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정치 사상,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 차별 금지 사유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고용, 재화 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서비스 제공이나 이용에서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직접차별뿐만 아니라 간접차별에 대해서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는 권리, 권고 불이행시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배상금 지급 등의 처벌 규정도 제시하고 있다.
또다시 난관에 부딪힌 차별금지법
지난 2007년 처음 발의된 이후 13년간 국회에서 번번이 좌절됐던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6월 23일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10명 중 9명이 ‘나도 차별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회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하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매우 강경하다. 보수 기독교 세력들은 이 법이 동성애 옹호법이고, 이 법이 통과되면 문란한 성문화가 확산될 거라며 강하게 반대를 하고 있다. 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학력’, ‘병력’에 의한 차별금지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냈다. 또한 이 법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에게 과도한 특혜를 누리게 만드는 법이다, 정치 사상의 자유는 정부를 무정부상태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등 다양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의 항의 전화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사무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눈치를 보느라 법을 누더기로 만들거나 스스로 폐기했던 지난 역사와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법안발의를 위한 10명을 모으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실제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차별금지법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6월 29일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내용만 보면 이 법이 통과되는 순간 뭔가 대단한 변화라도 생길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반대 세력들이 그렇게 거세게 반대하는 것도 획기적인 변화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있던 차별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리도 없고 실제 벌어지는 차별을 강제적으로 금지시킬 수단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과 노동강도, 노동조건의 격차는 크게 존재한다. 이것을 차별금지법으로 강제할 수 있을까?
작년 한해 배당금만 1,426억 원을 받은 삼성전자 이재용부회장과 연봉 2,400만 원을 받는 최저임금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주거환경, 교육환경, 노동조건, 소비 수준 그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게 없다. 이들이 차별 없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노동법이 있어도 노동조합 하나 만들려면 해고를 각오해야 하고, 생산현장에 파견은 금지되어 있음에도 대법원 판결조차 지켜지지 않는 등 있는 법조차도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차별금지법이 없더라도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에도 차별에 대한 구제신청이 가능하다. 법이 없어서 차별이 철폐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왜 이런 차별이 벌어지는가?
계급사회는 차별의 역사와 나란히 존재해 왔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나뉘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계급들 사이의 차별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는 계급은 그 사회의 정치, 교육, 문화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회적 부와 특권을 확대해간다. 두 계급간의 격차가 커질수록 차별도 더욱 강화되고 확대되어 간다.
그런데 서로 다른 계급 간에 주로 등장했던 차별이 이제 같은 계급사이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다.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일자리를 지켜야 하는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정해진 임금과 적은 일자리를 놓고 생존을 위한 피터지는 경쟁을 벌이게 됐다. 이러한 경쟁은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차별로 변질시키고 서로간의 갈등을 확대한다. 여자니까, 비정규직이직이니까, 이주노동자이니까, 학력이 낮으니까, 나이가 적으니까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 어떤 노동자들은 더 적은 돈을 받아도 되고, 먼저 해고되어도 되는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경쟁에서 밀려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노동자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최근 등장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런 차별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 하나의 사례이다.
이러한 차별을 더욱 확대 강화하는 것은 바로 지배계급이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을수록 자본가계급의 지배는 더욱 손쉬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계급간의 적대를 계급내의 적대로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깨기 위해 사력을 다해 갈등을 조장하며 부추긴다. 자본가들과 정치인,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언론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귀족노동자 프레임을 씌우고는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낮은 임금을 받는다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적이 정규직들인 양 조장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해고가 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호도한다. 반면, 노동자 수천 명의 임금을 합한 금액보다 더 큰 돈을 한 명의 자본가가 다 챙겨가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계급착취를 끝장내야 차별철폐가 가능하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이 내민 시혜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자유와 평등을 조금씩 확대 쟁취해왔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선거철만 되면 노동자 서민을 위하는 척 하지만 그들이 만드는 법의 대다수는 자본가들과 지배계급을 위한 법이다. 노동자들의 거센 투쟁에 어쩔 수 없이 상정되는 법조차도 폐기되기 일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고 난도질되기 십상이다.
매년마다 노동법 개악은 반복되고 있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고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28년만의 산업안전법 개정도 처음에 제출된 안보다 후퇴된 안으로 통과되었다. 국회의원들이 노동자의 편이 되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법을 제정하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특히, 차별의 문제는 계급착취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법조항 몇 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87년 노동자투쟁이 열악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프랑스 68혁명이 권위주의를 철폐하고 평등을 확대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았던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계급의 자유와 평등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켰던 것처럼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계급 사회에 균열을 내고 뿌리부터 뒤흔들 때 비로소 차별이 사라지고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가 온전히 확대될 수 있다.
권보연