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시작된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채권단은 두산중공업에 3조6천억원을 지원하면서 산업구조 재편, 주요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을 통해 추가로 두산이 3조원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지난 2월과 5월 두차례의 강제퇴직으로 사무직과 생산직 노동자 750여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지만 사측은 더 많은 인원에 대한 강제퇴직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62년생 이전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 400여명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일방적인 강제휴업을 밀어붙였다. 이번 구조조정은 이미 지난 5년간 계속되어온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의 연장선상에 위치해있다. 19년까지 지난 5년간 공장을 떠난 정규직 노동자 숫자가 1,500여명에 이른다.
경영위기의 이유
두산중공업은 한국중공업 시절부터 원자력, 화력 발전 설비 부문에서 정부의 독점적 지원을 받아 성장한 회사로 정부의 특혜 아래 기술력을 쌓으며 지난 10년간 천문학적 이익을 내왔다. 심지어 위기라고 난리가 났던 작년에도 800억원의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적게는 2천억에서 많게는 5천억의 이익이 났었음에도 왜 최근 5년 동안(2015~2019년) 2조6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것일까?
이유는 바로 '영업 외 손익'에 있다. 회사의 이익을 다른 곳으로 다 끌어다 쓴 것이다. 두산건설의 경우 10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5370억, 누적당기순손실은 약 2조7200억인데, 이 기간동안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지원한 금액이 1조4천억원에 이른다. 그 뿐인가? 미국 건설회사인 밥캣의 무리한 인수, 환위험 헤지 상품에 대한 투자로 인한 손실 등으로 문제가 생긴 자회사들에게도 돈을 퍼다주었다. 최근 정부에서 긴급하게 지원받은 1조원 중 2천2백억원을 홍천의 골프장에 빌려주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산의 위기는 전적으로 자본가들의 방만한 경영과 잘못된 운영방식으로 인해 비롯된 것임에도 그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두산중공업 뿐만 아니라 매각대상으로 거론 되고 있는 두산메카텍, 모트롤, 인프라코어 등 자회사들의 노동자들에게도 역시 머지않아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다. 제대로 된 투쟁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두산중공업지회의 잘못된 방향 설정
사측의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두산중공업노동조합 현 집행부의 입장은 우려스럽다. 현 집행부는 이번 구조조정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 반대 기조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성배 지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산중공업의 1조원이 넘는 적자에 대해서는 단지 경영판단의 실수로,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구조조정의 핵심 원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민주노총의 탈원전 정책은 편향된 환경운동가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책이기 때문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민주노총과 상충되더라도 독자적으로라도 갈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지회는 지난 3월 24일에는 창원상공회의소와 함께 신한울 3, 4호기 공사재개를 요구하는 호소문을 내기도 했다.
탈원전이 되면 괜찮을 거라는 헛된 희망
두산중공업 집행부의 입장은 이번 구조조정의 일차적 책임은 문재인정부에게 있다고 못박음으로서 두산중공업 사측에게 경영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사측이 정부에게 하고 싶은 요구를 노동조합이 나서서 대신 제기하는 형국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확인했고, 화력발전의 경우도 2015년 기후협약 이후 규제가 강화되어 수주가 감소되고 있다. 전세계 에너지 정책이 변화되고 있는데, 이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경영진들이 책임을 져야하는데, 두산중공업 경영진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신한울 3, 4호기 재개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가들은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기회삼아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물량과 상관없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물량, 수주에 따라 노동자의 생존권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자본가들의 논리에 갇히는 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결국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맞물려 자포자기하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일이 많을 때는 엄청난 이윤을 벌어가면서 일이 조금만 줄어들면 앓는 소리를 해대며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높이고, 해고까지 자행하는 자본가들에게 맞서 물량과 상관없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온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해 경영자들이 책임을 지고 그들이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을 토해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더 큰 단결과 투쟁이 필요하다
강제퇴직과 순환휴직, 강제휴가, 부서통폐합 등 자본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노동자들의 분위기는 위축되고 있다. 최근에 실시된 두 번의 강제퇴직과 일방적인 휴업에 대해 제대로 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였다. 또한 통폐합 이후 일이 많은 화력발전부문의 경우 외주화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어떠한 대응도 하고 있지 못하다. 현장은 계속 밀리고 있는데 조합원들을 조직해서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모아나가야 할 집행부는 장기적 계획과 전망을 보여주기보다는 원전 재가동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고 있다. 게다가 높은 기술과 숙련도를 가진 고참 노동자 다수가 현장을 떠나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조합이 투쟁의 기조를 분명히 세우고 단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투쟁의 전선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휴업에 들어간 고참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휴업의 부당성을 사측에게 전달하기 위해 투쟁을 배치하고 문제를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현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과 휴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이 갈라지지 않도록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휴업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더 이상 부당하게 일터를 떠나는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 없이 구조조정의 일순위로 고통받았던 사무직 노동자들, 그리고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계약직 노동자들 등 두산중공업 내의 모든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함께 싸움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계열사의 노동자들, 부품사, 하청업체 노동자들과의 연대 역시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미 두산계열사 노동조합들이 모여 ‘두산그룹 구조조정 저지 투쟁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지난 5월 14일 서울 두산타워 앞에서 상경 집회를 진행하는 등 연대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미 투쟁의 깃발은 올랐다.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전망과 의지, 확신에 달려있다. 지금부터라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된 전망을 움켜쥐고 단결과 연대를 확대하기 위해 분투해가자. 지역과 전국의 동지들이 두산중공업 동지들의 투쟁에 언제나 함께 연대할 것이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