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대표단의 3차례 토론, 숙의 결과를 발표했다. 납부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12%로 올리고 지급받는 연금액은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는 1안과 보험료율 13% 인상, 소득대체율 40% 현행 유지인 2안 중 1안을 56%가 선택했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다수가 선택한 것이다. 결과가 발표되자 국민의 힘은 국민연금 개혁안이 아니라 개악안이라고 반발하며 국민연금이 고갈되어 미래세대에게 폭탄을 넘겨준 것이라며 비난했다.
[연금보험료 =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 X (연금)보험료율, 현재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 연금액이 가입자의 생애 평균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현재 소득대체율 40%]
연금 고갈?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보도자료를 내 2055년이 되면 국민연금 재정이 바닥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내용이 나오자 언론에선 젊은 세대, 특히 콕 집어 1990년생부터는 한 푼도 못 받게 됐다는 얘기들을 쏟아냈다. 이대로 가다간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 세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받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국민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연금고갈 주장은 악의적으로 조작된 불안으로, 노동자들의 연금 납부액을 늘리기 위한 의도다. 기금 소진은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소진되더라도 국가의 지급 의무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기금고갈로 연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국가가 어떤 방식이건 연금지급을 해야하고 할 것임에도 기금고갈로 연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악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원래 기금 규모가 줄어들도록 설계된 수정적립, 수정부과방식이다. 쌓여진 기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어 있고, 그 부족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120년 연금을 운영 중인 독일의 경우도 쌓아둔 기금이 소진된 이후에는 불과 10일치의 지급준비금을 쌓아두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연금 부족분은 국가재정으로 충당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매년 10조원 가량 국고지원을 하고 있다. 전체 국민의 건강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복지의 두 축인 국민연금도 건강보험과 같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경우 매년 100억원 가량의 국고가 투입될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국고지원 없이 운영되는 한국의 현 상황이 오히려 특이한 점임에도 자본가 정치인, 언론들은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세대 갈등?
자본가 정치인, 언론은 저출생, 고령화를 얘기하며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적은 숫자의 젊은 세대가 많은 숫자의 나이든 세대의 연금을 책임져야 한다며 불공정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론은 연금 납부액을 올리자는 것으로 낸다. 이상하지 않은가? 연금 납부액을 올리면 그 부담은 부모세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더 크게 짊어지게 된다. 반대로 젊은 세대가 현재 납부액을 유지하거나 낮추도록 하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 이득이지 않나? 결국 이들의 목표는 연금 납부액을 늘리고 받는 금액은 줄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세대 갈등을 만들어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민연금 시민대표단의 젊은 층의 절반 이상이 ‘더 내고 더 받는’(안)에 대해 지지했다. 만약 기금고갈 협박이 없었다면 더 높은 비율이 지지했을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층에겐 더더욱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심해지고 저출생이 확대될수록 젊은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국가의 책임이 커지고, 이에 맞춰 연금에 대한 국가 재정 투입을 확대해야 한다. 저출생 고령화 문제의 책임을 노동자, 특히 젊은 세대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현재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악이다.
국가 재정을 어떻게 쓸 것인가?
현재 추진 중인 국민연금 개악은 재원을 노동자 개인들로부터 더 걷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취지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은 한창 경제활동을 할 시기에 소득의 일부를 보험료로 납부하고 은퇴한 이후에 연금을 받아 기본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회보장제도이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의 성격에 맞도록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도록 바꾸어야 한다.
OECD의 자료(2021년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정부가 공적연금에 투입한 재정은 전체 정부 지출의 9.4%에 불과하다. 프랑스(24.2%), 일본(24.2%), 독일(23.0%), 핀란드(22.0%)는 전체 정부 지출의 20% 이상을 공적연금에 투입했다. 미국도 18.6%를 투입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책임 비율이 매우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공적연금 재정비율이 매우 적은 상황임에도 오히려 이를 더 줄이려 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이다.
계속해서 개악된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계속 개악되어 왔다. 그 핵심은 노동자들의 납부액을 늘리면서 받는 금액은 줄이는 것이다. 그때마다 기금고갈 핑계를 대왔다. 최근 기금고갈 주장은 새로울 것이 없는 주장이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은 70%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정년에 맞춰 만 60세에 지급되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는데, 정년 이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 그런데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내세워 보험료율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낮춰왔다.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보험료율을 6%로 올리고,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보험료율을 9%로 올리며 수령 나이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28년까지 40%까지 낮추는 것을 주도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0%까지 떨어질 예정이다.
국민연금 개악은 국민의 힘 세력만 추진해온 것이 아니다. 지금은 국민의 힘이 개악을 주도하고 민주당이 타협안을 내면서 중재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협조하고 있다. 이들은 보험료율 13% 인상에 합의했다. 그리고 이재명은 시민대표단의 50% 소득대체율 인상도 거부하면서 44%까지 낮추는 것을 국회에서 합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노인빈곤율 1위
한국은 OECD 노인빈곤율 1위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인구 소득빈곤율은 43.4%로 OECD 국가 평균인 13.1%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노인자살율도 OECD 1위다. 노동자들은 젊은 시기 뼈빠지게 일함에도 정년퇴직 이후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노인자살율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노동자들의 삶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까지 개악하려 한다.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라고 하는데 실제 40%를 모두 지급받는 노동자들은 많지 않다. 40년간 보험료를 모두 납부했을 경우에 소득대체율 40%를 지급받을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가입기간은 평균 25년 정도이며, 실제 지급받는 금액은 소득대체율 25% 정도로 떨어진다. 노후생활을 보장받기 위해선 40%인 현재 수준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누구로부터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결국 문제는 누구로부터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이다. 노동자의 주머니를 털 것인가? 부유한 자본가로부터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윤석열을 비롯한 자본가 정치인들의 방향은 명확하다. ‘국민연금의 재원은 노동자로부터 마련하고 국가재정 투입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의 대안 역시 명확해야 한다. ‘기금고갈’ 사기에 휘둘리지 않고 노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고 국가재정을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재원은 부자증세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들의 연금납부액은 늘리려 하면서 자본가들의 세금은 깎아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22년 8월~23년 8월 1년간 자본가들에게 깎아준 법인세만 20조원이다. 윤석열 정부가 줄인 법인세만 국민연금 자금으로 투입해도 연금고갈 얘기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가들 세금 깎아준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은 ‘부모 세대의 이기심’이라며 악선동한다.
갈수록 빈부격차는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은 확대되고 하청구조는 중층화되고 있다. 자본을 가진 이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자감세 정책을 펼치고 있다. 법인세를 낮추고, 종부세와 금투세도 폐지하자고 국민의 힘과 민주당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정책이 한창이다. 물가는 폭등하고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인상에 턱없이 못 미쳐 실제 임금삭감이 되고 있다. 전기, 수도세 등도 계속 오르고 있다. 여기에 미래의 노동자 주머니까지 털겠다며 국민연금까지 올리려 든다.
현재 논의 중인 국민연금 방안도 실제로 노동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한다. 국민의 힘 뿐만 아니라 민주당 세력에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노동자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노동자들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