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최저임금이란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재생산(노동자들의 생존)할 필요”와 그것을 위해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을 제한할 필요”가 결합되어 생겨난 것이다. 

경총이 주장하는 “최저임금 미만율 증가”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경총이 주장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자본주의 경제가 계속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미만율이 어느정도는 올라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가들(대자본가들,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이 사회를 유지시킬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뜻할 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저임금 미만율 증가는 자신들이 지배하고 착취하는 피지배계급(노동자·민중)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그들에게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발악은 그들이 지배계급로서의 능력을 잃고 파산해 가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수십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침체’에서 벗어나고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쟁, 고금리, 고물가가 수년 동안 지속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래서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떨어지는 이윤율을 사수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극도로 착취하고 있고,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당연하게도 대자본가들은 중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한 안정적 이윤을 보장할 수도 없다. 오히려 대자본가들은 중층적으로 연결된 생산과 판매의 하청사슬을 통해 중소상공인들의 이윤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당연히 중소상공인들 사이의 경쟁도 훨씬 치열해지고 있다.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증가하는 파산에 직면한 것은 최저임금이 상승한 것 때문이 아니라 경기침체 속에서 ‘대자본가들의 중소자본에 대한 이윤착취가 강화’되고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없이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중의 압력이 중소상공인들을 지금의 현실에 놓이게 한 근본적인 이유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추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하자는 저들의 주장은 이윤율을 사수하고, 파산을 지연시키려는 발악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가장 가난한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저들의 논리가 만들어진 진짜 배후이다.

경총은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파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인 것처럼 주장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기업간 경쟁의 법칙이 지배한다. 중소자본은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하청 사슬을 통해 대자본가들은 중소자본의 정상적인 이윤율을 침해해 자신들의 이윤율 하락을 막으려고 한다. 대자본에 비해 경제규모는 훨씬 작지만 그 수가 훨씬 많은 중소자본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격화된다. 그들에게 배당된 더 적은 이윤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다. 그들은 수없이 파산하고, 또다시 생겨난다. 망하고 생겨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은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구멍가게의 더욱 가혹한 운명  


구멍가게의 자영업자들도 똑같은 처지다. 아니 더욱 열악하다. 편의점, 식당, 커피숖 등등이 골목상권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좀먹으면서 다툰다. 경영이 서툰 점포들, 상권이 별볼일 없는 곳에 위치한 점포들이 망한다. 그런데 달리 살길이 없는 사람들이 간판을 바꾸고 새로 점포를 연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후로 이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이것이 최저임금 탓인가? 절대로 아니다. 아니, 최소한 겉보이에 손에 꼽을 만한 몇몇 점포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망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망한 가게의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들인다 하더라도 건물 임대료, 재료비 등은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건물주에 대항하기 어렵다. 물가가 인상되면 재료비도 오른다. 그 점포가 프렌차이즈라면 수수료도 내야 한다. 그러나 구멍가게 사장들은 사회의 법칙에 대항해 싸울 수도 없고, 건물주나 플렌차이즈 원청같은 힘있는 자들에 대항해 싸울 수도 없다. 그래서 그들이 고용하는 만만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자고 하는 것이다. 경총과 같은 사용자들의 집단과 각종 언론매체들이 이들의 심리에 왜곡되고 조작된 근거들을 제공한다. 이것이 최저임금을 두고 가장 힘없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다. 이윤이 지배하는 이 거지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들인 대자본가계급은 가장 가난한 이들이 서로의 생존을 걸고 싸우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바람 


정말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은 필연이다. 자본주의 경쟁의 법칙이 이를 강제한다. 최저임금을 찍어누루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적용해도 이 법칙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파산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살아가자면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들에게 무엇이 남게 되는가? 결국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할 가장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해 최저임금을 몇백원이라도 더 높이고, 최소한도의 생존조건을 지켜내기 위해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을 반대한다면 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그것이 아주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플렛폼 노동자든 배달 노동자든 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정말로 최소한도의 생존조건인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는가! 
그런데 가난한 노동자들, 파산해 노동자가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 ‘정상적인’ 바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이윤시스템에 균열을 낼 만큼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위태로운 지경에 도달했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왜곡과 거짓, 편견을 동원한다. 이런 상황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