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티끌 모아 티끌!
열심히 일해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 현재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성실히 일한다고 안정적으로 살아지는 사회가 아니다. 아무리 죽어라 일해도 나아지는 삶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독식하는 구조는 견고하기만 하다. 오히려 죽도록 노력해도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회이다. 특히 청년들이 느끼는 벽은 견고하다.
조금만 눈을 크게 떠서 주변을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부의 불평등’은 나아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아예 싹부터 잘라버린다. 재벌가에서 금수저를 쥐고 태어나거나, 건물주 자식이 아니면 활짝 핀 미래는 가질 수 없다. 열심히 돈을 벌고 모아도 항상 제자리걸음인 생활에서 선택지는 다양하지 않다.
‘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특별한 사회적 위치에서 태어나거나 자신이 죽도록 노력해서 자수성가를 하지 않는 이상 모두들 노동자로 한 세상 살다가 간다.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세상은 한 순간도 유지되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바로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땀흘려 일하는 것보다는 할 일 없이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빈둥대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급급한 수준의 임금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이 괴로운 것이다. 그 결과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근본인 ‘노동’은 천시 받는다.
노동자들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되고 싶어 하고, ‘별다른 일 하지 않고 월급 받아가는 회장님’을 동경하는 이유가 노동자들이 게으르고 욕심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을 회피하는 데에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 가장 큰 이유이다. 요즘 일자리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대다수이다. 거기에 적은 임금은 노동의 보람을 앗아가 버린다. 게다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적다. 결국 많은 노동자들이 상시적인 고용 불안, 저임금,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보니 노동자로 살아가기보다 다른 곳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불안정에 내몰리다 선택한 주식투자
최근 주식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3월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45조1,698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코로나로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인 상황에서 오히려 주식투자는 늘어났다. 거기에 주식거래활동 계좌 수도 급증했다. 3월 한 달 만에 73만여 개의 계좌가 증가했다. 최근 주식투자에 뛰어든 신규가입자 대부분은 20~30대로 나타나고 있다.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왜 주식에 투자를 하는 것일까? 살아가기 힘든 현실이 이들을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로 내몰고 있다. 내 노동으로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대안으로 주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방법’중 하나가 주식이 되어버렸다.
청년들이 주식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이유는 부동산인 집과 땅은 투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려면 일단 기초 자산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대단한 금수저이거나 건물주를 부모로 두지 않는 이상 재산이 많지가 않다. 그러니 기웃거리다가도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선택하자니 너무 많은 위험성이 도사린다. 고생해서 벌어 모았던 소중한 자신의 전 재산을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하기엔 망설여진다.
그래서 그나마 아주 큰 재산 없이 그리고 아주 큰 위험성 없이 할 수 있어 보이는 주식으로 몰리게 된다. 더군다나 지금 20, 30대 청년들의 경우는 예전 IMF시절 최악의 경제 상태를 직접 몸으로 겪은 세대가 아니다 보니 낮은 주가는 언젠가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에 휩싸이면서 어렵지 않게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제 ‘한 방’이 아니라 ‘노동’을 선택할 수 있게
주식투자하는 청년들이 한 방을 노리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높고, 있는 일자리는 비정규직, 단기직, 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의식주같이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든 사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은커녕 평범한 삶조차 꿈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들이 미래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사회에서 막다른 곳으로 내몰린 그들이 한 선택은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일한 만큼 받을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굳이 손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같은 투기에 빠져들겠는가? 나의 노동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될 때 청년들이 가진 능력과 가능성은 노동을 통해 발휘되고, 그 노동은 사회 전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허울이 아닌 진짜 ‘노동이 당당한 사회’가 되는 것만이 청년들에게 부는 주식열풍을 꺼뜨릴 유일한 방법이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